[기고] 플랫폼 노동은 혁신인가 덫인가
  • 이영주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역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9 10:00
  • 호수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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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회피 위해 감언이설 서사 꾸며내는 플랫폼
플랫폼 노동에 ‘노동법 적용 목소리’ 커져

플랫폼 노동이 뜨거운 감자다.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와 기본소득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약방의 감초처럼 플랫폼 노동 보호를 언급한다. 언론 역시 플랫폼 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치권이나 언론이 내놓는 대책을 들여다보면 오래된 정책을 이름만 살짝 바꾼 공허한 재탕이거나 오히려 플랫폼 경제를 더욱더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으로 끝맺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국의 옥스퍼드대 교수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Jeremias Adams-Prassl)은 저서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Humans as a Service)》에서 플랫폼 기업들이 규제를 회피하고 사회적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감언이설을 꾸며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자에게는 기업가라는 가짜 이름표를 붙여 노동법을 농락하고, 파괴적 혁신의 서사로 탈법을 포장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주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서비스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플랫폼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논란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플랫폼 경제가 사회 전체에 가치 있게 이바지하도록 하려면 플랫폼 노동에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 경제가 사회 전체에 가치 있게 이바지하도록 하려면 플랫폼 노동에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 노동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문제인가

모두가 플랫폼 노동을 이야기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개념이 명확하게 합의된 것은 아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많은 개념과 용어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의미가 변화하다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보다 우리에게 더 친숙한 용어는 (여전히 낯설긴 하지만) ‘공유경제(sharing economy)’다. 공유경제는 IT(정보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기존에 활용되지 않던 유휴자원을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함으로써 자산의 소유자는 추가적인 소득을 얻고 이용자는 서비스 등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승차 공유 플랫폼인 우버나 리프트,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가 크게 성공하면서 공유경제라는 개념은 한때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기도 했다. 

영미권에서는 공유경제 대신 주로 ‘긱 경제(gig econom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람의 노동이 그 대상이 될 때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간헐적·일회적으로 중개된다는 점에 초점을 둔 ‘플랫폼 노동’이 대중적으로 훨씬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의 사업 모델이 매우 다양한 데다 수시로 성격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 전체를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실익 있는 개념 정의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음식 배달이나 대리운전, 가사 서비스 등이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고용정보원은 2019년에 전체 취업자의 약 2% 수준인 54만 명 정도가 플랫폼 경제에 종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플랫폼 기업을 둘러싼 논란은 사업 모델 자체의 합법성, 종사하는 노무 수행자들의 법적 지위, 소상공인들에 대한 갑질과 횡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플랫폼 노동의 측면에서는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주로 핵심 문제가 된다. 종속적인 지위에서 개인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데도 노동법은커녕 사회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상태로 기본적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흔히 근로계약 대신 위임이나 도급, 위탁이나 용역, 프리랜서 등의 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분쟁이 벌어지면 자영업자로 취급돼 근로자로서 보호를 받기 힘들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없다. 시대의 변화에 맞도록 ‘근로자’라는 개념을 더 넓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회색지대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은 여러 측면에서 전통적인 근로자와는 달라 기존의 노동법으로는 보호할 수 없으니 이들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별도로 입법해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플랫폼 노동은 정말 새로운 것인가

최첨단 IT의 발달로 등장한 혁신적인 노동의 방식이라지만, 실은 비슷한 논쟁이 거의 20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만화 《까대기》에 나오는 말처럼 “개인사업자인데 개인사업자의 자율성은 없고 노동자인데 노동자의 권리는 없는 게 바로 (대한민국의) 특수고용직”이다. 최대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중 일부는 산재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노동3권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특수고용직 논의가 별 성과 없이 오랫동안 지루하게 답보 상태에 빠진 사이에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등장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불렀던 대리운전 기사가 이제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일감을 구한다면 그가 제공하는 노동의 본질이 새롭게 달라진 것일까? 더 나아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플랫폼이 직간접적으로 노동을 지휘·감독한다면 그 플랫폼은 더 이상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다.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며, 플랫폼 노무 종사자는 노동자로 보호받아야 한다.

세계적 거장 켄 로치(Ken Loach) 영화감독이 최근에 내놓은 두 편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와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는 영국 사회의 고단한 단면을 과장 없이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황폐화된 모습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플랫폼 노동이 처해 있는 현실과도 놀랄 만큼 닮았다. 그래서 이 영화들은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최근 플랫폼 노동이 주목받으면서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이 미처 닿지 않은 채 노출돼 있던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이나마 사회적 관심이 모아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4차 산업혁명과 AI(인공지능) 따위로 포장된 혁신의 장밋빛 환상 혹은 각자도생의 위협 속으로 다시 그들을 내모는 허울 좋은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플랫폼 경제가 사회 전체에 가치 있게 이바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노동에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 노동법은 일하는 사람들이 플랫폼 기업의 이윤을 위해 희생되지 않도록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혁신 비용을 플랫폼 기업에 공정하게 부담시키고, 그 성과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누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거듭 강조한다.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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