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다시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4 12:00
  • 호수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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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순 아이돌→섹시스타→털털녀→개념녀 넘어 또 변신

이효리가 연일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MBC 《놀면 뭐하니?》의 ‘여름x댄스x혼성그룹’ 특집 때문이다. 유재석이 이효리와 비를 영입해 각각 유두래곤, 린다G, 비룡이라는 ‘부캐(보조 캐릭터)’로 1990년대 스타일의 혼성 댄스그룹 ‘싹쓰리’를 결성한다는 기획이다. 여기에 시청자의 관심이 폭발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TV 화제성 순위에서 4주 연속 1위에 오르고,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가장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6월 순위 2위에 올랐다.

6월 한국인이 가장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1위는 《사랑의 콜센터》로 직전에 방영된 《미스터트롯》과 함께 5개월 연속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 두 프로그램은 거의 판타지 영역에 있는 특수한 존재로 일반적 프로그램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사랑의 콜센터》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프로그램 중에선 《놀면 뭐하니?》가 싹쓸이하고 있다. TV조선 《뽕숭아학당》을 3위로 밀어냈다는 점도 인상 깊다.

‘싹쓰리’ 멤버들 중에서도 린다G(이효리)가 인기의 중심이다. 프로그램 속에서 이효리가 2017년에 힙합 가수 블루가 발표한 《다운타운 베이비》를 잠깐 불렀는데 순식간에 역주행이 시작돼 음원차트 1위까지 올랐다. 원래 알려지지 않았던 노래였는데 이효리가 부르자 트렌드가 됐다. 이 외에도 이효리가 보여주는 언행이 모두 화제가 되고 있다. 트렌드의 최전선에 이효리가 다시 섰다.

MBC 《놀면 뭐하니?》의 여름x댄스x혼성그룹 ‘싹쓰리’ ⓒMBC

변화를 선도한 이효리의 변신

이효리만큼 오랫동안 최전선에 있는 아이돌 스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효리는 1세대 걸그룹 핑클 출신으로 90년대 스타였다. 2000년대에 데뷔한 2세대 걸그룹 멤버들도 위상이 그때 같지 않은데 90년대 스타 이효리가 여전히 ‘핫’한 것은 정말 놀라운 현상이다.

1990년대 당시 이효리는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소녀 이미지로 각광받았다. 그때는 주류 걸그룹이 청순함을 넘어서는 섹시미를 보여주는 게 금기시되던 시절이었다. 그중에서도 핑클은 청순 코드의 대표적인 걸그룹이어서 이효리의 이미지도 그렇게 형성됐다.

그런데 2000년대에 솔로로 데뷔하면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꾼다. 《텐미닛》으로 섹시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적인 청순 스타가 한순간에 대표적인 섹시스타로 변했다. 극에서 극으로의 변신이다. 이미지가 너무 급변하면 대중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고, 특히 섹시 코드는 극약처방 같은 것이어서 잘못 쓰면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섹시 코드로 화제가 됐던 일부 걸그룹이 메이저 수준으로 도약하지 못한 건 그런 낙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효리는 이런 리스크를 극복하고 원톱 섹시스타로 우뚝 섰다.

이렇게 두 개의 이미지로 한 시대를 평정한 것만 해도 놀라운데 이효리는 또다시 변신을 감행한다. 리얼버라이어티 전성기가 전개될 때 KBS 《1박2일》과 더불어 일요 국민예능 대전을 펼쳤던 SBS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과 호흡을 맞추며 털털한 모습을 선보였다. 그때까지 톱스타는 신비주의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효리는 예능에서 자신의 외모까지 희화화하며 망가지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신비한 국민요정, 섹시스타에서 털털한 언니로의 변신이다. 이때부터 이효리가 여성팬들의 로망이 되기 시작했다. 가수로서 가요대상을 받고, 예능인으로 연예대상까지 받았다.

여기서 다시 한번 변신이 이어진다. 이번엔 ‘개념녀’다. 그전까지 스타는 재력가 등과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이효리는 인디 뮤지션과 스몰웨딩을 조용히 치르더니 제주도로 귀촌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처음엔 쇼가 아닌가 했지만 그녀의 소박한 삶의 모습이 진정성을 느끼게 했다. 사회적 발언도 계속 화제가 됐다. 예를 들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돕는 일에 참여했다. 그러자 참여자가 5배 증가해 그녀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지금은 린다G로 변신해 예능 판도를 이끌면서 다시금 화려한 스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일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놀면 뭐하니?》의 이효리 ⓒMBC

라이프 스타일 롤모델이 되다

이효리의 변신은 단순히 한 연예인의 스타일 변신이 아니다. 그때그때 시대 변화와 조응하며 시대를 대변하거나 추동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00년대 섹시스타 변신 당시는 섹시 코드가 그전까지 퇴폐적인 상업적 기획으로 평가절하돼곤 했던 분위기에서 여성의 당당한 자기표현으로 바뀌던 시점이었다. 이효리의 섹시는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카리스마였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 털털한 언니로 변신했을 때는 신비주의 코드가 종언을 고해 가던 시점이었다. 자연스러운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꾸민 듯한 표정만 짓던 톱스타보다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을 대중이 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능 형식에서도 리얼리티가 강조됐다. 그럴 때 예능에서 전직 국민요정, 국민 섹시스타가 가식을 내려놓자 대중이 열광했다.

스몰웨딩과 귀촌을 했을 때는 화려한 삶을 향한 갈망에 대해 대중이 염증을 느끼던 시점이었다. 출세와 성공을 향한 경쟁에도 부정적인 흐름이 형성됐다. 당장 소박한 행복을 느끼면 된다는 욜로(YOLO) 열풍, 소확행 열풍이 불었다. 그런 변화를 이효리의 결혼과 귀촌이 선취했다. 이효리의 제주행 이후 제주도 신드롬이 나타났다. 제주도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도시적 삶과 반대되는 상징이었다. 이효리는 라이프 스타일 롤모델이 됐다. 이경규가 아이에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자, 이효리가 “그냥 아무나 되라”고 했는데 이것도 요즘 젊은이들의 시대정신이었다.

이효리가 사회적 발언을 할 때는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에 대해 대중이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등 소셜테이너 열풍이 불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신곡 《미스코리아》로 여성 상품화를 비판했을 땐 페미니즘 열풍이 시작되려는 시점이었다. 이렇게 시대 변화를 선취하거나 그때그때 호응했기 때문에 그녀의 변신에 사회적 의미가 생겼다. 지금은 린다G로 변신해 세속적인 욕망을 표출하는데, 이렇게 욕망 표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요즘 분위기다.

변신들이 어떤 기획에 의해 진행됐다면 대중의 사랑을 이렇게 오래 유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효리의 성격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 진정성이 받아들여졌다. 거기에 최근 예능에서 엄청난 입담과 예능감으로 엔터테이너 능력까지 입증했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졌어도 예능에서 안 웃겼으면 이렇게 화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은 예능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인식된다. 이효리는 진정성과 더불어 예능감이라는 능력까지 장착했기 때문에 계속 ‘핫’한 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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