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비용·안전은 물론 욕받이 역할마저 아웃소싱됐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9 10:00
  • 호수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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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싼값에 제공되는 상품과 서비스가 있다면, 그로 인해 누군가가 이익을 본다면,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주세요. 그리고 그 손해가 라이더(배달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아주세요.”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과 관련해 꼭 국민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말이 있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택배와 음식 등을 우리가 집에서 빠르고 편하게 받을 수 있는 혁신의 이면에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일상이 자리한다는 토로다. 실제로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누군가의 편리함이 또 어떤 누군가의 삶이 갈아져서 만들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혁신일까. 

박 위원장은 ‘계약서엔 사장님, 일 시킬 땐 근로자’ ‘일 시킬 땐 우리 직원, 사고 나면 사장님’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플랫폼 노동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법 준수’가 절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노동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유지되려면 공정한 비용과 제도적 규제가 동시에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8년 여름 맥도날드 라이더로 일하면서 폭염수당(100원 추가 지급)을 요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벌였던 주인공이다. 이후 라이더들의 산재 상담 전도사로 널리 알려졌고, 결국엔 라이더유니온을 이끌고 있다. ‘유니콘’과 ‘혁신’이라는 빛나는 이름 뒤에 짙어져만 가는 플랫폼 노동의 그림자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박 위원장을 6월29일 만났다. 

ⓒ시사저널 포토
ⓒ시사저널 포토

라이더유니온은 어떤 조직인가.

“배달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이다. 300여 명 정도의 조합원이 있다. 전통적인 기업별 노조는 아니다. 시민운동적 성격과 노동운동적 성격이 섞여 있는 조직이다. 처음 목표는 단순했다. 라이더들은 개별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같이 모여 이야기할 공간이 없었다. 라이더 노동의 고달픔은 너무나 애달파 가족들에게도 말하기 어렵다. 공간을 만드니 알아서 수다를 떠시면서 스트레스를 푸시더라. 위험을 피하는 법, 사고 시 대처법, 갑질에 대한 하소연 등을 나눈다.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첫 번째였다. 당면한 과제들도 하나씩 부딪쳐 나가며 해결 중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인데 개인사업자의 자율성은 없고, 노동자인데 노동자의 권리는 없는 특수고용직이다. 착취를 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착취라는 말보다는 ‘책임지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 노동을 통해 이윤을 얻되, 그 어떤 것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고 등 위험에 대한 책임, 생산수단을 제공해야 할 책임, 사업을 하다 매출 등이 떨어질 리스크 등을 모두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 명백히 노동법 준수라는 원칙과 책임에서 벗어난 행위다. 자본가들이 져야 할 리스크를 노동자가 지고 있다. 착취를 넘어선 차원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인가. 

“일단 보험 문제가 가장 크다. 예전에는 라이더가 취직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오토바이를 사줬다. 보험도 회사가 제공했다. 연간 150만~200만원의 비용이 드는데, 회사가 부담했다. 그런데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신분이 바뀌면서 이 비용을 다 라이더들이 부담한다. 그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20대 초반의 경우 1800만원의 보험료가 책정된다. 30대의 경우도 500만~1000만원의 보험료가 든다. 이게 무슨 뜻인가. 배달 노동이 안고 있는 리스크를 회사라는 조직된 기업이 지지 않고 개인이 지게 되면 그 위험도가 10배 가까이 상승한다는 말이다. 보험회사는 리스크를 측정하는 곳이다. 플랫폼 노동의 핵심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업들이 또 어떤 리스크를 전가하고 있나.

“플랫폼 산업을 보면 노동법이 왜 만들어졌는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기업들은 각양각색의 리스크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다. 이게 바로 그들이 말하는 혁신적인 변화다. 매출의 증감에 대한 책임은 원래 회사가 지지 않나. 이젠 개인이 져야 한다. 또 다른 혁신은 ‘인간 값’을 실시간으로 매기게 만든 점이다. 기업들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콜비’라고 부르는 수수료 가격을 실시간으로 올리고 내리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여기에 저항해 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나온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은 해체되고, 노동법은 우회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라이더들은 배달 중 사고가 나면 ‘음식은 안 상했나요’라고 음식의 안위부터 묻는 연락을 먼저 받게 된다. 플랫폼은 감정적 여론 대응마저 아웃소싱하는 데 성공했다. 플랫폼의 특징은 회사 연락처를 안 적는다는 것이다. 끝내 콜센터까지 연락이 됐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얘기다. 그런 상태에서 실제 욕은 누가 먹나. 플랫폼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욕받이 역할까지 하고 있다. 원래 회사가 받아야 할 스트레스마저 우리에게 아웃소싱됐다. 우리가 삼성 제품에 화가 나면 이재용 부회장을 욕하지 일선 직원들을 욕하지 않지 않나. 하지만 우린 정반대다.”

신분은 특수고용직인데, 실제 플랫폼 회사로부터 지휘·감독을 받지 않나.

“물론이다. 대다수 라이더는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분명한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다. GPS로 라이더의 위치정보가 사용자에게 전달된다. 가령 식사를 위해 한 장소에 일정 시간 머무르고 있으면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콜도 없는데 왜 거기 있나’라는 연락이다. 특정 지역에서 주문이 몰리면 그 지역으로 파견을 보낸다. 플랫폼 기업의 지휘·감독 여부에 대해 더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이건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그 회사의 노동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한국이 노동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이 그중에서도 노동법이 유독 안 지켜지는 곳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들의 특징 중 하나가 신속성이다. 사회적 이슈가 되면 문제가 됐던 부분을 어떤 입장 표명도 없이 슬그머니 바꿔버린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나. 

“혁신이라 불리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가져올 미래다. 플랫폼에는 데이터가 쌓인다. 한 라이더가 신호를 위반하고 과속을 해 배달 시간을 단축하면, 그 이후부터 플랫폼은 향후 이 시간을 기준점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그렇게 ‘총알배송’과 같은 비인간적인 이름의 마케팅이 벌어진다. 시간제한 규칙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별점과 같은 평점 시스템도 문제다. AI 알고리즘이 배정한 배달을 라이더들이 수락하지 않으면 평점이 깎인다. 라이더는 배정된 배달을 수락하기 전까지는 배달 주소지를 알 수 없는데, 수락 후 확인한 배달지가 맘에 들지 않아 거절하면 역시 평점이 깎인다. 평점이 많이 깎이면 플랫폼 계정이 정지된다. 퇴출되는 것이다. 평점에 생존이 달린 셈이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인간은 스스로를 착취하게 된다. ‘아까 손님 앞에서 더 웃을 걸 그랬나’ ‘배달 적정시간은 20분이지만 10분 안에 배달했어야 했나’ 등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우린 이렇게 종속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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