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특집] 90년대생은 왜 90년대 문화에 열광하나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0 15:00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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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세대에겐 추억, Z세대에겐 호기심과 신선함

1990년대풍 혼성그룹 싹쓰리의 인기와 함께 90년대 문화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복고의 일종인데 90년대생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복고는 보통 청춘기를 보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다. 90년대생들은 90년대에 유아였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양준일을 재발견해 스타로 소환한 것이 젊은 누리꾼들인데, 양준일이 《리베카》를 부른 시점이 1991년이었다. 90년대생에게 1991년은 아무 기억도 없는 과거의 한 시점일 뿐이다. 이처럼 추억과 연관이 없는 젊은 사람들까지 가세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90년대 신드롬은 일반적인 복고와 다르다.

90년대 스타 양준일은 ‘탑골 GD’로 불리며 대세로 떠올랐다. ⓒ시사저널 포토

요즘 젊은 세대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라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대략 1980년대 초에서 1990년대 중반이나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Z세대는 대략 1990~1995년 이후부터 2005~201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분류 주체마다 다른 기준을 적응하기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연령대를 정확히 특정할 순 없지만 대체로 성장기나 청춘기에 디지털 문화의 세례를 받은 젊은 세대라는 의미로 폭넓게 쓰이는 개념이다. 바로 이들이 90년대 복고의 한 축을 형성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매체로 떠오른 것이 유튜브다. 젊을수록 유튜브의 영향력이 크다. 유튜브와 기성 미디어의 차이점 중 하나는 콘텐츠 생산 시점에 대한 태도다. 기성 미디어는 최신 콘텐츠만을 전면에 내세웠다. 반면에 유튜브에선 최신 콘텐츠와 수십 년 전 콘텐츠가 아무런 차등 없이 똑같은 조건에서 노출된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90년대 콘텐츠가 젊은 세대에게 선택됐다.

 

수용자가 트렌드를 선택하는 시대

기성 미디어와 유튜브의 또 다른 차이점은 수용자 권력의 크기에 있다. 기성 미디어에서 수용자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했다. 반면에 유튜브에선 수용자들이 댓글, 2차 창작물 제작, SNS 연계 등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과거엔 미디어가 트렌드를 만들었지만 유튜브 시대엔 수용자 다중이 트렌드를 선택한다. 그래서 수용자 권력의 시대가 열렸는데, 그 권력을 가진 젊은 누리꾼들이 90년대 콘텐츠를 선택하자 대중문화의 판이 움직였다.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 90년대 문화가 선택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바로 친밀함이다. 현재의 젊은 세대, 특히 90년대 출생자들에게 흑백TV 시대는 너무 낯선 과거다. 90년대엔 흑백TV 시대가 저물고 컬러TV 시대가 개막했다. 90년대생들에게 흑백TV 시대는 너무 멀다. 컬러TV 시대는 아니다. 여기에 90년대에 짜인 문화적 판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K팝이 태동한 것이 90년대다.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한류 음악을 K팝이라고 하는데, 아이돌 댄스음악이 바로 대표적인 K팝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혁명에서 출발해 아이돌의 조상인 HOT, 걸그룹의 조상인 SES·핑클 등을 통해 K팝이 형성됐다. 그때 만들어진 댄스그룹 중심의 가요계 구조가 아직까지 이어진다. 랩 중심의 힙합 음악도 90년대에 등장했다. 주로 팝송이 나오는 홍대 클럽에서 최근까지 듀스의 노래가 등장하는 것은, 듀스 이래로 등장한 90년대 힙합이 여전히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이트클럽을 완전히 대체하다시피 한 클럽도 90년대에 등장했다. 90년대 초에 록카페 등장으로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이 홍대 클럽으로 이어졌고, 이때 만개한 클럽 문화가 강남 등 각지로 퍼져 나갔다. 노래방도, 조직적 팬덤 문화도, 한류도 모두 이때 시작됐다.

트렌디 드라마의 원형인 《질투》와 《사랑을 그대 품 안에》도 90년대에 등장했다. 본격적인 사회 드라마도 《모래시계》를 통해 이때 등장했고, 불륜의 현대적 묘사도 《애인》을 통해 등장했다. 영화 쪽에선 한국형 블록버스터인 《쉬리》, 로맨틱 코미디의 선구인 《결혼 이야기》, 한국영화 세련화의 상징인 《접속》 모두 그 시기에 등장했다. 21세기 디지털 대격변의 출발점인 PC통신 문화도 이때 나타났다. PC통신, 초고속 통신망, 휴대전화 등을 이용하는 ‘N세대’의 등장이다.

유재석·비·이효리로 구성된 혼성그룹 싹쓰리는 올여름 음원시장을 강타하면서 ‘90년대 신드롬’을 일으켰다. ⓒMBC

쉽게 끝나지 않을 ‘장기 90년대’

현재 젊은 세대에게 기성세대가 놀라곤 하지만 90년대의 세대 충격에 비할 바가 아니다. 90년대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경악했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간형이라며 ‘신인류’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세대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세대 담론이 이어지고 있다. 신인류라는 말이 나타났을 정도로 90년대 문화는 그 이전 시대와 달랐다. 과거와 다른 만큼 현재와의 유사성이 크다. 90년대 흐름이 아직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를 ‘장기 9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세대가 90년대 문화를 친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90년대에 데뷔한 이들이 여전히 예능을 주도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유재석, 김구라, 김국진, 신동엽, 박명수 등 90년대 출신들이 아직도 최전선에 있다. 박진영과 양현석은 K팝을 주도한다. 이들의 과거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이들이 대중매체에서 끊임없이 90년대를 회고하기 때문에 호기심은 더 커진다. 문화의 기원을 찾는 것도 각별한 흥미를 주기 때문에 현재 문화의 ‘조상’들은 관심을 받는다.

90년대가 현대와 유사성을 나타내지만 어쨌든 과거는 과거이기 때문에 분명히 다른 점도 많다. 유사하되 적당한 이질감이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이질감이 신선함이 되었다. 현대 문화가 지나치게 획일화된다는 식상함, 그리고 과도한 디지털 속도전에 피로감을 느낄 즈음에 90년대 문화가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들만의 새로움을 추구한다. 90년대 문화가 그들이 받아들이기 좋은 ‘적당한’ 새로움이었다.

싹쓰리가 바로 그런 예다. 랩이 가미된 댄스그룹으로 친숙한 형태지만, 요즘 보기 힘든 남녀 혼성 구조와 서정적인 가사의 멜로디가 강조된 노래로 적당히 신선하다. 프로그램 도중에 누구나 알 법한 스타들의 과거 모습이 연이어 등장해 ‘아, 옛날엔 저런 모습이었구나’라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X세대에겐 추억, Z세대에겐 호기심과 신선함이다. 90년대는 역사적인 수준의 문화 대폭발, 문화 르네상스 시기였다. 그 시절 수많은 시도가 나타났고 우리 대중문화의 젖줄이 됐다. 그만큼 품고 있는 것이 많고 매력적이다. 앞으로도 90년대가 계속 조명될 이유다. 장기 90년대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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