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곳곳에 방치된 ‘화약고’…"베이루트 폭발참사 남의 일 아냐"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8 16: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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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위험천만한 유해화학물질 곳곳에 불법 야적…위험성 경고에도 소방 당국은 “문제없다”

지난해 9월28일 울산항 염포부두에 정박돼 있던 2만5880톤급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그로이란드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심한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으며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고로 선원·하역근로자·소방관·경찰관 등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선박은 울산석유화학단지에 석유제품 원료(화학물질)를 공급하기 위해 부두에 정박해 있었다. 그런데 9번 탱크에 실려 있던 '스타이렌 모노머(SM·Styrene Monomer·인화성이 강한 위험물질)' 온도가 계속 올라 결국 중합반응에 의해 폭발했다. 중합반응은 분자가 결합해 더 큰 분자량을 가진 화합물이 되는 현상으로, 이 과정에서 열과 압력이 발생한다. 위험천만의 아찔한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당국의 대응은 한심했다. 

울산소방본부가 최근 발표한 '울산항 선박 화재 백서'에는 당시 사고의 잘못을 시인한 고해성사(告解聖事)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다. 대형 폭발화재임에도 재난대책본부를 가동하지 못했다. 화학물질 확산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주민 대피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등 현장 대응에 문제가 많았다고 인정했다. 울산에서는 이 같은 화학사고가 최근 6년(2014∽20년 5월) 사이 43건이나 발생했고, 대부분 인재(人災)였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울산국가공단에서 취급하는 위험 및 유해화학물질은 연간 1억3100만 톤으로 전국의 30%를 차지한다. 폭발성이 강한 유류와 초산, 황산 등 138종의 유해화학물질과 가스 등이 들어 있는 초대형 저장탱크도 1700여 기에 이른다. 울산 석유화학 업체들은 이런 화학물질을 여러 나라에서 수입해 유화제품 원료로 사용한다. 물품 계약에서 통관, 운송은 수입대행 업체들이 맡고 있다. 

시사저널은 8월3일 화학물질 수입 관문인 울산항을 찾았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화학선박이 접안하면 1단계로 부두에 설치된 대형 저장소에 유화제품 원료를 일시 보관한다. 2단계는 수입대행 업체들이 주문한 물량만큼 차량에 옮겨 싣고 제조회사에 공급한다. 이들 화학물질은 화재나 폭발 위험이 높아 특수용기, 즉 ISO탱크(International Standardization Organization tank·국제표준 탱크)에 담아 운반한다. 흔히 말하는 탱크로리 차량이다.

울산시 청량읍 덕하리 물류션터 야적장에는 위험유해화학물질을 운반하는 ISO탱크 수백 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시사저널 박치현
울산신항만 배후 도로에는 유해위험화학물질을 실은 탱크로리 차량들이 불법주차해 있다. ⓒ시사저널 박치현

항만 배후도로와 공영차고지 불법 점령 

울산항 부두를 빠져나오는 유화제품 원료 운반 트럭 ISO탱크에는 해골과 불꽃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유해화학물이거나 위험물질을 싣고 있다는 표시다. 이 탱크로리 차량이 향한 곳은 울산 신항만 주변 한적한 배후도로변이다. 기사는 이곳에 화학물질 탱크로리를 방치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이 기사는 “제조회사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며칠씩 (배후도로변에) 대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탱크로리에는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된 불화수소(HF)가 실려 있었다. 불화수소의 맹독성은 2012년 9월 구미에서 발생한 누출사고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근로자 5명이 사망하고, 주변 농작물은 초토화됐다. 이곳 울산 신항만 배후도로변에는 산화프로필렌(C3H6O)·황산(H2SO4)·암모니아(NH3) 등 각종 위험·유해화학물질이 실린 탱크로리 수십 대가 늘어서 있었다. 이틀 후 기자가 현장을 다시 찾았을 때도 대부분의 탱크로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쉬어 가기 위해 잠시 정차한 게 장기 주차 차량들로 둔갑한 셈이었다. 

환경부의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위험·유해화학물질은 반드시 안전관리자 책임하에 허가받은 장소에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물류업체 이사는 “우리를 비롯한 물류회사 대부분이 영세한 탓에 적법한 보관장소 확보가 쉽지 않다. 허가업체에 위탁보관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길거리 주차’를 하고 적발되면 벌금을 내는 게 우리 업계의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기자의 취재에 동행한 산업안전공단 울산지도원장 출신인 신승부 전 울산대 교수는 “울산 신항만 배후도로가 화학물질 탱크로리의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위험천만”이라며 “차량 간 충돌사고가 나면 곧바로 유독물 누출과 화재, 폭발사고로 이어진다. 당국은 강력한 처벌과 함께 근본적인 대책을 하루빨리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위험유해화학물질을 운반하는 차량은 화학물질 교육을 이수한 안전책임자가 반드시 동승해야 한다. 하지만 기자가 확인한 탱크로리에는 대부분 운전기사 1명만 타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것이다.

ISO탱크에 붙어 있는 위험유해물질 마크
ISO탱크에 붙어 있는 위험유해물질 마크 ⓒ시사저널 박치현

“마땅히 둘 장소 없어 야적…이해해 달라”

8월8일 울산시 청량읍 화물차공영차고지에도 위험물질 탱크로리 차량과 트레일러 등 18대가 일반 화물차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들은 이틀 후에도 그대로 주차돼 있었다. 쉬어 가기 위한 일시 정차는 허용되지만, 공영차고지에 화학물질 운반 차량의 장기 주차는 불법이다. ISO탱크에는 유해·위험·폭발 등을 상징하는 마크들이 빽빽이 붙어 있다. 보기에도 섬뜩하다. 트레일러에는 LG니꼬동재련에 납품되는 독극물 황산 탱크가 실려 있었다. 

위험·유해화학물질인 액화암모니아(NH3) ISO탱크도 발견됐다. ISO탱크 한 대에는 20~24톤의 암모니아가 들어 있다. 고압 상태인 액화암모니아는 열을 받으면 독성이 강해지고 폭발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옥외저장소의 위치·구조 및 설비의 기준에는 ‘온도 상승 시 분해·발화 우려가 있는 유해화학물질의 실외 보관시설은 위험한 온도로 상승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지붕 등을 설치해 햇빛을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신승부 전 교수는 “고압 ISO탱크는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돼 열에 의해 부피가 증가, 폭발이나 탱크의 개폐 밸브 부분 등에서 암모니아 가스가 누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17일 한화토탈, 그리고 닷새 뒤인 22일 KPX그린케미칼에서 발생한 암모니아 유출 사고는 저장탱크 온도가 급상승해 탱크 내부의 유증기가 빠져나오면서 일어났다. 이 사고로 300명에 가까운 주민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암모니아 독성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성질이 다른 물질을 같은 장소에 보관할 경우 화학물질끼리 반응해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칸막이 등을 설치해 철저한 구분 보관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격투기 선수끼리 만나면 더 난폭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화학물질 탱크와 컨테이너가 산을 이루고 있는 울산시 청량읍 덕하리에 있는 한 물류센터를 찾았다. 일반인들의 통제가 엄격히 제한된 이곳은 한국탱크로리와 조운탱크로리, 부광종합물류, 한진 등 4개사가 야적장으로 쓰고 있다. 

10만㎡에 이르는 거대한 부지에 수백 개의 ISO탱크와 특수컨테이너가 층층이 쌓여 있다. 유해화학물질과 위험물질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고, 화학 성분도 20여 종에 이른다. 보관방법도 뒤죽박죽 혼재돼 있다. 하역 인부에게 탱크 안에 어떤 물질이 들어 있는지 물어보니 “모른다”고 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인부는 “석유화학제품 원료인데 우리는 전문지식이 없으니 회사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현장에는 단 한 명의 안전관리자조차 없었다.  

ISO탱크에 붙어 있는 화학물질을 확인해 봤다. 가연성 가스로 자연발화 가능성이 높아 제3류 위험·유독물로 분류돼 있는 알킬설폰산(-SO3H), 유해화학물질로 촉매나 반응제로 사용되는 포스트플러스 트리클로라이드(pcl3), 유해화학물질인 에틸렌디아민(C2H8N2)·불화수소(HF)·오황화린(P2S5)·에틸렌디아민(C2H8N2) 등 화학물질 백화점을 방불케 했다. 환경부와 소방청에 확인한 결과, 이곳은 위험·유해화학물질 보관장소로 허가가 나지 않았다. 해당 업체 A이사는 “대부분 빈 탱크지만 화학물질 잔량(殘量)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마땅히 둘 장소가 없어 임시 야적해 놨다. 이해해 달라”고 했다. 유해화학물질안전관리법에는 하역이 끝난 ISO탱크에 화학물질 잔량이 있으면 반드시 허가 장소에 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 전 교수는 “탱크 안에 남아 있는 액체화학물질은 독성 기체로 변하면서 기화층이 형성되고 결국 탱크 안은 기체로 꽉 채워져 화재나 폭발 위험이 높다. 이곳처럼 무허가 장소에 불법 야적해 놓은 것은 위험천만이다”고 경고했다.

울산에서는 매년 7.2건의 화학사고가 발생하고 강도가 세지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게 ‘하인리히 법칙’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울산에는 방치된 ‘화약고’가 수도 없이 많다. 

신 전 교수는 "화학물질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법적인 제도 정비와 안전재난 시스템 설립 등에 나서고 있지만, 운반·하역·보관업체에 대한 지도·단속은 아예 없는 상태“라며 ”대형 참사를 불러온 이번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폭발사고도 질산암모늄을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보관하다 일어났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방심하다가 예기치 못한 단속 사각지대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화학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울산 화물차공영차고지에 불법주차해 놓은 화학물질  탱크로리 차랑들 ⓒ
울산 화물차공영차고지에 불법주차해 놓은 화학물질 탱크로리 차랑들 ⓒ시사저널 박치현

소방 당국 “문제점 발견 못 해”…‘귀찮아서 단속 않는 것’ 비난도  

기자는 8월7일 관할 온산소방서에 안전점검을 의뢰했다. 위험물질 담당자는 “해당 업체 안전관리자가 자리를 비워 당장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10일 소방서 관계자는 “현장조사를 했는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알려왔다. 점검 방법을 물어봤다. 업체 측이 안내해 준 ISO탱크 15개를 열어보고 ‘합격판정’을 내렸다고 했다. 현장 인부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탱크를 운반했고, 해당 업체 이사도 잘못을 인정했다. 전문가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단속 기관인 소방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화학물질은 물과 열 그리고 스파크와 만나면 매우 위험하다. 과산화불화수소와 염화수소, 황화수소는 물과 만나면 폭발한다. 과산화수소와 과염소산은 열에 약하다. 낙뢰는 화학물질에 치명적이다. 스파크 발생으로 인한 화재·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보관 장소에 피뢰침을 달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처럼 폭염이 왔다가 폭우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치는 변화무쌍한 날씨가 지속되면 무허가 야적장은 화약고로 변할 수 있다.   

울산화학방재센터가 유해화학물질 단속을, 소방청이 위험물질 점검을 담당하고 있다. 모르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곳곳에 단속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울산공단 외곽의 인적이 뜸한 남구 성암동 488번지 빈터에도 수십 개의 탱크가 불법 야적돼 있다. 유독물을 운반할 때 사용하는 방수용 특수컨테이너부터 폭발성이 강한 과산화수소(H2O2)까지 독성·부식성·인화성 화학물질 탱크가 즐비하다. 

과연 단속 기관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물류정책기본법 제29조의 2에 따르면, 위험물질 운송차량은 단말장치를 달아야 하고 국토교통부령에 따라 운전자 정보, 운송 위험물질 종류, 출발지 및 목적지 등 운송계획에 관한 정보를 위험물질운송안전관리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단속 의지만 있으면 무허가 장소에 불법 야적하는 탱크로리 차량 추적은 간단하다. 그래서 단속 기관들이 모르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안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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