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0] 1990이 2020마저 흔들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0 14: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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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특집] 1990년대가 계속 호출되는 4가지 이유…새로움과 다양성이 폭발했던 문화적 르네상스

추억은 힘이 세다지만, 왜 계속 1990년대일까. 2020년 여름, 또다시 90년대가 소환됐다. 90년대 패션을 입고 그 시대의 음악을 선보인 혼성그룹 싹쓰리가 대중문화의 판을 흔들었다. 음원차트를 싹쓸이한 것은 물론, 크롭티와 멜빵바지 같은 90년대 패션도 다시 유행시켰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업계와 유통업계는 ‘레트로’를 키워드로 90년대 느낌이 물씬 나는 다양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유행했던 2010년대 초반과 중반에도 과거로의 회귀는 이뤄졌고, 그 회귀의 지점은 90년대였다. 대중문화계의 90년대 사랑은 ‘1990년 전성시대’라고 할 만큼 유별나다. 9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가수들이 TV와 유튜브를 여전히 누빈다. 90년대 노래를 소개하는 음악 프로그램과 90년대를 콘셉트로 하는 무대도 줄을 잇는다. 그래서 이 질문이 나온다. 왜 10년 전에도, 지금도, 하나의 문화적 흐름처럼 90년대는 계속 호출되고 조명될까. 90년대가 우리가 가진 문화적 자산의 전부가 아님에도 유독 90년대가 부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 질문 안에 지금 우리 시대의 자화상과 숙제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일요신문 자료사진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일요신문 자료사진
1996년 H.O.T의 데뷔는 아이돌 문화와 팬덤의 시작점이었다. ⓒ시사저널 포토
1996년 H.O.T의 데뷔는 아이돌 문화와 팬덤의 시작점이었다. ⓒ시사저널 포토

#1 추억이 아니라 90년대의 힘이 세다

대중문화 꽃피운 1990년대

한류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문화 강국 대한민국이 2020년에도 계속 90년대를 호출해 내는 첫 번째 이유. 90년대 자체가 가진 경쟁력을 들 수 있다. 90년대의 대중문화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힙’하게 느껴질 만큼 새롭고, 다양하고, 성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1990년은 한국 대중문화의 르네상스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적으로 독재가 가시지 않은, 억압된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이후 이 억압이 풀리기 시작했다. 세계화와 시장 개방을 외치면서 문화와 콘텐츠의 영역도 넓어져 갔다. 정치적·경제적 제약이 없다는 것은 생각과 정서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시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자유롭게 문화가 탄생하고 그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되는 배경이 됐다. 그렇게 해방된 90년대에는 새롭고 실험적인 문화 콘텐츠가 범람했다.

음악만 해도 그렇다. 그때의 음악시장은 말 그대로 다양했다. 지금의 음악시장은 아이돌 중심 문화가 강하지만, 당시엔 지금 기준으로는 대중적이지 않은 문화들이 다양하게 피어났다. 또 그 다양성들이 대중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이문세와 변진섭이, 신해철과 서태지와 아이들이, 신승훈과 김건모가 동시에 조명되던 시기였다. 정해진 ‘90년대의 음악’은 없었다. 50~60명 남짓이던 중·고등학교 한 반에는 015B, 토이, 전람회에서부터 크라잉넛, 델리스파이스, 김광석, 룰라, 듀스의 팬이 공존했다. 댄스와 랩, 포크와 발라드, 레게와 록이 모두 사랑받았던 다양성의 시대였다.

90년대는 지금의 아이돌 문화의 초석을 닦은 시기이기도 했다. 1996년 데뷔한 H.O.T는 아이돌 문화와 함께 ‘팬덤의 시작’을 열었고, 이듬해 데뷔한 젝스키스와 함께 대결구도를 만들어냈다. S.E.S와 핑클 같은 여자 아이돌도 등장했다. 여기에 이승환과 자우림, 지누션과 업타운 등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등장해 사랑받으면서 대중문화의 테두리는 점점 넓어졌다.

영화와 드라마 역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영화계에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을 알린 《쉬리》를 시작으로 멜로 영화의 진수 《8월의 크리스마스》, 해학과 오락성을 같이 담아낸 《투캅스》 등 다양하면서도 실험적인 영화가 쏟아졌다. 드라마계에서는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는 《질투》가 방영됐고, ‘귀가 시계’라고 불리며 남성들까지 사로잡은 《모래시계》가 대히트를 쳤다. 이렇게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니 ‘리뷰’ ‘키노’ ‘씨네21’ 등 대중문화적 흐름을 담론으로 분석하는 잡지들이 연이어 창간되기도 했다. 실로 90년대의 문화는 다양했고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귀가 시계'라고 불리며 사랑 받은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 ⓒSBS
'귀가 시계'라고 불리며 사랑 받은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 ⓒSBS
1999년 개봉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 《쉬리》 ⓒ삼성픽쳐스
1999년 개봉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 《쉬리》 ⓒ삼성픽쳐스

#2 불황은 추억을 소환한다

고성장 속 미래를 낙관하던 시기

우리가 90년대를 계속 소환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이 너무 힘들고’ ‘그때가 기억할 만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90년대는 한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기였다.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으로 대표되는 80년대 말의 경제 성장은 90년대에도 이어졌다. 경제성장률 7~8%. 호황으로 임금이 상승하고 내수가 진작되어 인구의 상당수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며 미래를 낙관했다. 정치적 억압은 완화되고, 경제적 위기는 아직 맞지 않은 시기. 삶의 무게보다 청춘의 낭만이 컸던 ‘마지막 시대’였다.

우리 사회에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까지 ‘내일’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비정규직’이란 말 따윈 없었고, 취업에 대한 걱정도 크지 않았다. ‘노력만 하면 잘살 수 있다’는 분위기가 주류였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91년 61.3%, 94년 60.4%로 60%를 상회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50% 중반으로 꺾였다. 2011년에는 52.8%까지 떨어졌다. 이후에는 어떨까.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인 의식·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체감 중산층’은 2013년 43.9%, 2016년 38.8%였고, 2019년에는 35.6%까지 하락했다. 스스로를 중산층 이하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2013년 50.9%였고, 2019년에는 59.8%로 늘었다. NH투자증권의 ‘2020 중산층 보고서’에 따르면 심지어 중산층 10명 중 4명은 스스로를 하위층으로 인식하고 있다.

2020년 오늘의 대한민국은 ‘노력만 하면 잘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게 됐다. 안 그래도 팍팍했던 현실에 코로나 쇼크까지 겹쳐지면서 어려움은 더해졌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현실을 위로하고 잊게 만드는 추억은 힘이 세다. 그런데 90년대만큼 우리에게 ‘좋았던 시기’는 없었다. 김나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복고를 찾는 이유로는 먼저 ‘위안’을 들 수 있다. 과거 따뜻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꺼내보며 위로받고 싶은 복고의 욕구는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더욱 강해진다. 지난 경제위기 때마다 복고가 강세를 보이기도 했는데 스트레스, 고독, 치열한 경쟁, 실업,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경험하는 요즘에 현대인들은 복고를 더욱 찾게 된다.”

지금의 삶은 90년대와 비교하면 너무 힘들다. 주요 문화 소비층이 30~40대인데, 이들은 앞선 부모 세대에 비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행복했던 시절은 그 시절, 1020세대로서 문화를 향유했던 90년대다. 그래서 그 시기에 대한 그리움은 더 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계속 90년대를 호출하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비극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1990년대의 감성을 담아내면서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했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는 1990년대의 감성을 담아내면서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했다. ⓒtvN
2014SUS 《무한도전-토토가》 특집에서는 S.E.S의 90년대 무대가 재현됐다. 출산을 앞둔 유진 대신 소녀시대 서현이 무대에 참여했다. ⓒMBC
2014년 《무한도전-토토가》 특집에서는 S.E.S의 90년대 무대가 재현됐다. ⓒMBC

#3 문화를 만들고 소비하는 3040

김태호·나영석·신원호 시대의 의미

복고는 주력 소비자층의 연령대가 과거를 돌아보는 시기에 이르렀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과거를 회상하려는 욕구는 인생 주기에서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선 후에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이들이 이제 인생을 돌아보는 3040세대에 이르렀고, 그들이 당시를 추억하려는 욕구가 90년대를 소환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범기 문화평론가는 “90년대 ‘신세대’는 적극적인 문화 소비자로서 대중문화의 성장을 견인하는 주된 동력이었다”며 “대중문화의 주된 소비자로서 한국 대중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세대”라고 설명했다. 대중문화의 르네상스를 경험한 3040세대의 문화 소비 욕구는 타 연령층보다 특히 강하고, 이것이 90년대와 관련된 문화 콘텐츠의 적극적인 소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세대가 문화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연령층이라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콘텐츠의 주력 생산자도 이 세대다. 3040이 콘텐츠 제작과 진행을 선도하게 되면서 ‘90년대 콘텐츠’가 본격 등장했다. 사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다. 3040세대 디자이너들이 패션 업계를 주도하게 되면서 90년대 스타일이 돌아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영화 《벌새》에는 81년생인 김보라 감독이 여성으로 겪어온 90년대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여기에 양현석, 박진영, 유희열 등 ‘90년대 인물’들이 일종의 문화권력이 돼 그 시대를 다시 소환해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90년대 학번인 김태호 PD는 《무한도전-토토가》와 《놀면 뭐하니?》 의 싹쓰리 등을 통해 그 시절 음악을 계속 호출하고 있다.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로 3040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 나영석 PD도 90년대 학번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 역시 90년대를 대학생으로 경험했다.

신원호 PD는 “1997년을 추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잊는 속도도 빠르다 보니 당시 기억들을 충분히 역사로 보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90년대를 더 객관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시간적 거리감이 생긴 지금.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동시에 겪으면서 유연한 문화적 감수성을 지니게 된 3040세대가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문화권력이 된 2020년. 그 시절로의 회귀는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클론이 등장한 1999년 PC통신 천리안 광고 ⓒ광고정보센터
클론이 등장한 1999년 PC통신 천리안 광고 ⓒ광고정보센터
1999년 유니텔 광고 ⓒ광고정보센터
1999년 김희선이 등장한 유니텔 광고 ⓒ광고정보센터

#4 1990은 2020과 通한다

X세대와 Z세대를 잇는 문화적 연결성

과거를 좇는 복고 콘텐츠들은 90년대에도 존재했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KBS 드라마 《초원의 빛》, MBC의 《내가 사는 이유》가 97년 등장했고, 98년에는 SBS 《은실이》, MBC 《육남매》와 같은 드라마가 유행했다. 70년대 유행했던 통기타 음악도 다시 유행했었다. 지나간 시대를 추억하고 그 시대의 서비스를 재현하는 복고는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트렌드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10년대에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90년대가 연이어 소환된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90년대의 소환이 연이어 성공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문화적 연결성’을 든다. 21세기의 문화의 뿌리가 90년대에 자리한다는 얘기다. 지금 대중음악을 장악하는 아이돌 문화는 90년대에 출발했다. 넷플릭스 열풍도 마찬가지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가 90년대에 한국에서 방영됐다는 것은 그 시기 대중문화의 틀에 이미 ‘미드’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90년대에 짜인 문화적 판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며 “90년대는 그 이전 세대와 달랐고, 그만큼 현재와의 유사성이 크다. 그 흐름이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 세대가 90년대 문화를 친밀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0년이 90년대를 거부감 없이 소환하고 소화해 내는 배경이다.

문화를 전파하고 소통하는 지금의 SNS 문화의 시초도 90년대다. 90년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한 일명 ‘디지로그’ 시대였다. 유선전화와 공중전화가 활발하게 이용된 시기이기도 하지만, PC통신과 휴대전화가 보급되던 디지털 황금기이기도 하다. 경이로운 무선통신의 시작을 삐삐가 열었고, 90년대 후반 들어서는 본격적인 모바일 시대가 시작됐다. 인터넷 상용화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94년이었다.

90년대 중반 드디어 천리안·유니텔 등 PC통신이 탄생했다. PC통신을 기반으로 동호회도 형성됐다. ‘정모’ ‘번개’ 등 신조어를 탄생시킨, 온라인 공동체 문화의 시작이었다. SF 연구자인 모희준 문화 칼럼니스트는 “근래 유행하고 있는 ‘빅 데이터’의 근원은 아마도 PC통신의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오는 수많은 게시물들일 것”이라며 “PC통신의 등장 이후로 한국 사회의 소통 방식은 수동적인 형태에서 능동적인 형태로,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누군가는 90년대의 연이은 소환을 ‘문화적 정체’로 분석한다. 대중문화 르네상스를 열었던 90년대를 능가할 만큼의 다양성과 참신함을 그 이후에는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다. 90년대는 그만큼 다양했고 참신했다. 단순한 ‘추억 팔이’만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인터넷 세상의 힘이 기성 시스템의 권능을 뛰어넘기 시작한 분기점이고, 지상파보다 유튜브가 대세인 시대다.

90년대는, 일방적 콘텐츠 수용자를 넘어 전 세계에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 전파하는 신인류가 ‘픽’한 ‘핫’한 아이템이기도 하다. 90년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스트리밍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공존시키는 유튜브 ‘온라인 탑골공원’은 지금이기 때문에 90년대가 더 소환되고, 더 전파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방식은 이미 존재하고, 또 새로워질 것이다. 90년대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소환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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