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특집] IMF와 삼풍백화점 참사가 계속 복기되는 이유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0 14: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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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첫사랑의 추억이 드라마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스하고 행복했던 1990년대가 계속 호출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90년대는 사실 마냥 풍요롭기만 하진 않았다. 정경유착과 권력형 부정비리가 존재했고, 위태로운 경제 성장은 결국 97년 IMF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90년대 한국 사회는 사실 내부적으로 구조적 문제가 곪을 대로 곪고 있었다. 94년 성수대교 붕괴와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그 상징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장동력은 약화됐다. 중산층은 무너졌으며, 빈부격차와 미래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두 번 다시 없을 것만 같던 안전사고는 2014년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으로 반복됐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는 추억에 젖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는지, 왜 우리는 그 모순점을 풀어내지 못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과거를 호출한다. 그래서 IMF가 시작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90년대는 자기반성과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된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IMF 사태를 집중 조명했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IMF 사태를 집중 조명했다. ⓒCJ엔터테인먼트

최근까지도 90년대 사건·사고를 다룬 대중문화 작품들이 나오는 이유다. 90년대의 복기는 당시 문제점에 대한 성찰로도 이어졌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불법 용도 변경, 부실시공, 뇌물수수 등 불법과 비리가 난무한 결과였다. 2013년 MBC 《스캔들》, SBS 《황금의 제국》 등 드라마는 90년대 부정부패와 부실공사, 경영권 다툼 등 그 당시부터 부각된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다루면서 그 시기와 오늘을 반성하는 역할을 했다.

올 초 방영한 tvN 드라마 《머니게임》은 IMF 이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모티브로 ‘제2의 IMF’에 대한 불안감을 그려냈다. 2018년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IMF 사태를 집중 조명했다. “해고가 쉬워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실업이 일상이 되는 세상, IMF가 만들어낼 그런 세상이 돼서는 안 됩니다”라는 대사가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시작된 90년대

당시 사고를 복기하는 것은 지금도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에 경고장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2015년 서울시청에서 열린 삼풍백화점 참사 관련 기획 전시도 그랬다. 전시 제목 ‘이젠 저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예요’는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삼풍백화점이 문을 열었을 때의 지면광고 카피다. “단순히 과거의 사고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를 통해 한국 사회를 되짚어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의미”라는 큐레이터 설명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 《벌새》는 성수대교 붕괴가 한 개인을 둘러싼 관계와 시스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심하게 그려냈다. ⓒ엣나인필름
영화 《벌새》는 성수대교 붕괴가 한 개인을 둘러싼 관계와 시스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심하게 그려냈다. ⓒ엣나인필름

우린 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과거의 상실과 아픔은 지금의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2017년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등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다. 인생을 뒤흔든 붕괴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상처를 보듬어 나가는 과정을 다뤘다. 작년 개봉한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는 성수대교 붕괴가 한 개인을 둘러싼 관계와 시스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심하게 그려냈다. 그때 그 시절은 그저 따스하고 인간적이기만 한 시대는 아니었다. 반성하고 성찰해야 하는 과거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과거는 많은 이들의 오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90년대를 호출하는 또 하나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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