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경제권력’ 세대 교체 가속화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9 10: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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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이재용·구광모·정의선 각각 1·4·6위…이건희·정몽구 회장 순위 갈수록 하락

‘2020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국내 언론 사상 단일 주제 최장기 기획인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는 1989년 창간 이후 31년째 계속되고 있다. 올해도 국내 오피니언 리더들인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인·문화예술인·종교인 각각 100명씩 총 1000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여론조사 전문기관 ‘칸타퍼블릭’과 함께 했다.

‘전체 영향력’을 비롯해 정치·경제·언론·문화예술 등 13개 부문에 걸쳐 각 분야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총망라됐다. 6월22일부터 7월15일까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자는 남성 72.2%, 여성 27.8% 비율이며, 연령별로는 30대 23.6%, 40대 33.3%, 50대 32.9%, 60세 이상 10.3%다. 각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7월7일 일본행 비행기에 급히 몸을 실었다. 일본 정부의 기습적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일본이 수출규제를 예고한 품목은 모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였다.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생산 중단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부회장이 수행원도 없이 서둘러 일본으로 날아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 관계를 맺었던 지인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의 핵심 산업을 위축시키기 위해 아베 정부가 치밀하게 계산하고 내놓은 게 수출규제 조치였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내저었다. 결국 이 부회장은 일본으로 떠난 지 6일 만인 7월12일 별다른 소득 없이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해야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日 수출규제에도 삼성전자 ‘어닝 서프라이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법 리스크까지 불거졌다. 대법원은 8월29일 이 부 회장이 피고인 신분으로 연루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2심 재판부는 말 3마리 구입대금(34억1797만원)과 영재센터 후원금(16억2800만원)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코어스포츠 용역대금(36억3484만원)만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판결로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액은 86억8081만원이 됐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어서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난 이 부회장이 또다시 수감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재계에서는 ‘삼성 위기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 일이 있고 1년 정도가 흘렀다.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삼성 위기설은 어느 정도 진화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삼성전자는 7월30일 2분기 실적을 공개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도 8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23.5% 늘어난 규모였다.

삼성전자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발표할 당시 이 부회장은 반도체 사업부 사장단과 함께 충남 온양사업장을 찾았다. 외부의 악재에 흔들리지 않고 현장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발표한 굵직한 프로젝트만 여럿이다.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메모리반도체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만 14조7000억원을 반도체에 투자했다. 디스플레이에도 1조6000억원가량을 쏟아 부었다. 특히 평택 반도체 3공장(P3)은 이 부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되고 있다. 투자금액만 최소 30조원 이상으로 이르면 9월 본격 착공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그동안 한국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의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와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아미드 수급을 절대적으로 일본에 의지해 왔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고순도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오히려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됐다.

이 부회장은 소재에 이은 장비 국산화에도 공을 들였다. 삼성전자는 최근 협력업체인 에스앤에스텍과 와이아이케이의 지분을 취득했다. 에스앤에스텍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과정에 쓰이는 블랭크마스크를 만드는 업체다. 와이아이케이는 반도체 검사장비 제조업체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식으로 두 회사에 각각 659억원과 473억원을 출자해 신주를 취득하면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도 ‘탈(脫)일본’을 가속화하고 있다.

해마다 강세 보이던 경제관료들은 ‘주춤’

이 때문일까. 이 부회장은 올해 시사저널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또는 경제관료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목률은 81.8%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처음으로 10위권(11.5%)에 진입했다.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그해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자 이 부회장에게로 시선이 옮겨간 것이다. 이후 지목률이 급상승했고, 2016년에는 60%로 영향력 있는 경제인 1위에 올랐다. 이듬해 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지목률이 47.6%까지 낮아지기도 했지만, 2016년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올해는 지목률이 81.8%로 2위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22.9%)과 3위인 최태원 SK그룹 회장(11.2%)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약진도 눈에 띈다. 구 회장은 2018년 LG그룹 총수가 되면서 10위권(4.5%·6위) 내에 처음 랭크됐다. 올해는 지목률 5.4%(4위)로 순위가 두 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처음 순위권(2.1%·10위)에 오른 정 부회장은 올해 6위(4.9%)로 지목률이나 순위가 모두 상승했다.

반면에 아버지 세대인 이건희 회장(3.9%·8위)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2.8%·10위)의 지목률이나 순위는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의 세대 교체는 향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강세를 보이던 경제관료가 주춤한 것도 올해 조사에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16.5%·2위)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8.9%·3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3.2%·8위)가 순위권에 들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지만 전반적으로 순위가 하락했다. 최근 계속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함께 여권 인사들의 스캔들이 조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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