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임 통치? 北에 대한 이해 ‘위임’ 말아야
  •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9 10:00
  • 호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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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과장된 표현으로 혼선 부른 국정원

‘북한은 억울하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위임 통치’ 뉴스 속보를 접한 후 처음 든 생각이었다. 지난 8월20일 늦은 오후 국가정보원의 국회 보고 내용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이날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에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국정 전반에 있어 위임 통치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지난 4월말 ‘김정은 위중설’로 들썩였던 언론은 갑자기 호재를 만난 듯 ‘평양 권력 이상설’ ‘김정은 코마설’ ‘가짜 김정은설’ 등을 퍼날랐다.  

이날 오전 평양발 뉴스로 김 위원장이 참석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6차 전원회의가 열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채 12시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번 6차 전원회의에서는 내년 1월 제8차 당대회 개최라는 아주 중요한 결정을 발표했고,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연설에서 “당 제8차 대회에서는 올해의 사업정형과 함께 총결기간 당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총화하고 다음 해의 사업방향을 포함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밝혔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위임 통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당·정·군을 장악한 상황에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연합뉴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위임 통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당·정·군을 장악한 상황에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연합뉴스

‘정상국가화’와 ‘책임 소재 분산’ 노림수

북한은 자기 궤도 위에서 누가 뭐래도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당대회 개최 주기 5년을 복원하는 공표를 했다는 점에서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과거 조선노동당 규약 제21조는 5년마다 당대회 개최를 규정했다. 하지만 이 규정은 그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2016년 열린 제7차 당대회는 그 이전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 36년 만에 소집됐다. 북한은 2010년 당대회를 5년마다 개최한다는 내용을 조선노동당 규약 제21조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당대회 개최 5년 주기가 무너진 상태였다. 이번 북한의 발표대로 2021년에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하면 당대회 개최 5년 주기가 사실상 복원되는 셈이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줄기차게 추진돼 온 당 중심의 국가 운영체제가 확립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정원의 ‘깜짝 발표’가 있었던 8월20일은 그 중요한 소식이 전해지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 위임 통치 속보로 이 소식은 온데간데없이 묻히고 말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일이다. 자기들은 아무 이상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남쪽에서 이상이 있다고 규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북한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국정원에 의해서 말이다. 더욱 이상한 점은 국정원이 북한의 권력 내부 상황에 대해 내용상으로는 비교적 정확한 분석과 보고를 했음에도 그와는 동떨어진 ‘위임 통치’라는 한마디 표현을 붙여 북한의 상황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날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단도 “위임 통치는 김여정 1인한테만 해당하는 건 아니고 경제는 박봉주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 군사 분야는 최부일 군정지도부장과 전략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리병철 부위원장에게 부분적으로 권한을 위임했다. 문제가 있어 권한을 분할했다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김 위원장 본인이 다 한다”고 국정원 보고 내용을 전했다. 내용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위임 통치’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상황이 이상해졌다. 청와대와 통일부도 현재 김 위원장이 북한의 당·정·군을 장악한 상황에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 역할 분담은 정상국가화와 책임 소재 분산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먼저 정상국가화 차원이다. 대다수 나라에서 대통령이나 총리가 모든 사안을 보고받고 결재하지는 않는다. 장관들이 위임받은 사항에 대해 전결을 하고 현안을 챙긴다. 대통령이나 총리는 주요 방향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하고 장관들은 이 결정과 지시를 집행한다. 

북한도 이 방향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도 입후보하지 않았다. 형식상 입법과 행정의 분리를 가시화하고 정상국가로 가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 때와는 다른 통치방식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 현재 김정은 위원장이다. 

책임 소재 분산도 마찬가지다. 역할 분담을 통한 정상국가화 추구는 각 부문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특히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발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음을 자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모든 책임을 김 위원장이 혼자 져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북한은 올해 하반기를 8차 당대회 준비기로 삼아 실패의 원인과 미비점을 점검하고 새로운 계획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역할 분담을 통해 실패의 책임 소재를 나누고 앞으로 새로운 계획과 전략을 집행하는 데도 통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 

 

하노이 노딜 이후 정치적 부담 커져

김 위원장의 통치 부담은 지난해 ‘하노이 노딜(No Deal·거래 무산)’ 이후 본격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노이 노딜 이후 김 위원장의 20일 이상 장기 잠행도 잦아졌다. 하노이 노딜로 인해 제재 해제 성과를 기대만큼 거두지 못하면서 김 위원장으로서는 장고에 들어갈 일이 많아졌을 것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예상치 못한 위기가 전개되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막막한 상황이다. ‘무오류의 수령’이 책임질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을 혼자 다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눈 뜨고 당할 수도 없다. 역할 분담을 통해 책임 소재를 나누는 일은 필수다. 권한은 자신이 가지고 있되 형식적으로 대부분의 나라들이 하고 있는 지도층 역할 분담을 시도하며 돌파구를 모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을 바라볼 때 절대 권력을 가진 1인 최고지도자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체제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렇다 보니 이런 경향성에서 벗어난 현상은 무조건 비정상이거나 이상하다고 해석하는 관성도 생겼다. 국정원의 ‘위임 통치’라는 해석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퍼져 나간 데도 이런 관성이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가짜뉴스에 북한 정보와 이해를 ‘위임’하는 일이 없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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