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CEO도 기소되면 직무에서 배제해야”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2 10:00
  • 호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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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부정청탁자 명단 공개해야”

대형 금융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좌절하고 절규하는데 정작 사고를 낸 금융회사나 부실한 관리·감독으로 사태를 키운 금융 당국에서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장면’의 반복을 막으려면 ‘구조’를 바꿔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대형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다. 그는 2013년 설립된 금융정의연대를 통해 금융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계속 동분서주해 왔다. 

ⓒ뉴스뱅크
ⓒ뉴스뱅크

많은 피해를 낸 DLF 사태를 어떻게 정의하나. 

“법적으로는 고의성이 있어야 사기죄가 성립된다. 하지만 판매사들은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 ‘절대 원금 손실은 없다’는 식으로 판매했다. 이는 사기 판매다. 해외금리 연계 상품이라며 안전성을 강조했지만, DLF는 도박에 가까운 상품이다. 그것도 불공정한 도박 상품이다. 이자는 최대로 받아봤자 한 자릿수인데, 원금 손실은 100%까지 날 수 있다. 은행들은 이 위험한 조건을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을 안 했다. 결국 피해자 중 100% 원금 손실을 입은 경우가 생겼다.”

금융회사와 금융 당국 중 누구의 책임이 클까.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로 사모펀드 부실과 사기가 가능하게 규제를 완화한 금융위원회(금융위)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2018년 미스터리쇼핑(암행 점검)에서 문제가 된 우리·하나은행에 대해 제대로 된 점검이나 현장 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책임도 있다. 당국의 책임도 만만치 않지만 ‘우리도 몰랐고, 속았으니 책임이 없다’며 방관하고 있는 금융지주회사들도 큰 문제다. 특히 우리·하나은행의 은행장들은 금감원 징계에 불복하고 소송을 했다. 은행 CEO가 중징계 제재를 받아 현직에서 사임하고 소송을 한 적은 있어도, 현직을 유지하면서 불복 소송을 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왜 이전과 달리 금융회사들이 소송전을 불사할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금융지주 회장 자리 때문이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지주회장직도 겸하고 있었는데, 연임을 위해서는 소송이 필요했다. 차기 하나금융지주 회장으로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인 함영주 전 은행장(하나금융지주 부회장) 역시 내년 3월 회장으로 선출되고자 소송전을 펼치고 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들의 반격에 개의치 말고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책임이 있는 은행장들에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 또 미비한 제도가 있다면 신속히 개선해야 한다.”

금융 당국에서도 지금껏 누구 하나 책임지는 모습이 없다.

“금융 당국에 법적 책임이 없다 보니 처벌받는 사람도 없다. 책임지고 금융 당국 수장이 사퇴한 경우도 없다. 자체 징계나 법적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문제를 야기한 제도를 도입한 책임자는 승진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 인사상 책임을 묻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아울러 금융 당국이 지금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분리돼 있는데 금융위를 해체해 정책기능은 정부로 이관하고, 금감원이 금융 감독을 책임지게 하는 금융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또 금감원의 금융소비자보호처는 분리해 국가인권위 같은 독립적인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로 만들어야 한다.”

금융회사들은 ‘취업 비리’로도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은행권은 채용 비리 사태로 수많은 청년을 들러리로 전락시키며 국민 모두에게 좌절감을 줬다. 신한·하나은행의 재판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끝난 게 아니다. 채용 비리는 채용의 공정을 기대한 사회 전반의 신뢰를 훼손한 엄중한 사건임에도 법원의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부산은행 등의 경우 대법원 판결이 확정됐는데, 피해자 구제나 부정 입사자에 대한 조치가 전혀 없다. 2018년 제정한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 규준에 따라 부정 합격자에 대한 채용을 취소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한다. 책임자인 은행들은 피해자 구제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청년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어떻게 해야 취업 비리를 근절할 수 있을까.

“왜 채용 비리가 끊이지 않을까? 은행장이나 지주회장 입장에서는 청탁자의 지위에 따라 도와주면 연임에 유리하거나 자신들의 부정을 방어해 줄 안전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감원 고위 인사나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의 인사 청탁을 들어주면 금감원 검사나 정무위 국정감사 등에서 이들이 구원투수로 등장할 수 있다. 부정청탁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부정청탁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 명단도 공개해야 한다.”

끝까지 책임을 물을 제도도 필요하지 않나.

“맞다. 채용 비리의 책임을 져야 할 수장들이 현재 무죄추정 원칙을 주장하며 시간 끌기 재판 등으로 회장직을 노리거나 연임을 하는 염치없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 대다수 은행의 임직원들은 사내 인사규정에 따라 기소를 당해 재판을 받게 되면 직무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은행의 CEO는 꼼수로 직을 유지하고 있다. CEO도 같은 방식으로 직무에서 배제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해외와 달리 왜 우리나라는 잘못을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나.

“한국은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가 금융 관련 법으로 한정돼 있다. 또 금융 관련 법을 위반해도 징벌적 제재가 없다. 법원에서는 초범이거나 직원의 신분 등을 보고 솜방망이 처벌을 반복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징벌적 제재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막강한 힘을 가진 금융회사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아울러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 2008년 미국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 출신인 메이도프가 50조원 규모의 금융사기를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처벌 수준이 어땠을 것 같나?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아직도 수감 중이다. 올해 6월 신장 질병을 이유로 조기 석방을 요청했지만 미국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달리 한국은 금융범죄의 경우 형법상 사기와 특별경제가중처벌까지 적용해도 형량이 미국보다 현저히 낮다. 따라서 21대 국회는 금융소비자법 제정 당시 미래통합당의 반대로 빠진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 필요한 제도적 뒷받침은 무엇인가.

“분쟁조정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해야 한다. 자본시장에서 분쟁조정이 발생했을 때 금융 당국의 조정 결정에 대해 투자자는 소송 제기가 가능하지만, 금융회사는 소송 제기 없이 무조건 수용하게끔 하는 제도다. 권고 배상액이 일정 금액 이하일 경우에 해당된다. 이를 전문용어로 ‘편면적 구속력’이라고 한다. 지금은 분쟁조정에 강제력이 없어 금융소비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 국회가 적극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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