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금융사고의 악순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2 10:00
  • 호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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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令) 안 서는 당국…금융수장들 징계 불복 잇따라
176석 與, 3배 배상·CEO 제재·조정안 강제화 추진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면 기시감이 드는 레퍼토리가 있다.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사고가 난 금융회사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앞으로 달려가 항의를 한다. 그런 뒤 국회 정무위원회가 열린다. 국회의원들과 감독 당국자 간의 공격과 수비가 옥신각신 벌어진다. 금융위는 금감원에, 금감원은 금융위에 책임을 떠넘긴다. 몇몇 국회의원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 위한 제도를 만들자고 한다. 그렇게 금융위와 금감원의 덩치는 더 커진다. 일부는 금융 피해를 보존해 주자고 주장한다(선거를 앞두고 있으면 이 발언은 종종 현실이 된다). 

문제는 국정감사 날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국감장에 금융회사 수장들이 줄줄이 나와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책임은 질 수 없다고 한다. 아직 법적인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말이 뒤따른다. 몇몇 국회의원이 책상을 치며 호통을 친다. 연신 고개를 숙이지만 책임은 질 수 없다고 한다. 금융 당국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대략 국감이 마무리된다. 밖에서는 투자자들이 국감장을 나와 청와대 앞까지 가 목이 쉬어라 항의하고 호소하지만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그렇게 대형 금융사고는 별로 해결된 것 없이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라임, DLS, DLF, 디스커버리, 이탈리아 헬스케어, 팝펀딩, 옵티머스 사태까지 나열만 해도 숨이 가쁠 만큼 금융사고가 터지고 있는데 책임을 지는 금융회사 수장이나 금융 당국 관료는 없다. ⓒ연합뉴스

“금융 당국 책임” vs “금융회사 책임”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8년 키코 사태,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2013년 동양 사태, 2014년 카드사 고객 정보 유출 사태 등은 모두 이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처리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고가 난 금융회사의 수장이 책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책임을 지거나 다친 금융관료도 많지 않다. 지난해부터 사모펀드에서 대규모 금융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지만 이번에도 일은 비슷하게 진행 중이다. 라임, DLS, DLF, 디스커버리, 이탈리아 헬스케어, 팝펀딩, 옵티머스 사태까지 나열만 해도 숨이 가쁠 만큼 금융사고는 많은데, 책임을 제대로 지는 이는 정말 단 한 명도 없다. 

대형 금융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서로 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야당은 금융 당국, 특히 금감원의 과실에 방점을 찍는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7월 국회에서 열린 ‘독점적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과 개편 방향’ 세미나에서 “요즘 금융사고를 보면 금감원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독자적인 금융 감독 체계와 사전·사후 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 (정권이) 지나치게 금감원에 많이 간섭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른바 금감원 책임론으로, 그 이유가 ‘금융 감독의 정치화’다. 정권 눈치를 보느라 할 일을 제대로 안 했다는 지적인데, 지난 수십 년간 금융사고가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다소 생뚱맞은 진단이다. 정치적 공세라 할 수 있다.

여당은 전혀 다른 진단을 내놨다. 여당에서 금융 전문가로 인정받는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최근 한겨레 기고를 통해 “금융회사의 실적과 연계되는 보상 시스템, 느슨한 내부 통제장치, 사고가 났을 때 경영자는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연이은 금융사고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김 전 원장은 “아무리 감독행정을 강화해도 수많은 금융상품의 판매를 사전적으로는커녕 사후적으로도 대처하기 어렵다”면서 “금융회사와 금융지주사가 스스로 통제를 해야 한다. 회사가 자율 규제의 책임을 지도록 제도를 만들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최고경영자(CEO)에게 묻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규제 완화의 허점을 메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금융회사들에 더 큰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힌 진단이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시간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압승해 176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이 됐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김 전 원장의 말처럼 최근 잇따른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을 금융회사의 수장에게 묻고, 금융회사가 자율 규제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고 있을까. 대답은 쉽지 않다. 책임의 일부를 수장에게 ‘묻고’ 있긴 한데, 그 책임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지는 않다. 금융회사 수장들은 금융 당국의 제재안에 연이어 불복하는 모습을 연출 중이다. 제도적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다고 하기도 이르다. 몇몇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긴 하지만, 정무위 내 여당의 분위기는 “통과를 예단할 순 없다”에 가깝다. 금융사고에 대처하고 수습하는 데 있어 문재인 정부는 아직 시간을 지배하고 있지 못하다.

책임 외면하는 금융지주 수장들

금감원은 올해 초 DLF 출시·판매 과정에서 나타난 내부 통제 절차 미비 등의 책임을 물어 CEO인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대해 ‘문책경고’ 징계를 결정했다. 확정 시 금융권 재취업이 3년간 제한되는 중징계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이 결정에 불복해 사건을 사법부로 끌고 갔고, 법원은 이들의 제재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는 등 금융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금융 당국이 금융회사 임원의 제재 조치에 추상적·포괄적 사유만 제시해 구체적·개별적인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손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함 부회장 역시 내년 3월에 임기를 마치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직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과연 이런 흐름이 ‘좋은 선례’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우리은행은 DLF 사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고객 비밀번호 무단 도용 사건 등 최근 잇따라 불거진 금융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금융권 전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사건에 빠짐없이 등장한 은행이 바로 우리은행이란 얘기다. 이 시기의 우리은행은 내부 통제 장치가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손 회장은 2017년 말부터 올해 3월까지 우리은행장을 겸직했다. 2018년 말부터는 계속 회장이었다. 금감원 징계 수위 등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따지기 전에 각종 금융사고의 최고책임자라는 이가 연임에 성공한 셈이다. 

하나은행 역시 DLF·라임 사태에 책임이 있다. 라임 펀드는 환매 연기된 금액이 1조6700억원, 피해자 수는 4600명에 이른다. 하나은행 등 판매사들은 “우리들도 속았고, 피해자”라고 하지만, 이 얘기는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전문금융회사가 자신들도 모르는 상품을 팔았다는 게 된다. 최소한 고객에게 금융계약의 주요 내용에 대한 착오를 유발해 상품을 판매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함 부회장은 지금도, 당시에도 책임을 질 만한 위치에 있다. 그는 지난해 3월까지 하나은행장이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는 하나금융지주의 부회장이다. 국민·신한은행도 다르지 않다. 채용 비리에 지주사와 은행 임원을 비롯한 고위직들이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금융회사들은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과도한 징계를 내린다고 반발한다. 여기엔 갑론을박이 있다. 해외는 어떨까. 올해 초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미국 4대 은행인 웰스파고의 존 스텀프 전 CEO를 은행업계에서 영구 퇴출시켰다. 웰스파고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고객 동의 없이 350만 개가량의 유령계좌를 개설한 사건에 대한 책임 묻기였다. OCC는 스텀프 전 CEO에게 벌금 1750만 달러(약 208억원)도 부과했다. OCC는 “불합리한 영업 목표를 설정하고 직원에게 이런 목표를 달성하라고 부당한 압력을 가한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이번 제재로 금융회사가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법을 준수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분쟁조정 수용’ 의무화될까 

라임·DLF 사태처럼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금융사고를 해결하는 제도적 방안은 무엇일까. 바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조정이다. 문제는 이 조정이 강제력이 없다는 점이다. 소비자와 금융회사 모두 조정 내용을 받아들일 때에만 조정이 ‘성립’된다. 그렇다 보니 피해 액수가 클수록 오히려 조정은 ‘성립’되지 않고 ‘결렬’되기 일쑤다. 조정이 결렬되면 민사소송을 통해 분쟁을 매듭지어야 하는데, 여기엔 막대한 소송비용이 들어간다. 재판 기간도 통상 3~5년이 걸린다. 

실제 조정은 상당 경우 결렬된다. 라임 펀드가 대표적이다. 금감원 분조위는 판매사들에 2018년 11월 이후 라임 펀드를 산 투자자들에게 원금 100%를 반환해야 한다고 결정했지만, 우리·하나은행과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등은 한동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키코 분쟁에 대해서도 6개 은행 중 5개 은행이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금감원은 분쟁조정에 ‘강제력’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자본시장에서 분쟁조정이 발생했을 때 금융 당국의 조정 결정에 대해 투자자는 소송 제기가 가능하지만, 금융회사는 소송 제기 없이 무조건 수용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편면적 구속력’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정보와 자본이 열악한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효과가 있지만 금융회사들은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갈 수 없어 반대하는 제도다. 

여당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월12일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냈다. 개정안은 2000만원 이하 소액 분쟁의 경우 ‘편면적 구속력’을 적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금감원 분쟁조정 사례 중 2000만원 이하 사건이 전체의 78%를 차지한다. 이 의원은 “최근 금융회사들이 조정안을 수락하지 않고 시간을 끌거나 아예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분조위 권고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영국·호주·일본 등 선진국에서 도입한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우리도 도입해 소비자의 권익을 좀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 외에도 민주당은 판매자의 위법행위로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손해액의 최대 3배 범위에서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금융 소비자 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전재수 의원)과 내부통제 기준 및 위험관리 기준을 위반한 금융회사에 대해 소비자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김한정 의원)을 각각 발의했다. 김 의원의 개정안에는 내부통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경영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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