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판매 부추기는 ‘엇나간 KPI’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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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가 소비자 보호는 뒷전인체 판매에만 열 올리는 이유

은행원들은 왜 라임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같은 고위험 상품을 고객들에게 마구 권했을까. 상품에 대한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고 손실 가능성을 숨긴 것은 물론 투자 확인서까지 조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 뱅킹 휴먼 고객 수만 명의 비밀번호를 무단 변경까지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은행원들의 이런 부도덕한 행동의 배경으로는 은행들의 실적 지상주의가 꼽힌다. 고객보다는 은행 이익을 앞세우게 한 인사고과(人事考課) 기준이 라임·DLF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무슨 말일까. 

인사고과는 직원의 능력·성적·태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뜻한다. 금융권에서 사용하는 인사고과 채점표를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라 한다. 은행원들의 승진과 성과급이 KPI에 좌지우지 된다. “만약 KPI에 ‘통일’을 넣으면 남북통일도 이뤄질 것”이란 농담이 나올 정도로 은행원들이 매달리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 KPI가 ‘고객 중심’이 아니라 ‘은행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데 있다. 고객은 뒷전으로 하고 은행 이익 챙기기에 몰두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게 설계돼 있다는 얘기다. 

판매 배점은 높게 소비자 보호 배점은 낮게

실제 일선 현장은 어땠을까. DLF를 불완전 판매한 우리·하나은행을 제재한 금융당국의 제재내용에는 ‘실적 지상주의 KPI’가 불러온 비극, 그 속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은행 일반 영업점의 2019년 상반기 KPI 배점을 보면, 비이자이익(10%), 상품 판매(3.5%) 등이 고객 수익률(2.0%)과 소비자 보호(-2.0%)보다 훨씬 높았다. PB센터는 더 했다. 비이자이익(20.0%), 상품 판매(9.0%)의 비중은 두 배 이상으로 높은데, 고객 수익률(2.0%) 배점은 그대로였다. 심지어 소비자 보호 관련 배점은 아예 없었다. 당국은 “KPI 기준상 고객 관리를 소홀히 할 유인이 존재한다”고 질타했다.

여기엔 경영진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우리은행 제재안에는 “은행장이 2018년도부터 펀드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기 위해 사모펀드 위주의 외형 성장 극대화 전략을 추구했다”고 나와 있다. 

하나은행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은행은 매일 게시판에 모든 PB들의 개인별 순위와 실적을 포함한 KPI 가평가 결과를 게시해 서로의 순위를 확인하게 했다. PB 간의 과도한 경쟁을 유도한 것이다. 반면 PB 개인 KPI에는 소비자 보호 및 불완전 판매 관련 배점(감점)이 아예 없었다.

국내 주요 일반은행의 KPI 구성비 ⓒ금융연구원
국내 주요 일반은행의 KPI 구성비 ⓒ금융연구원

두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우리 주요 은행들의 KPI 항목은 수익성(평균 54.0%), 고객 유치(19%), 여·수신 규모(13.9%) 등 단기 실적 중심으로 짜여 있다. 금융상품을 얼마나 가입시켰는지, 회사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반면 장기적 관점이 반영된 건전성(9.5%)과 고객 만족도(1.8%) 등은 비중이 낮다. 소비자 보호 항목은 문제가 발생하면 총점에서 감점하는 방식인데 평균 1.5%만 깎이는 수준이다. 

즉 은행원 입장에선 상품 판매 실적은 인사고과의 20%가량을 차지하는데, 소비자 보호 부분은 문제가 돼 봤자 2% 정도의 감점만 있다. 설사 불완전 판매라 할지라도 고객이야 손해가 나든 말든 무조건 많이 팔고 보자는 식으로 움직이게 돼 있는 셈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판매사 직원들이 무리하게 불완전판매를 한 핵심 이유는 판매 실적을 직원 성과에 직접 연결시키는 KPI 때문”이라면서 “이 지표를 만드는 것은 결국 판매사들의 최고경영자(CEO)다. CEO의 책임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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