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실적 부진에도 주가 상승 믿습니까?
  • 이종우 이코노미스트(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6 10: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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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_금융] ‘유동성의 힘’ 말고 상승 요인 있는지 따져봐야

요즘처럼 시장 분석을 하는 사람들이 곤란을 겪었던 적은 없었다. 주가가 올랐지만 경제와 기업 실적은 좋지 않아 둘을 엮어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0.2%에서 -1.3%로 내렸다. 코로나19 2차 확산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다른 선진국은 이미 하향 조정이 끝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에 따르면 올해는 일본(-6.0%), 독일(-6.6%), 미국(-7.3%), 프랑스(-11.4%), 영국(-11.5%) 등 모든 선진국이 큰 폭의 성장 후퇴를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하향 조정의 영향은 올해로 끝나지 않는다. 내년 말이 돼야 선진국 경제가 지난해 초 수준을 회복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기업 실적도 실망스럽다. 상반기 코스피 상장사 영업이익은 59조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 줄었다. 순이익도 37조원으로 27% 감소했다. 이 숫자를 가지고 주가순이익배율(PER)을 계산해 보면 28배가 나온다. 외환위기를 제외하고 해당 지표가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다. 

유동성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높아

기업 이익이 부실하다 보니 ‘돈이 많아도 더 이상 주가 상승이 힘든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행히 2분기 실적은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1분기보다 개선됐다. 2분기 영업이익은 1분기보다 19% 증가했다. 순이익도 25% 늘어났다. 문제는 매출이다. 매출액은 9% 가까이 줄어 이익 증가 효과를 반감시켰다. 이익 증가가 영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비용 감소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증거다. 불황기에 전형적으로 나오는 패턴이다. 코로나19로 기업의 활동성이 떨어지다 보니 과거에 영업을 위해 들어가던 돈이 2분기에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 영향으로 매출 감소에도 이익이 늘어난 셈이다. 

경제와 기업 실적이 좋지 않지만 시장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이유는 둘이다. 하나는 어차피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펀더멘털이 나쁠 수밖에 없고, 그 영향은 3월 하락을 통해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는 주장이다. 올해 경제가 좋지 않았던 반작용으로 내년에 좋은 수치가 나올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전망이다. 

두 번째는 유동성이다. 시중에 많은 돈이 깔려 있기 때문에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란 판단이다. 유동성에 기대를 거는 쪽에서는 52조원에 달하는 고객예탁금과 지난 6개월간 이루어진 개인 순매수를 증거로 삼고 있다. 52조원은 국민 모두에게 100만원씩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이렇게 많은 돈이 주식을 사겠다고 대기하고 있는 만큼 주가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설령 떨어진다 하더라도 개인 매수가 다시 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믿음이다. 

반대 쪽 설명도 있다. 이들은 지난 6개월간 개인투자자가 28조원의 순매수를 기록했지만 이 중 실제로 시장에 들어온 돈은 8조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28조원 중 10조원은 주식형 펀드를 환매해 직접 주식 투자에 나선 돈이고, 나머지 10조원은 신용 매수가 늘어난 부분이어서 순수한 개인 자금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고객예탁금을 보는 시각도 다르다. 현재 고객예탁금은 시가총액의 3% 정도 된다. 지난 30년간 주가와 고객예탁금의 관계를 보면 주가가 하락할 때는 시기총액 대비 고객예탁금 비중이 1% 조금 넘는 수준으로 내려왔다가 주가가 상승하면 3~4%까지 올라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도 연초에는 고객예탁금이 20조원으로 시가총액의 1%대 중반에 그쳤지만 주가가 상승하면서 3.2%로 높아졌다. 고객예탁금이 많긴 하지만 과거에 비해 인상적인 규모가 아닌 셈이다. 유일한 차이는 과거에는 개인 투자자금이 주가 상승과 함께 들어온 반면 이번에는 상승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들어와 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확실히 했다는 정도다. 

시각이 다르긴 하지만 당분간 개인투자자의 자금 유입이 많지 않을 거란 전망은 비슷하다. 월별 개인 순매수는 3월에 11조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계속 줄어들었다. 현재는 월평균 3조5000억원으로 떨어졌다. 8월에 조금 늘어 4조6000억원으로 올라갔지만 시장 크기를 생각하면 월간 1조원의 순매수 증가는 의미 없는 수치다. 월간 순매수 3조5000억원조차 시가총액의 0.2%밖에 안 되는 금액이다. IMF 외환위기 직후 하루 들어온 개인 자금에도 못 미치는 규모의 돈이다. 이 정도 자금 유입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번 유동성 장세는 과거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 자금 유입 규모가 크지 않다. 기간도 계속 늘어지고 있다. 당연히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앞으로 시장의 방향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유동성 장세가 끝나면 주가는 빠르게 하락

유동성 장세가 실적 장세로 바뀌지 않는 한 주가는 주춤해질 가능성이 크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실제로 동력이 바뀐 바 있다. 처음에는 개인 매수를 토대로 주가가 올랐지만 이후 예상을 뛰어넘는 경기 회복에 전 세계적인 IT 열풍이 가세하면서 주가가 추가 상승했다. 반면에 2001년과 2007년은 경기가 회복되지 않아 주가가 다시 하락했다. 앞으로 주식시장의 동력이 돈에서 경제로 바뀌지 않는 한 비슷한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동성 장세가 끝난 후도 걱정이다. 2001년 9월 9·11테러가 발생하자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고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그 덕에 코스피가 테러 발생 직후 463에서 943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100% 이상 올랐다. 문제는 상승이 끝난 후 발생했다. 다음 해 5월부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해 10월에 출발점 부근까지 떨어졌다. 2007년에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4월 1450에서 출발한 주가가 3개월 만에 2000을 넘었다. 당시는 6개월 사이에 60조원 이상 늘어난 주식형 펀드가 상승 동력이었다. 이 힘으로 주가가 2000을 넘었다. 하지만 펀더멘털보다 높은 주가 때문에 이후 상승 동력은 힘을 잃고 석 달 만에 1570까지 하락했다. 이 역시 유동성 장세 출발점 부근의 지수다. 

유동성에 의해 올랐던 주가가 유동성 장세가 끝난 후 출발점 부근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뚜렷한 기반 없이 돈에 의해 상승이 이루어진 만큼 상승 동력이 약해지면서 주가가 원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번 상승이 돈 말고 다른 요인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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