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부실 파문 왜 생기나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0 08: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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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보호 대책 없이 규제만 푼 후유증…금융 당국의 뒤늦은 규제 강화에 “효과는 글쎄”

사모펀드 문제가 끝이 없다. 지난해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부터 올해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까지 일어났다. 투자금은 라임이 1조6000억원, DLF는 7000억원, 옵티머스는 5000억원이라고 한다. 환매 중단이라는 결과는 비슷하지만, 과정은 다르다. DLF 사태에는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있었지만, 라임 사태는 사기에 가까운 행태였고, 옵티머스는 그냥 사기다. 옵티머스 펀드의 운용사는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해 연 3%대 수익을 낸다고 했다. 매출 채권은 상품, 용역의 대가를 나중에 주기로 하고 발행한 일종의 어음이다. 공공기관이 망하지 않는 한 돈을 떼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안정성을 강조했다. 

금융정의연대와 사모펀드 피해자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이 6월30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징계 및 배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정의연대와 사모펀드 피해자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이 6월30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징계 및 배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모펀드 관련 피해액만 3조원 규모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비상장 기업의 회사채, 심지어 대부업체에 투자해 놓고 각종 서류를 위조했다. 사기 행각은 옵티머스 측이 만기가 돌아온 펀드를 환매할 수 없다고 신고할 때까지 3년이나 계속됐다.

원칙대로라면 사모펀드는 적격투자자만 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에는 어떤 사람이 사모펀드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를 따지는 적합성 원칙을 준수했는지 판매사가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당연히 적격투자자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판매사가 사실상의 사모펀드를 일반상품처럼 판매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이 커지는 것은 사모펀드를 일반상품처럼 만든 운용사와 사모펀드 상품을 일반상품처럼 판매한 판매사들이 있어서다. 무능한 금융 당국이 일을 거들었다. 금융상품으로 등록시켜줬고, 금융감독원의 사후 심사도 서류만 보고 통과됐다. 해외 도피 중인 펀드 설립자가 19대 총선의 민주당 후보였고,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특보였다는 것도 부실한 심사의 이유였을지 모르겠다.

원래 펀드 운용의 원칙은 공모든 사모든 균형과 견제다. 운용사는 사모펀드 상품을 기획한다. 증권사나 은행 등 ‘판매사’는 운용사의 사모펀드를 고객에게 팔아 투자금을 받아온다. ‘수탁사’는 판매사로 들어온 자금을 보관하면서 운용사의 지시에 따라 투자를 집행한다. 마지막으로 사무관리회사는 사모펀드 가치를 산정할 수 있는 일종의 ‘회계장부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들 회사가 균형과 견제를 통해 제 역할을 다하면 큰 문제는 없다.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판매사는 주로 NH투자증권이, 수탁사는 하나은행이, 사무관리사는 예탁결제원이 맡았다. 그러나 운용사와 판매사는 대출 채권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수수료만 챙겼고, 사무관리회사와 수탁사는 검증도 하지 않아 허위 서류를 걸러내지 못했다. 규제의 허점이 있는 것도 물론이다. 현행 시스템에서는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운용사가 쥐고 판매사와 수탁사, 사무관리사에는 입맛대로 제공할 수 있다. 사무관리사가 투자 재산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도 없다.

최근 계속되고 있는 사모펀드의 부실 파문이 근본적으로는 규제 완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2015년 금융 당국은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2018년에는 사모펀드 투자자 수 상한이 49인에서 100인으로 늘었고 펀드 쪼개기도 용인돼 사모펀드는 규제받지 않는 사실상의 공모펀드가 됐다. 현재 투자자들에게 원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모펀드의 투자금은 5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46개 자산운용사의 539개 사모펀드가 환매 중단됐거나 중단 가능성이 있다. 규제 완화가 금융 사고로 이어지는 일도 새삼스럽지 않다. 1999년 카드 규제 완화는 2003년 카드 사태를 초래했고, 2006년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 완화는 2008년의 대규모 부실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모펀드 투자에 대한 규제 완화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투자자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시장의 기능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나쁘지 않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연금계좌를 통한 사모펀드 투자도 허가할 방침이라고 한다. 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완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사전적 규제를 푼다면 사후 제재는 강화했어야 옳다. 규제 완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투자자 보호 대책과 판매 관련사들의 상호 견제, 검증 시스템도 마련했어야 했다. 사모펀드의 문제는 규제 완화에 따라 당연히 수반되었어야 할 감독 방안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방법은 강한 징벌 제도를 도입하는 방법밖에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도입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사고를 예방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감독행정을 강화해도 허점은 있기 마련이다. 금융회사가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은행이나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입 때문에 고위험 투자상품을 치밀한 검증도 없이 경쟁적으로 판매하는 영업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금융사가 자율 규제의 책임을 지도록 제도를 만들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최고경영자에게 묻는 시스템까지 정착돼야 규제 완화의 허점을 메울 수 있다.

 

고수익 좇는 투자자 인식 전환도 필요

기본적으로 위험한 상품은 은행에서 팔면 안 된다. 만약 굳이 팔고 싶다면 부실이 발생했을 때 책임을 그만큼 져야 한다. 책임지고 상품을 팔든지 책임질 수 없으면 팔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속았다는 식의 변명은 무능의 고백에 불과하다. 수탁사의 역할은 펀드가 투자자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Fiduciary duty)’에 기반한다는 믿음의 기반이다.

당국은 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있다.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3억원으로 올렸고, 사모펀드를 쪼개서 파는 것도 금지했다. 외부감사 강화, 자전거래 제한 등의 내용도 발표했다. 하지만 사고는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규제 강화 이후 문제는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사실 사모펀드 시장이 커지면 투자자 피해는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일단 자금이 몰리면 투자할 데부터 부족해진다. 비우량자산까지 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산운용사 설립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현재 200여 개가 넘는 자산운용사들이 난립하고 있다. 직원이 3~4명뿐인 영세 운용사에서 1000억~5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한다. 환매가 지연되거나 손실이 발생하는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투자자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시장이 정리될 때까지 당분간 사모펀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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