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집방’은 왜 대세가 됐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5 10: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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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맞아 급부상한 ‘집방’
집을 다루는 콘텐츠가 확장된 이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라는 MBC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집 문제로 힘겨워하는 일반인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무료로 집을 리모델링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특유의 음악이 흐르면 집의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고, 의뢰인들은 리모델링된 집을 보고 놀라며 기뻐했다. 특히 취약계층의 주거 공간을 자주 다뤄 공익적 의미의 방송으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러브하우스》는, 한국 최초로 ‘집’을 소재로 삼은 예능이었다. 이후로 집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은 자주 등장했다. tvN이 시도했던 《렛미홈》이 그랬고, JTBC 《내 집이 나타났다》도 주거 예능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집방(집을 다룬 방송)’의 시초가 그랬듯, 주거 공간의 재편을 통해 일상의 배경을 바꾼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현재의 ‘집방’은 조금 다르다.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심리와 취향, 생활방식이 반영된 공간으로서의 집을 소개하는 방송이 등장했고, 정리나 살림 등 일상적인 생활에서 자기계발의 실마리를 찾는 흐름도 생겨났다. 코로나19 시국에서 그 시도들은 더 다양해졌다. 외부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집’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운, 재미와 정보를 갖춘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예능의 대세였던 ‘쿡방’까지 밀어내고 예능가 안방을 차지한 최근의 집방들은 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집과 관련된 과제를 다채롭게 담아 보여준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집에 어떤 욕구와 가치를 담아내고 있는가. 그 답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집방들 속에 있다.

다양한 주거 환경의 필요성

방점은 소유에 찍히지 않는다. 의뢰인들이 구하는 집은 전세이기도, 월세이기도, 1년 치 월세를 한 번에 내는 연세이기도 하다. 스타들은 의뢰인들이 정한 예산 내에서, 그들이 원하는 구조와 지불 방식의 집을 찾아준다. 기존에 소유하고 있거나 살던 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이동’하는 것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MBC 예능 《구해줘 홈즈》 얘기다. 이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주거에 대한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필요에 따라 단기간만 살 수 있는 집을 찾기도 하고, 집 안의 업무 공간이 보장되는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집은 고정적인 쉼터가 아니라 업무와 휴식을 모두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됐다.

또 달리 주목할 점은 다양한 가족의 구성이다. 부모와 아이로 이뤄진 3~4인 가족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업실을 공유하고 각자의 생활 공간은 따로 두려 하는 친구들, 혼자 살 수 있는 월셋집을 찾는 직장인, 반려묘들과 함께 살아가는 부부 등 가구의 구성도 다양하다. 침실 2개, 주방 1개, 화장실 1개가 아니라, 고양이들의 놀이터나 공유 사무실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는 필요. 그것이 이 프로그램 속에 등장한다. 의뢰인들의 욕구를 집을 찾는 데 반영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담아내는 장소로 집이 변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해줘 홈즈》는 의뢰인들의 욕구를 집을 찾는 데 반영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담아내는 장소로 집이 변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MBC

집 관련 프로그램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집 자체가 우리의 본능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소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집이란 소재가 주는 남다른 현실적 의미들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계약기간이 종료될 때마다 집을 구하러 다니는 상황에서, 또 집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 일인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집을 구해 주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쏠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지난해 설 특집 파일럿으로 선보인 이 프로그램은 정규 편성을 확정한 이후에도 인기를 끌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판타지를 현실과 연결해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SBS의 2부작 파일럿 《나의 판타집》이다. 제작진이 이 프로그램을 ‘거주감을 체험하는 관찰 예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출연진들의 로망을 현실화시켜주면서도, 그 집에서 현실을 마주할 때의 문제를 함께 다뤘기 때문이다. 웅장한 ‘아이언맨 하우스’에 살고 싶어 하던 이승윤이 큰 평수 집의 관리 문제와 내부 동선을 언급하는 것은 판타지가 현실화되는 데 수반되는 부분을 짚는다. 단순히 연예인들의 휘황찬란한 집을 보여주던 과거 콘텐츠들과 달리, 실제 집이라면 고려해야 할 가격, 관리비, 난방 등의 요소를 살펴볼 수 있게 하면서 현실적인 논리를 첨가했다. 허영지의 ‘판타집’은 다락방과 마당이 있는 전원 속 집인 것처럼, 각기 다른 로망이 있기 때문에 집을 바라보는 가치도, 고르는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신박한 정리》는 집을 정리하는 ‘카운슬링’을 본격적으로 내세우면서 시청자들에게 효율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tvN
《신박한 정리》는 집을 정리하는 ‘카운슬링’을 본격적으로 내세우면서 시청자들에게 효율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tvN

 

효과적이고 공감되는 정보의 중요성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시대’의 도래는 ‘정리’라는 과제를 끌어냈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면서 ‘집에 있어야 할 것’과 ‘없어도 될 것’을 구분하게 됐고, 정리를 통해 많은 공간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해졌다. 집을 정리하는 ‘카운슬링’을 본격적으로 내세우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tvN 《신박한 정리》는 주목받는다. 버리는 것에 대한 조언에서 그치지 않고, 전문가인 이지영 공간 크리에이터가 매회 실용적인 정리 비법을 풀어놓는다. 가구 배치와 공간 활용에 대한 팁을 던져주고, 손잡이 달린 봉투를 정리함으로 활용하는 소소한 방법을 알려준다.

《신박한 정리》를 공동연출한 김유곤·김상아 PD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 어느 때보다 집이라는 공간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나를 위한 집에 내가 아닌 물건들이 사는 경우가 많다. 정리를 통해 내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집은 메시지와 정보를 전하는 배경이 된다. 과거부터 쌓인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의뢰인들의 스토리도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볼거리가 된다. “치우고 돌아서면 또 어질러져 있다”는 정주리의 이야기는 육아맘들의 공감을 받고, “반려묘와 공생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윤균상의 바람은 반려인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에, 이 프로그램은 정보와 공감 사이를 누빈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신박한 정리》를 보고 집 정리를 했다”는 시청자들의 보고가 줄을 잇는다. 기존의 리모델링·인테리어 집방의 시청률이 부진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얼마나 효과적이고 마음에 와 닿는 정보를 전달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도 어려운 지금, 집을 뜯어고치는 것보다 지금 거주하고 있는 공간을 정리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바퀴 달린 집》은 '집콕'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힐링과 대리만족을 이끌어냈다. ⓒtvN
《바퀴 달린 집》은 '집콕'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힐링과 대리만족을 이끌어냈다. ⓒtvN

힐링과 참여의 공간이 된 집

'집콕'과 답답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힐링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 힐링을 하기 위한 요소 중 하나로 ‘자연’을 떠올린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국에는 밖에 나가기도 망설여진다. 공원과 산 등 야외 공간에서도 많은 사람을 마주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누릴 수 있는, 프라이빗한 자연 공간이 없다. 이 때문에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발코니’의 필요성을 말하기도 했다. 하늘을 볼 수 있고, 빗물이 떨어질 수 있는, 수목을 심을 수 있는 자연환경이 필수적이라는 것. 힐링을 원하지만 자연을 접할 수 없는 집 안에서, 사람들의 눈은 자연을 찾아 움직이는 집으로 향했다.

도심 속에서 자연을 접할 수 없다면 자연을 스스로 찾아가겠다는 작고 이동이 가능한 집, 그것을 tvN 예능 《바퀴 달린 집》은 보여줬다.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타이니하우스’라는 것을 모토로 했는데, 최소화된 면적에 생활 공간을 집약시킨 이동식 주택을 일컫는다. 그러면서 이동식 소형주택이 겪는 어려움도 그대로 표현했다. 그곳에서 살아보는 재미와 불편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이동하며 사는 삶이 주는 낭만을 그리면서 호평받았던 이 프로그램은 얼마 전 종영했다. 자연 친화적인 미니멀 라이프를 선호하는 현 세대에게 적합한 주거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타이니하우스를 선택하기는 어려운 현실에서, 외출과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지금의 상황에서, 《바퀴 달린 집》은 앞마당의 자연을 보듯 힐링하며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홈캉스’라는 키워드를 던진 나영석 PD의 새 예능 《여름방학》은 ‘어른이’들이 강원도 고성의 주택에서 생활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자연경관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텃밭에서 딴 토마토와 바질로 샐러드를 만들고, 명상 도구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고,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보여준다. 모두가 갖고 있지만 생활과 가사, 육아, 다양한 업무로 인해 누릴 수 없었던 ‘집=휴식’이라는 기본적인 정서를 대리만족을 통해 느끼게 한 것이다.

‘홈캉스’라는 키워드를 던진  《여름방학》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보여준다. ⓒtvN
‘홈캉스’라는 키워드를 던진 《여름방학》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보여준다. ⓒtvN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요리와 집을 잇는 ‘집쿡방’을 통해서도 확장된다. 비대면이라는 말은 이제 어색하지 않다. 화상 회의·유튜브 중계 역시 익숙해졌다. 비대면으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집은 시청자 참여의 공간으로도 변하고 있다. 지금의 쿡방은, 셰프들이 나와 경연 방식으로 요리를 펼치고, 화려한 한식이 식탁을 수놓았던 쿡방들과 조금 다르다. 시청자가 참여하게끔 유도하고, 그 참여의 배경은 집이 된다.

올리브 《집쿡 라이브》는 TV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요리 수업을 생중계해, 시청자들이 집에서 괴외를 받는 느낌으로 요리에 참여하게 했다. 시청자들이 각자의 집에서 출연자들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며 요리를 배울 수 있게 한 MBC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마》도 등장했다. 이런 쿡방의 변신은 단순히 화려한 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정리 방법과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팁을 제공하는 집방의 변주와 맥락을 같이한다. 코로나19 시국에,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집’이라는 공간과 ‘참여’라는 방식은 이제 방송 프로그램들이 필수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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