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삼중고에 신창재 회장 ‘장고’ 깊어진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0 10: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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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옵션 소송·금감원 종합검사·자택 가압류까지…어떻게 현안 풀어갈지 주목

교보생명 재무적투자자(FI)와 2년 가까이 갈등 중인 신창재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풋옵션 이행 자금으로 현재 신 회장이 마련해야 하는 돈만 1조원 규모다.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서 패소할 경우 이 돈은 2배나 늘어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보생명을 겨냥한 금감원의 종합검사가 9월부터 시작될 예정이어서 신 회장을 더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2012년 교보생명의 2대주주였던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교보생명 주식 24.01%를 매각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 에퀴티 파트너스’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 지분을 사들였다. 매입가는 1조2054억원(1주당 24만5000원)이었다. 여전히 최대주주는 신창재 회장(33.78%)이었지만, 우호세력이 없을 경우 적대적 M&A(인수·합병)에 휩싸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사저널 최준필·뉴스뱅크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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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종합검사로 풋옵션 소송 재부상

신 회장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을 FI로 끌어들였다.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을 상장하는 조건으로 어피니티 컨소시엄 측과 풋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IPO(기업공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신 회장이 이 주식을 대신 매입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신 회장은 교보생명의 IPO를 추진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약속된 기한을 넘겼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추가로 3년을 제시했지만 마찬가지로 IPO에 실패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8년 10월 신 회장을 상대로 2조122억원(1주당 40만9000원) 규모의 풋옵션을 행사했다. 2012년 컨소시엄이 매입할 때보다 66.9%나 높은 금액이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감정평가 결과를 풋옵션 가격의 근거로 제시했다. 신 회장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최근 계속된 불황과 저금리 기조로 교보생명의 시장가치가 20만원대 중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컨소시엄은 지난해 3월과 올해 3월 각각 ICC와 대한상사중재원에 신 회장을 제소했다. 지난 4월 신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에 대해서도 50억원의 가압류를 신청했다. 법원이 이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신 회장의 자택 역시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신 회장 측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교보생명은 지난 3월 미국 회계감독위원회와 한국 검찰에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고발했다. 풋옵션 행사가격을 산정한 회계법인의 기준이 적절치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교보생명 측은 기자들과 만나 “새 회계기준 도입에 따른 자본확충과 보험시장 업황 등을 고려하면 FI가 제시한 가격은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양측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신 회장과 FI가 극적으로 합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FI의 목적은 자금 회수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교보생명의 지분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FI가 최종 판결 전에 신 회장 측과 극적으로 합의하고 빠져나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교보생명 측 “가격 결정되면 그때 대응”

하지만 이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견해다.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은 그동안 소송 중단을 위해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제3자 매각, IPO 후 차익보전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FI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FI 역시 사모펀드로 투자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최소 수익률이 있는 만큼 끝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신 회장도 지난해 7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론적으로야 가능하겠지만 그럴(중재 취소) 거면 애초에 이렇게까지 했겠느냐”며 “현재 중재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FI들과) 대화가 이뤄질 단계도 아니다”고 말했다.

공은 결국 ICC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양측은 지난해 10월 1차 서면 변론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9월로 예정된 대면 변론까지 마치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신 회장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여러 가지 우회적인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1조원 규모의 자금을 마련해 FI 풋옵션 지분만 매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신 회장의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다른 FI를 영입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ICC가 컨소시엄의 손을 들어줄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2조원대의 자금 지출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브스가 2020년 4월 발표한 신 회장의 주식 가치는 17억 달러(2조400억원)로 추산된다. 신 회장의 주식을 모두 팔아도 풋옵션 지분 가격에 모자란다. 최악의 경우 컨소시엄이 ICC 판결을 근거로 지분 압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지난해 초 소송이 시작되자 국내 금융지주사의 인수 대상에 교보생명의 이름이 거론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교보생명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최근 경영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지난해 교보생명은 업황 부진에도 생보사 ‘빅3’ 중 유일하게 순이익이 증가했다. 올해 들어 이 성장세가 꺾였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경기가 둔화되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견실한 성장을 해 왔던 교보생명에도 불똥이 튀었다. 1분기 교보생명의 당기순이익은 12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2%나 감소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 4월 교보생명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충격이 교보생명의 부채와 자산운용수익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면서 “오너의 지분구조 변화 가능성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이니만큼 기업 평가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감원은 조만간 교보생명에 대한 종합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생보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교보생명만 대상에 포함됐다. 금감원은 현재 회사 측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일정 등 세부사항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FI와의 갈등에 대해 금감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주목되고 있다.

교보생명 측은 신 회장과 대주주의 대치 상황이니만큼 답변에 조심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의 분쟁은 소송이 아니라 중재다. 주주 간 분쟁이니만큼 회사 입장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것은 곤란하다”면서“(ICC 중재에 따라) 주당 가격이 결정되면 자본시장법에 따라 해결할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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