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와중에 3세들 전진 배치한 교보생명 왜?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0 10: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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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장남 이어 차남도 교보생명 자회사 입사 배경 주목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이 있다. FI와의 풋옵션 갈등으로 ‘외통수’에 몰린 상황에서도 3세들을 경영에 전진 배치했기 때문이다. 신 회장 슬하에는 현재 2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인 중하씨는 2015년부터 교보생명 자회사인 KCA손해사정에 입사해 근무 중이다. 2018년에는 과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차남 중현씨는 최근까지도 회사 경영에 합류하지 않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친 그는 그동안 일본 SBI금융그룹 계열인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전략 및 경영기획 업무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FI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지난 8월 중현씨는 교보생명 100% 자회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에 둥지를 틀었다. 장남에 이어 차남까지 교보생명에 입사한 만큼 ‘3세 경영’이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2008년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리모델링 준공식 후 신용호 창업주 흉상 제막식 모습 ⓒ연합뉴스
2008년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리모델링 준공식 후 신용호 창업주 흉상 제막식 모습 ⓒ연합뉴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현재 교보생명은 신 회장과 누나인 신경애·신영애씨가 각각 33.8%, 1.71%, 1.4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3세들의 경우 그룹의 주축인 교보생명 지분이 전무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후계 구도를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지분이 중요하다. 최소한 비상장 회사를 통해 지배구조를 변경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교보생명의 경우 이런 징후가 아직 발견되지 않는 만큼 본격적인 후계 구도를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지난 2003년 고(故) 신용호 창업주가 작고하면서 지분 40%가량을 상속받았다. 당시 신 회장이 낸 상속세만 1800억원대. 신 회장은 상속받은 지분 중 5.85%를 세금으로 국세청에 현물 납부했다. 일감 몰아주기와 편법 승계로 얼룩진 국내 재계에서 지극히 드문 케이스였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은 적지 않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지분의 상당수를 현물 납부하면서 경영권이 약해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이 우호지분 24.01%를 팔고 나가면서 경영권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신 회장이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풋옵션 계약을 체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은 아버지의 측근이었던 전문경영인 2명을 취임 직후 교체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이사회 의결권을 중시한 만큼 지분을 나눠주지 않았다”면서 “지금까지 상황을 감안할 때 교보생명 3세들 역시 아버지인 신 회장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 회장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 회장은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CEO 승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능력”이라면서 “자식이 충분한 경영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후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질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각종 편법과 반칙이 횡행하는 재계에서 신 회장의 이 같은 신념이 그대로 관철될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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