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수입차’들의 역대급 판매 질주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0.09.16 10: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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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판매된 수입차 6대 중 1대가 1억원 이상…포르쉐 등 고가 브랜드도 확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나라 안팎 경기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100대 기업의 2분기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20%나 감소했다. 지난 7월 국내 소비동향을 보여주는 소매 판매액은 전월 대비 6% 줄어들었다. 지난 2월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

하지만 이 같은 국내외 경기 침체에도 수입자동차 업계는 불황을 모른 채 질주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수입차 판매는 16만9908대로 전년 대비 15.7% 성장했다. 특히 1억원 이상의 수입차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올해 1억원 이상 고가 수입차 판매대수는 2만7212대로 전체 수입차의 16.01%를 차지했다. 올해 판매된 수입차 6대 중 1대가 1억원 이상의 차량인 셈이다. 이 중 1억5000만원 이상의 초고가 수입차는 7292대로 4.29%를 차지했다.

1억원 이상의 고가 수입 모델 판매 비중은 지난 2016년 8.72%에 불과했으나, 2017년 10.22%, 2018년 10.09%, 2019년 11.84%, 2020년 16.01% 등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불과 4년 새 비중이 2배 가까이 높아진 셈이다.

벤츠·BMW도 성에 안 찬다?

올해 고가 수입차 판매가 늘어난 가장 큰 요인은 포르쉐의 급성장이다. 올해 1~8월 포르쉐코리아 판매는 5841대로 전년 대비 83.7% 증가했다.

포르쉐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포르쉐가 판매하고 있는 모델 대부분은 1억원을 훌쩍 넘는다. 그중 가장 많은 판매가 이뤄지는 카이엔과 파나메라는 1억원 초중반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해당 차량들은 벤츠나 BMW 상위 모델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벤츠나 BMW가 대중화되면서 남들과 차별화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포르쉐에 몰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초고가 브랜드인 람보르기니나 벤틀리보다는 저렴하지만 포르쉐라는 브랜드 명성과 희소성이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예전부터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과거 국산차 차주들과의 차별화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수입차에 몰리면서 수입차 시장이 활성화됐으며, 최근 수입차가 대중화되자 프리미엄 브랜드로 이동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미엄 브랜드 성장세는 독일차뿐 아니라 일본차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NO 재팬’ 운동이 확산되면서, 일본차는 직격타를 맞았다. 일본 수출규제 전인 지난해 상반기 일본차 판매는 2만3482대로 전년 대비 10.3% 증가했으나, 하반기에는 1만3179대로 전년 대비 45%나 감소했다. 지난 5월에는 불매운동 여파로 닛산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등 일본차는 여전히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다만 도요타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는 올해 2분기 이후 차츰 판매가 개선되고 있다. 지난달 렉서스 판매는 703대로 전년 대비 16.6% 성장하며 전체 수입차 브랜드 중 6위를 차지했다. 렉서스는 고품질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판매 회복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출시한 법인 전용 리스 프로그램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은 LS, ES, RX, NX, UX, CT 모델 중 2대 이상의 차량 구매 시, 3년 동안 월 이용료만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다.

렉서스의 법인 전용 리스 프로그램은 고가 수입차의 어두운 뒷면을 보여주는 사례기도 하다. 법인과 리스는 수입차를 관통하는 단어다. 카이즈유의 자료를 보면 올해 수입차 판매는 17만724대이며, 이 중 법인용으로 판매된 차량은 10만5577대로 61%를 차지했다. 특히 법인용 차의 경우 1억원 이상 고가 차량 판매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차’와 ‘리스’라는 불편한 진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 모델은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테슬라 모델3, 폭스바겐 티구안, 아우디 A6, BMW 3시리즈, 벤츠 GLC·S클래스·A클래스·C클래스 순이다. S클래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1억원을 넘지 않는 차량이다.

하지만 법인용 판매를 살펴보면 1억원 이상 고가 차량들이 순위권에서 보인다. 법인용 판매의 경우 S클래스가 3529대로 2위를 차지했다. 이어 CLS가 2173대로 6위를 기록했으며, 포르쉐 카이엔(1664대) 8위, GLE(1636대) 9위 등을 기록했다.

고가 수입차들이 법인차에 주로 사용되는 것은 법 규제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업무용 승용차는 업무용으로 사용한 비중만큼 지출 처리해 해당 비용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일부 회사 사주들은 이 점을 악용해 법인 명의로 1대당 수억원이 넘는 고가의 슈퍼카를 구매해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김필수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데 정작 법인차 등록 분야는 모르는 척 넘어가고 있다”며 “선진국처럼 법인차는 출퇴근용을 금지시키고 업무용으로 제한해야 하며, 차종도 일반 대중차로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고가 수입차는 대부분 리스 형태로 구매하게 된다. 독일 3사의 경우 자체 파이낸셜서비스를 통해 자사 차량 구매 시 금융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초기 부담이 낮은 원금 유예 할부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원금 유예 할부 프로그램은 차값의 20~35%가량을 선납한 뒤 6~10% 이자만 내다가 할부 기간이 끝나면 남은 원금을 한 번에 내는 방식이다. 할부 기간에는 저렴한 가격에 수입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나, 기간이 끝나면 다시 목돈을 부담해야 한다. 잔액을 내지 못한다면 결국 차를 팔아 부족한 금액을 메울 수밖에 없다.

정부도 고가 수입차를 권장하는 듯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7월 이후 개별소비세 인하 폭을 축소(70%→30%)하는 대신 감면 한도(100만원)를 없앴다. 그 결과 출고가 6700만원 이상 고가 차량의 경우 개소세 인하 폭이 줄어들었음에도, 오히려 개소세 혜택을 더 누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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