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선별’이라는 이름의 시험대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4 09: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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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 암흑의 공포가 이런 것일까. 얼마 전에 만난 한 식당 주인은 ‘죽을 맛’이라는 표현을 썼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방역이 강화된 후로는 손님의 발길이 아예 끊기다시피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함께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지금은 혼자서 겨우 버티고 있다고도 했다. 그 말대로라면 누군가의 매출 감소가 또 다른 누군가의 실직으로 이어지는 고통의 도미노인 셈이다.

그이뿐만 아니라 요즘 작은 일터에 기대 생계를 지탱하는 자영업·소상공인들의 시름이 이만저만 아니다. 길을 가다 보면 ‘폐업’ 문구를 써 붙인 가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떤 업주는 매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된 이유를 길게 적어놓기도 했다. 임대료·전기요금 등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지출 항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그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 근심의 무게가 문자화되어 거기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국내 자영업자들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 거리 ⓒ시사저널 박정훈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국내 자영업자들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 거리 ⓒ시사저널 박정훈

자영업·소상공인들의 눈물은 방역 단계 2.5 시기에서만 빚어진 비극이 아니다. 이미 지난겨울부터 차곡차곡 쌓여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커져 있는 문제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버텨보겠지만 그조차도 바닥이 났으니 이제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길고 엄혹한 코로나19 상황에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무력하게 그 고통의 맨 앞자리로 내몰리는 취약계층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른바 ‘근근이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생계가 전체 생애의 생계와 직결된 중대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희망의 불씨를 살려줄 외부의 숨결이 어찌 간절하지 않겠는가.

그들을 포함해 이 감염병 시대를 힘들게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을 들고나왔다. 1차 때와는 달리 선별 지급 방식을 선택했다. 정부 방침은 이미 정해졌지만, 지원 대상과 방식 등을 두고는 아직까지 갑론을박이 뜨겁다. 국민 모두에게 일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최근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이재명 경기지사는 “분열에 따른 갈등과 혼란, 배제에 의한 소외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 나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정부가 재난 지원과 재정 안정성을 함께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될 만하다. 문제는 우선순위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먼저 방점이 찍혀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도와야 더 많은 국민이 살 것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누구에게 얼마가 지원되는지에 따라 자칫 형평성·공정성 논란이 크게 불거질 수 있다. 그만큼 엄밀하고 세심하게 준비해 집행하지 않으면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어떠한 착오나 누락, 부정도 용서되기 어렵다. ‘선별’의 까다로운 무게감을 확실하게 책임져야만 하는 이유다.

시민단체 ‘생명안전 시민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훈 소설가는 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계층에게, 특히 약자에게 고통이 몰리지 않도록 배분해 주는 것이 리더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 배분의 중요성이 또 다른 의미에서 시험대에 오를 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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