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모빌리티’라는 전동킥보드의 불편한 진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7 14: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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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질주하고 무분별하게 방치…늘어나는 사고에도 안전 규제는 줄어

지하철역 앞에 세워진 전동킥보드가 눈에 자주 들어왔다. 역에서 집까지 이동하면서 타보기로 했다. 앱을 설치하고, 회원 가입을 하고, 운전면허증과 카드를 등록했다. 킥보드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촬영했더니 운행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 발로 땅을 밀어 킥보드를 움직였다. 가속 버튼을 누르니 속도가 확 붙으면서 튀어나갔다. 생각보다 빨랐다. 달려야 할 곳은 차도였다. 인도 구분이 따로 없는 길에서는 가속을 하는 자체가 근처의 보행자들에게 위협적이었다. 장점은 있었다. 더운 날씨에 발을 구르지 않고도 킥보드는 움직였고, 반납 장소에 둬야 하는 공유자전거와 달리 집 앞 주차가 가능했다. 한쪽에 세워두고 주차 장소를 촬영했다. 10여 분의 주행이 끝났고, 2500원가량의 ‘교통비’가 나왔다.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디로 달리는 것이 안전한가’ ‘이렇게 세워둬도 되는가’였다.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남은 ‘마지막 1마일(약 1.6km)’. 택시를 타기에는 애매하고,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 차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가는 마지막 구간을 이동하기 위한 교통수단을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라 부른다. 전동킥보드를 필두로 한 개인형 이동장치(PM·퍼스널 모빌리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를 타고 더욱 각광받게 됐다. 감염 우려 때문에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규모 인원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꺼리게 되면서다. ‘공유’라는 키워드까지 더해지면서, 전동킥보드는 ‘혁신 모빌리티’라는 별명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이동성과 환경적 측면에서 혁신적인 이 모빌리티는 아직 ‘안전사고’와 ‘불편’이라는 영역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다방면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전동킥보드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들은 무엇일까.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누비는 전동킥보드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인도를 이용해 달린다. 지하철역이 위치한 서울 용산구의 대형 쇼핑몰 앞에서도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를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전동킥보드 탑승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행법상 전동킥보드는 ‘차도’로 달려야 한다. 제2종 원동기장치자전거 이상 면허소지자에 한해 차도 우측 부분을 통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인도와 자전거도로 모두 달릴 수 없다.

차도가 아닌 곳을 운행할 때는 4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범칙금이 부과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짧은 거리를 빠른 시간 내에 이동하는 전동킥보드의 특성상 적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차도를 주행하는 것은 안전 부분에서 빨간불이 들어온다. 주행하는 차들 옆에서 시속 25km라는 제한된 속도로 달려야 한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인해 오는 12월부터는 자전거도로에서 주행이 가능해지지만, 그 전까지 전동킥보드는 차도에서 달려야 한다. 인도 주행은 개정안 시행 이후에도 금지된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전동킥보드 관련 민원(2016~18년)을 살펴보면 전체 민원 1292건 중 전동킥보드 운행 단속을 요청하는 민원이 38.8%(501건)로 가장 많았다. 운행 단속 민원 중에서는 자전거도로, 특히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에서의 운행을 단속해 달라는 내용이 47.5%(238건)를 차지했다. 산책로 등 공원(26.7%)과 인도(19.0%) 운행 단속 요청도 다수였다. 모두 현행법상 전동킥보드가 달릴 수 없는 도로들이다. 전동킥보드 도입 초기부터 주행 장소가 문제로 지적된 셈이다.

전동킥보드 이용이 늘면서 관련 민원은 급증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국민권익위에 의뢰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6년 290건, 2017년 491건, 2018년 511건에 그쳤던 전동킥보드 관련 민원 수는 2019년 1927건, 2020년 8월까지 243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8월에는 방치되거나 인도를 점유하고 있는 전동킥보드로 인해 통행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가장 많았다.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들은 거치대 없이 자유롭게 주차하는 도크리스(dockless) 방식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공유자전거처럼 자전거 거치대까지 가지 않아도 대여와 반납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기저기에 방치된 전동킥보드 때문에 불편을 토로하는 시민들이 많다. 길 한가운데 세워 차량이나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나 주차장 입구에 세워 불편을 유발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를 주행하거나 헬멧을 미착용하는 경우, 두 명 이상이 전동킥보드에 탑승하는 경우 등을 단속해 달라는 요청이 그 뒤를 이었다. 수도권의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민원도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8월20일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 활성화 및 안전관리 방안’을 수립, 주차·거치 공간을 설치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자유로운 반납 장소를 박탈하는 것은 혁신 모빌리티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라는 반발도 존재한다. 일부 지자체는 규제를 시행하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산 지역 지자체들은 차도와 인도에 방치된 전동킥보드를 강제 수거해 과태료를 부과했고, 서울시는 통행을 방해하는 곳에 주차된 전동킥보드에 견인료를 매기는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다. ‘지정 주차구역’ 모델을 구축하려는 일부 업체들도 존재하지만 혜택을 줄 뿐 강제성은 없다. 현재로서는 이용자들에게 ‘잘 주차해 달라’고 맡기는 방법뿐이다.

면허 면제 등 안전 규정은 오히려 퇴보

도입과 성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제도는 비단 ‘장소’와 관련된 것만이 아니다. 탑승자와 차량 운전자의 안전 문제도 있다.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는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탓에 ‘킥라니(전동킥보드+고라니)’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용자 수가 늘어나면서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수반되는 안전 대책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현행법상 전동킥보드는 만 16세 이상 면허 취득자(원동기 또는 2종 보통 이상)만 이용이 가능하다. 면허 없이 운행하면 무면허 불법 주행에 해당해 3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12월부터는 만 13세 이상이면 전동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운전면허 소지가 운행의 필수조건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면허 미취득자의 경우 자동차 교통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될 뿐 아니라 주변을 달리는 다른 자동차 운전자의 주의를 빼앗아 사고 가능성을 높일 위험이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49건에 그쳤던 전동킥보드 교통사고 접수 건수는 2017년 181건, 2018년 258건, 2019년 890건까지 늘었다. 전동킥보드 이용이 급증한 2020년에는 더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2020년 상반기(1~6월)에만 886건의 사고가 접수됐다. 작년 동기(336건)에 발생한 사고 접수 건수의 2~3배에 이른다.

이렇게 사고가 늘어나는 가운데, 보호 장비 착용과 관련된 규제는 완화된다. 연구소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9년까지 접수된 사고의 대부분(87%)이 헬멧 착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했다. 현행법상 전동킥보드는 원동기장치자전거에 해당해 헬멧을 미착용할 경우 2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전동킥보드의 특성상 차량에 비해 탑승자를 보호하는 안전 장치가 부실해 사고 시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이용자들이 많다. 더군다나 헬멧 착용은 단속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12월부터 시행될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헬멧 착용은 의무지만, 착용하지 않아도 범칙금은 부과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는 서서 이용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두부와 안면부 손상 위험성이 자전거에 비해 높다”면서 헬멧 착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단순히 규제로 볼 것이 아니라, 안전을 생각하는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연구원은 “아직 관련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면허 면제가 된 것도 성급한 측면이 있다. 개인형 이동장치에 대한 이용자들의 행동이 성숙해진 상황에서 천천히 진행했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도로교통법을 배우고 운전면허를 소지한 성인도 갑자기 도로에 진입하는 등의 사고 패턴들을 보인다. 청소년교통안전교육을 제도화하고, 야간 시간에는 이용을 제한하는 등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급증하지만 개인 보험은 전무

손해보험 가입돼 있다면 보험사에 미리 ‘전동킥보드 자주 탑승’ 통지해야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다 사고가 날 경우 개인 돈으로 피해를 배·보상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현행법상 전동킥보드 대여업체는 보험에 가입할 의무가 없다. 일부 보험사가 전동킥보드 관련 보험을 취급하고 있지만, 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진행되는 형태인 데다 기기 불량이 있는 경우에만 배상해 주는 경우에 한정된다. 사고에 대비해 보험에 들고 싶더라도 아직까지 개인이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은 없다. 박원규 군산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위험방지법으로서의 도로교통법 : 개인형 이동수단에 대한 법적 규율체계 개선방안》 논문을 통해 “개인형 이동장치는 사고 발생 시 운전자 및 다른 교통 참여자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 정도가 높기 때문에 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6월 전동킥보드를 의무보험 가입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남부지법은 만취 상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다 보행자를 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에게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전동킥보드를 이륜자동차로 판단하면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의무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전동킥보드를 대상으로 한 의무보험이 없고,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미약했던 점을 들어 자동차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전동킥보드를 자주 탄다는 사실을 보험사에 미리 알리지 않는다면,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입된 손해보험을 통해 보장받기도 어렵다. 2017년 4월 전동휠을 타고 가다가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손해보험회사가 지급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이륜차를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통지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유족들은 전동킥보드나 전동휠을 통상적 의미의 이륜차라고 보기 어렵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최고 속도가 시속 16km에 불과하고 신종 교통수단이라 이용 사실을 보험사에 통지해야 한다고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판결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보험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를 받아야 하고, 인도가 아닌 차도로 통행해야 하는 수단이니만큼 통지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개인형 이동장치를 출·퇴근 용도 등으로 계속 이용하는 경우 보험사에 알려야 한다는 내용을 표준약관 및 사업방법서에 포함했다. 전동킥보드와 관련된 보험상품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최근 대여 사업자의 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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