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에 방치된 ‘라면 형제’…뒤늦게 이어지는 손길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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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형, 화마 속 동생 지키려 이불 덮어주고 전신 화상
형제 어머니는 전날부터 집 비운 것으로 확인
2년 전부터 ‘방임’ 신호 있었지만 개선 안 돼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물청소 작업 중 떠밀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컵라면 용기가 물웅덩이에 잠겨있다. ⓒ 연합뉴스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물청소 작업 중 떠밀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컵라면 용기가 물웅덩이에 잠겨있다. ⓒ 연합뉴스

부모 없는 집에서 굶주림을 참지 못해 라면을 끓이다 발생한 화재로 크게 다친 두 형제는 평소에도 무관심과 방임이 일상화 된 환경에 노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른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형은 화마가 덮친 순간 이불을 덮어 끝까지 동생을 지키려다 전신화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화마 속 동생 먼저 지키려 했던 형

18일 인천 소방본부와 미추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11시20분께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의 한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로 상반신에 3도 중화상을 입는 등 전신의 40%에 화상을 입은 형 A(10)군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동생 B(8)군은 다리에 1도 화상을 입었고, 화재 당시 연기를 많이 흡입해 A군과 함께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형제는 불이 난 직후 119에 전화해 "살려주세요! 여기는…(콜록)"하며 직접 신고를 접수했지만, 긴박한 상황에 주소도 미처 다 부르지 못하고 전화는 끊겼다. 소방대가 위치추적으로 10여 분 만에 현장에 출동했지만, 두 아이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소방대원들이 출동했을 당시 A군은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고, B군은 이불에 둘러싸인 채 책상 아래서 발견됐다. 소방서 측은 "(출동 당시) 형이 마지막 순간까지 동생을 구하려고 책상 아래로 동생을 밀어넣고 이불로 주변을 감싸 방어벽을 친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 벽면이 검게 그을려 있다. ⓒ 연합뉴스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 벽면이 검게 그을려 있다. ⓒ 연합뉴스

방임 신호 수차례 있었지만…

화재 당시 집을 비웠던 두 형제의 어머니 C(30)씨는 사고 전날인 13일부터 아이들을 방치한 채 지인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C씨는 병원에서 자신의 행적을 묻는 경찰관들에게 "개인적인 질문은 하지 말라"며 다소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C씨가 아이들을 방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년 전부터 이웃의 신고가 접수되는 등 자녀 방임 신호는 수차례 있었다. C씨는 과거 A군을 때리거나 B군 등을 방치한 혐의(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 및 방임)로 불구속 입건돼 지난달 검찰에 송치됐고, 법원은 상담을 받으라는 아동보호사건 처분을 내렸다.

특히 형 A군은 2018년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아 꾸준한 치료와 보살핌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형제의 심리상담과 놀이 치료를 진행했던 미추홀구 드림스타트 측에 따르면, A군에 대한 치료는 물론 두 형제가 모두 유치원 등 시설을 이용한 적이 없고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돌봄교실을 이용하지 않는 등 교육과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두 형제의 고립은 더 심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A군과 B군의 학교는 어머니에게 돌봄교실 이용 등을 권유했지만 "직접 돌보겠다"는 완강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훈 인천시 교육청 대변인은 "신청하지 않더라도 학교만 보내주면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는데, 학부모가 허락하지 않아 학교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형제가 살았던 빌라 주변 상인들은 두 아이가 거의 매일 컵라면이나 즉석식품, 편의점 음식 등을 사갔다고 전했다. 빌라 근처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한 이웃은 "짜장면이나 짬뽕을 자주 사러 왔는데, 배달해 준다고 하면 엄마한테 혼난다며 꼭 포장을 해갔었다"고 말했다. 인근 편의점 직원도 "형제가 편의점에 자주 왔었고, 아동돌봄카드로 살 수 있는 품목을 정확히 구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 마트 직원은 "둘만 다닐 때가 대부분이었다"며 "또래보다 체격이 작고 왜소해 큰 아이가 4학년이나 되는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후원·기부문의 잇따라 

A군 형제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후원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후원을 주관하는 사단법인 학산나눔재단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형제에 대한 기부 방법 등을 묻는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재단 측은 기부자가 기부금의 용도를 지정해 기탁할 수 있는 '지정 기탁' 방식으로 후원금을 받은 뒤 추후 A군 형제를 지원할 방침이다. 후원금이 법적 보호자인 어머니 C씨에게 전달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형제의 모친이 수사 대상에 올라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계 기관과 협의해 후원금 집행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용현동 행정복지센터와 미추홀소방서에도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 인천소방본부는 A군 형제에게 '119원의 기적' 성금으로 치료비 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라면을 끓이다 발생한 화재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두 형제가 거주하던 빌라 ⓒ 인천소방본부 제공
라면을 끓이다 발생한 화재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두 형제가 거주하던 빌라 내부가 검게 그을려 있다. ⓒ 인천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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