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국악소녀 김다현, 무서운 재능의 발견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03 10:00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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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보이스트롯》 통해 혜성처럼 등장

MBN 《보이스트롯》은 처음엔 연예인 장기자랑처럼 보였다.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서 많이 봤던 연예인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기 때문에 지망생이나 무명가수만큼의 절박함이 없어 보였고, 대중의 몰입도도 떨어졌다. 응원하는 대상을 반드시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팬덤의 화력도 나타나기 어려워 보였다. 인지도 높은 연예인들 위주라서 전반적으로 실력도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인, 무명의 실력 있는 도전자들이 나타나 몰입도가 높아졌다. 그중 가장 충격을 준 신인이 바로 12세 소녀 김다현이다. 청학동 김봉곤 훈장의 4남매 중 막내딸인데,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 교육을 시켰다. 그렇게 형성된 내공으로 엄청난 가창력을 선보였다. 가히 괴물 신인의 탄생이다. 

《미스터트롯》에서 정동원이라는 천재 소년이 등장해 열렬한 팬덤이 형성됐었다. 《보이스트롯》에선 김다현 팬덤이 만들어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아이 같지 않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표현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한국 가요계의 미래가 나타났다. 

김다현은 1회전(1라운드)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충격을 안겼다. 김용임의 《사랑님》을 불렀는데 그야말로 완벽한 무대였다. 통과 기준인 크라운 11개를 가뿐히 넘어 무려 14크라운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시청자들이 15크라운 만점이 나오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느꼈을 정도였다. 심사위원 진성은 “원초적으로 인간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소녀를 보면서 느낀다. 천상의 목소리다. 훌륭한 무대를 본 것만으로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그렇게 어른 이상의 놀라운 무대를 소화한 후 아빠 품에 안겨 우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였다. 이때부터 뜨거운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MBN 제공 

시청자를 사로잡은 명곡 행진 

2회전엔 트로트 영재 어린이들과 함께 팀미션을 소화했다. 모두 천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출중한 재능의 소유자들이었지만 김다현의 목소리는 그중에서도 도드라졌다. 3회전에선 팬심을 뒤흔든 명곡이 탄생했다. 바로 《천년바위》였다. 국악적인 느낌이 가미된 트로트로 어른도 소화하기 힘든 노래인데 이 어린 소녀가 완벽하게 가창했다.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야만 하나, 이제는 아무것도 그리워 말자, 세월이 오가는 길목에 서서, 천년바위 되리라’ 이런 가사를 어린아이가 부르면 마치 아이가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를 때처럼 가사와 가수의 부조화로 인해 그저 귀엽다고 여겨지기 쉬운데, 김다현은 귀엽다든가 아이치곤 잘한다는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 《천년바위》를 완성해 냈다. 경이적인 순간이었다. 

4회전에서 또 다른 충격을 줬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를 선곡한 것이다. 이 곡은 트로트에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이 가미된 것으로 《사랑님》 《천년바위》와는 다른 현대적 느낌의 댄스곡이다. 김다현은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나타나 현대식 안무를 소화했다. 이 소녀의 다재다능함을 확인시켜준 무대였다. 가히 역대 어린이 영재 가수 중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판소리를 수련하고 연극, 예능계에까지 진출했던 아버지 김봉곤 훈장의 끼를 이어받았다. 일종의 유전자 금수저인데 거기에 조기교육까지 덧붙여졌다. 4~5세에 판소리에 입문한 것이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시키는 판소리 훈련을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그 훈련의 시간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자산이 되었다. 셋째 딸인 김도현과 막내인 김다현이 함께 음악교육을 받았는데 과거 방송에서 판소리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도현양은 “지금은 안 좋아해요. 아버지가 억지로 시키니까”라고 했었다. 다섯 살 다현양은 판소리를 계속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아니요”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다현양은 “아버지가 우리 꿈을 위해 노력해 주시는 것도 다 사랑이다”고 한다. 단순한 방송용 덕담이 아니다. 《보이스트롯》에서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간절한 모습을 보면 확실히 이젠 음악활동이 본인의 진짜 꿈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꿈이 그대로 자식의 꿈이 된 이상적인 경우다. 김영임 명창에게도 소리를 배웠고, 신영희 명창은 김다현 자매를 두고 ‘두 자매 모두 장차 명창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악 수련만 한 게 아니다. 2017년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한 것이 화제가 돼 2018년에 두 자매 모두 키즈 아이돌그룹에 합류하기도 했다. 가요 보컬 수업도 받았다. 2019년 《불후의 명곡》에 김봉곤 국악 가족으로 출연해 우승하기도 했다. 김봉곤 훈장은 두 딸에게 자신감과 인내심을 길러주기 위해 100대 명산을 찾아다니며 공연 훈련을 시켰다. 

ⓒ유튜브 채널 《김봉곤TV》 제공 

아버지의 조기교육, 아이에게 꿈을 심다 

이런 경력으로 유아 때부터 다져진 내공이 《보이스트롯》에서 발산한 것이다. 성인도 떨면서 실수하는 무대에서 안정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특히 여러 명과 함께 공연할 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홀로 선창하는 모습에서 음악적 자신감이 느껴진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먼저 소리를 내기 어렵다. 

아이 같지 않게 노랫가락이 구성지고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것은 국악 수련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꺾기 창법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데, 트로트의 꺾기 자체가 국악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김다현이 평생(?) 해 온 수련과 맞닿아 있다. 《천년바위》에서 ‘알알이 맺혔구나’ 대목을 하는데 ‘맺혔구나’ 네 글자 중에 세 글자를 꺾어도 과잉이라는 느낌이 없는 건 그런 수련의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안무 감각까지 있다. 보통 아이가 춤을 잘 춘다고 하면 특정 안무를 외워서 하는 경우가 많고, 이럴 때 흔히 몸 자체는 뻣뻣하다. 반면에 김다현은 몸의 움직임에 리듬감이 깔려 있고 손끝의 섬세한 움직임도 어른 못지않다. 《아모르파티》에선 현대식 안무까지 소화했다. 

게다가 이제 겨우 열두 살이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국악 훈련을 주로 했기 때문에 노래할 때 창의 느낌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이건 기본기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다양한 기술을 더하면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재능이다. 가끔 어린 천재들이 성장 과정에서 그 가능성을 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김다현은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지켜줘야 한다. 한국 가요의 미래를 이끌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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