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부터 ‘北의 만행‘ 알려지기까지…나흘간 무슨일 있었나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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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어떻게·왜 북한으로 향했는지 여전히 베일
野,. ‘세월호 7시간’ 빗대며 대통령 행적 밝히라 압박
24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 실종됐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정박해 있다. ⓒ 연합뉴스
24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 실종됐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정박해 있다. ⓒ 연합뉴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총살된 뒤 시신까지 불태워져 버려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실종 공무원의 정확한 행적과 북한으로 넘어가게 된 경위 등은 명확한 증거가 없어 여전히 베일에 싸인 상태다.

정치권은 나란히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며 진상요구를 촉구하고 나섰다. 야당은 청와대와 정보 당국의 판단 착오로 실종 공무원을 살릴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쳤다며 맹비난 하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위해 고의적으로 이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며 구체적인 행적을 밝히라고 압박했다. 

실종자 가족 측은 정부가 이 사건을 망자의 월북 또는 자살시도로 몰아가고 있다며 분개했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요구에도 피격 사건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나흘 간 무슨 일 있었나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아무개(47)씨의 실종 신고가 접수된 것은 21일 오전 11시30분께다. 오후 1시께 당국은 이씨가 탔던 배에서 선미에 놓여 있던 신발을 발견한 뒤 실종된 사실을 파악하고, 군·경·해수부가 합동으로 본격 수색에 돌입했다. 

당국이 이씨 소재를 파악한 것은 이튿날인 22일이다. 부유물에 탄 채 북측 해역으로 넘어간 이씨는 오후 3시30분께 북한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수산사업소 선박에 있던 군인을 접촉했고, 이들에게 월북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등산곶 해상은 최초 실종 사건이 접수된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서 서북서 방향으로 약 38㎞ 떨어진 곳이다. 이후 오후 6시36분쯤 문 대통령에게 "해상 추락 사고로 수색 중이며, 북측이 실종자를 발견했다"는 첫 서면 보고가 이뤄졌다. 

대통령 보고가 이뤄진 지 3시간 뒤인 오후 9시40분께 고속정에 탄 북한군은 실종자에게 사격을 가했다. 이후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북한군이 실종자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에 태운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와 정보 당국이 이씨 상태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지만, 진위 파악을 위해 뚜렷한 조치를 취하지 않던 3시간 사이 실종자는 무참히 살해됐다. 정보 당국은 이씨가 화장된 뒤 30분 후 북한군에 의해 실종자가 살해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씨가 이미 사망한 뒤인 23일 오전 1시 청와대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긴급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이때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녹화 연설을 시작했다. 서훈 안보실장과 노영민 비서실장 등은 회의 후 이씨 피격과 사망 등이 모두 사실인 것으로 판단하고 오전 8시30분 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라"라고 지시했다. 

오후 1시30분께 국방부는 언론에 실종 사실을 공개하며 "생사는 단정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하루가 더 지난 24일 국방부는 관계 장관회의를 소집해 실종사건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 결과를 보고했다. 이후 대통령에게도 분석 결과 대면보고가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했고, 오전 11시 국방부는 브리핑을 통해 이씨에 대한 총격 및 시신 훼손 사실을 국민에 공개했다.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공무원 이아무개(47)씨의 친형이 24일 동생이 남겨두고 간 공무원증 등을 근거로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은 A씨의 공무원증 ⓒ 연합뉴스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공무원 이아무개(47)씨의 친형이 24일 동생이 남겨두고 간 공무원증 등을 근거로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은 A씨의 공무원증 ⓒ 연합뉴스

野 "세월호 7시간과 판박이…대통령 행적 밝혀라"

실종자가 북한군에 의해 처참히 살해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는 북한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사안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야당은 문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행적을 밝히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한다고 압박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공무원 피격 사건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은 21일부터 3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초 단위로 설명하라"고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도 구출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두 아이를 둔 가장이 살해당하고 불태워지는 것을 군은 6시간 동안 지켜보기만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8년 금강산에서 발생한 박왕자씨 피격 사건과 이번 사안을 비교하며 정부 대응을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피격은) 우발적 발포가 아니라 상부 지시에 따라 이뤄진 계획적 살인이었다"며 "박왕자씨 사건은 정부가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살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건발생 후 3일이 지나 뒤늦게 사건을 공개하고 입장을 발표해 무엇인가 국민에게 숨기는 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이 이렇게 처참하게 죽었는데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낼 헌법상 책무를 지닌 대통령은 종전선언, 협력, 평화만을 거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국민이 분노와 슬픔에 빠져있는데 한가로이 아카펠라 공연을 즐기는 모습에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는지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향해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또 "말로만 비판하지 말고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만큼 외교적 행동을 취해 북한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피격 사건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그토록 비판하던 '세월호 7시간'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안 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해 당한 엄청난 일이 발생했는데도, 대통령은 (23일) 새벽 1시 회의(긴급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면서 "새벽 1시에 회의를 소집할 정도였다면 이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했을 일은 '종전선언' 메시지를 담은 유엔연설의 전면 중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밝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대통령께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 당국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속 시원하게 밝혀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청와대와 여당도 북한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날 문 대통령은 "충격적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북한의 책임있는 답변과 조치를 요구했다. 

북한은 사건 발생 며칠이 지나도록 침묵으로 일관하며 코로나19 방역만 강조하고 있다. 25일 오전 7시까지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 대외선전매체 그 어디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박왕자씨 피격 사건 당시 다음날 담화문을 내고 유감을 표명한 것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종자 가족 "월북 시도라는 정부 추정 납득 안 돼"

실종된 이씨의 형은 동생의 월북 시도 가능성에 대해 연일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씨 형은 "선박에 공무원증과 신분증이 그대로 있었다"며 "북한이 신뢰할 공무원증을 그대로 둔 채 월북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바다에서 4시간 정도 표류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공포가 몰려온다"며 "동생이 실종됐다고 한 시간대 조류의 방향은 북한이 아닌 강화도 쪽이었으며 지그재그로 표류했을 텐데 월북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군이 자신들의 근무태만과 실수를 덮기 위해 동생을 몰아가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생이 빚 때문에 월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생이 동료들에게 돈을 빌렸다가 월급 통장을 압류당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몇 억도 아니고 2000만원 때문에 어머니와 자식 둘을 버리고 월북하는 사람이 어딨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나 당국으로부터 동생의 상태나 후속 조치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들은 것이 없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부실 대응을 비판했다.

해양경찰과 해수부 등은 이씨의 실종 전 행적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경은 소연평도 해상에서 이씨가 실종되기 전 채무를 포함해 각종 계좌 내역, 휴대전화 통화 내역 등을 조사 중이다. 이씨가 근무했던 무궁화 10호 내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2대는 지난 18일부터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아 실종 직전 동선 파악은 사실상 미궁에 빠진 상태다. 수사당국은 함께 일한 동료의 진술 등을 확보하고 추가 물증 확보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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