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2030에 응답하라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2 09:00
  • 호수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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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두고 한때 ‘사회를 향해 흐르는 뜨거운 피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청년들에게 말하면 냉랭한 시선을 받기 일쑤였다. 한가한 소리 하지 말라는 리액션이다. 요즘 청년들 앞에 놓인 삶이 얼마나 혹독한데, 그래서 그 뜨거운 피가 흘러가야 할 곳을 찾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인데, 무슨 엉뚱한 말을 하느냐는 뜻이 거기 담겨 있을 터이다.

그렇다고 그런 모습을 보이는 청년들이 과거 세대처럼 사회문제에 대해 열정적이지 않다고 단정하면 곤란하다. 비록 많은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내 코가 석 자’일지라도 자신이 지키고 싶은 가치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그들 또한 언제든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낸다. 지난 ‘조국 사태’ 때 양쪽으로 극명하게 갈라져 자신의 말을 거침없이 내놓은 이들도 청년이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축도 젊은이들이다.

집권 초기 현 정권에 대해 강한 지지를 보냈던 청년 민심이 최근 들어 심상치 않게 바뀌고 있다. 조국 전 장관·추미애 장관 자녀 관련 의혹 사건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정부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거치면서 여권을 대하는 청년층의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그 실상은 시사저널이 지난 8월 중순에 실시한 ‘2030 정치·사회 인식’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30세대의 53%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잘못한다’고 응답했고, 그렇게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로 ‘대화와 타협 없이 독선적이어서’를 꼽았다(시사저널 제1610호 지면 참조). 이는 현 정권 들어 연이어 불거진 ‘불공정’ 이슈들에 청년들의 마음이 얼마나 크게 다쳤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

여권의 처지에서 볼 때 ‘믿었던’ 청년층의 등 돌림은 거북스러울 수밖에 없다. 큰 기둥 하나가 흔들렸다고 받아들여질 만하다. 실제로 여권 인사들 가운데서도 청년층의 지지를 잃은 것이 가장 뼈아프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청년층의 이탈을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도 정부·여당 내에서 커지고 있다.

2030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세대다. 그들의 견해는 정책의 비전을 세우는 데도 유용하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여당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2030세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자리를 만들라는 것이다. 듣는 일에 순서가 따로 있지는 않을 테지만 이왕이면 대통령이 먼저 나서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문 대통령의 직접 소통 부족을 지적하는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민의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는 판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식은 때가 때이니만큼 젊은 층에게 익숙한, 랜선 연결을 통한 비대면 다중 대화가 최적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국민과의 대화’처럼 꼭 방송중계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보여주기’가 아니라 ‘듣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생각을 듣다 보면 그동안 정부·여당이 놓치고 있던 부분이 새롭게 부각될 수도 있다.

국민이 바라는 정부는 국민의 마음을 잘 읽는 정부다. 2030세대를 비롯해 앞으로 계속 더 많은 국민에게 귀를 열어야 한다. 이번 추석에 가정마다 쌓인 ‘밥상 민심’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말만 하는 정치’는 ‘듣는 정치’를 결코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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