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홍보원, 관리 사각지대에서 계속되는 일탈과 비리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3 14:00
  • 호수 16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안문서 내팽개치고, 관용차로 쇼핑 다니고…해외문화홍보원 행정직원 요지경 근무 실태

#사례1: 최근 베트남 해외문화홍보원(이하 재외문화원) 원장으로 근무했던 A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A원장이 세금을 횡령해 관광을 다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부는 합동감사를 벌였지만,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부실 감사’ 지적이 나오자 A원장에 대한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이후 보직 없이 지원업무를 했다. 지난달 A원장은 보직과장으로 임명됐다. 그러자 비위 공무원이 아무런 징계 없이 보직과장에 임명됐다는 지적이 언론(9월11일 보도)을 통해 알려졌다. 다음 날 A원장은 숨진 채 발견됐다. A원장의 사건은 현지에서 채용된 행정직원의 투서로 시작됐다.

ⓒ일러스트 정찬동

#사례2: 지난해 문체부는 미주 지역 B재외문화원의 석연치 않은 사업비 집행과 회계자료 미비 등을 포착하고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결과 행정직원 C씨가 자금을 집행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한인마트나 식당을 운영하는 교민들을 통해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회계 처리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외에도 C씨는 출퇴근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업무시간에 대사관 번호판이 붙은 관용차를 타고 쇼핑센터를 다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C씨는 정직 2개월 중징계를 받고 퇴직했다. 그로부터 10개월 뒤, 그는 다시 유럽의 D한국대사관 행정직원으로 재취업했다.

재외문화원 행정직원 구조적 관리·감독 어려워재외문화원은 해외에서 대한민국을 홍보하는 전진기지다. 하지만 재외문화원 원장들은 횡령·갑질·채용비리·방만경영 등을 일삼으며 각종 사건·사고의 주범으로 언론에 비춰졌다. 반면에 현지에서 채용되는 행정직원들과 관련한 문제점은 한 번도 드러난 적이 없다. 재외문화원의 행정직원은 통상 국내에서 공무원을 파견하지 않고 해외 거주자 등을 대상으로 현지에서 직접 채용한다.

재외문화원 행정직원들의 근무 실태는 어떨까. 시사저널은 해외 각국의 재외문화원 행정직원들의 근무실태와 재외문화원의 구조적인 문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봤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재외문화원 현지채용 직원 징계 현황’에 따르면 5년간 재외문화원 행정직원 징계 건수는 단 4건인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전 세계 32개소의 재외문화원에는 행정직원 총 278명이 근무 중이다. 그동안 문제가 된 행정직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수치가 행정직원에 대한 감시가 잘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것일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애초에 재외문화원 행정직원의 관리·감독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공무원인 재외문화원장이 혼자 민간인인 행정직원들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장은 문체부에서 파견된 공무원이다. 재외문화원마다 평균 8명의 행정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2020년 재외문화원 주요 업무 계획서에 따르면 원장의 인사·조직 관리 미숙에 따른 행정직원 고충 상담 등 갈등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원장들이 오랫동안 현지에서 근무한 행정직원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특징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장의 임기는 3년이다. 임기를 마치면 통상 원소속인 문체부로 복귀한다. 문체부 안팎에서는 재외문화원이 사실상 ‘쉬었다 오는 자리’로도 통한다. 재외문화원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현지 채용된 행정직원 중에는 정규직으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 많다. 반면에 원장은 어차피 갈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재외문화원 행정직원의 근무연수는 원장의 임기보다 길다. 재외문화원에서 징계를 받았던 행정직원들의 근무연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의 평균 근무연수는 4년8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행정직원이 파견 온 원장보다 조직과 현지 상황에 대해 더 많은 걸 알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서로가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한다’는 게 재외문화원에 근무했던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에 스스로 목숨을 던진 A원장은 재외문화원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주장이 문체부 안팎에서 나왔다. A원장 사건은 내부 행정직원의 투서로 불거졌다. 앞서 이 행정직원은 업무 태만 등으로 징계위에 회부됐고, 이에 불만을 품고 A원장의 비위 등을 신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A원장은 부임 이후 1년6개월 만에 행정직원 정원 9명 중 6명과 계약을 해지하거나 해고 통보를 했다. 재외문화원 관계자는 “A원장의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직원 징계 건수를 재외문화원의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 짓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며 “원장의 행정직원 관리·감독 등 업무와 관련해 보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말했다.

징계받은 행정직원, 퇴직 후 재외공관 재취업

징계를 받은 재외문화원 행정직원이 재외공관에 아무런 제약 없이 재취업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B재외문화원에서 징계를 받고 퇴직한 C씨의 경우 D한국대사관 행정직원으로 재취업했다. 현행법상 C씨의 채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교부 재외공관 행정직원 채용규정에 따르면 지원자가 해고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이상 문제 될 게 없다.

문체부 산하의 재외문화원은 외교부가 관리·감독하는 재외공관 중 하나다.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재외공관 행정직원 출신이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재외공관으로 이직하는 일이 빈번하다. 실제로 재외공관들이 행정직원을 채용할 때 ‘해당 국가 언어 구사자’와 ‘관련 업무 경험자’ 등을 필수조건 및 우대사항으로 두고 있다.

C씨가 D한국대사관에 재취업할 수 있었던 건 이 국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B재외문화원에서 행정직원으로 일한 경험 등이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징계를 받은 직후 퇴직한 행정직원이 또다시 재외공관에 취업한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사저널은 SNS 등을 통해 C씨에게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채용 당시 징계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해당 직원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뽑았다”고 말했다.

문체부와 외교부로 이원화된 재외문화원의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재외문화원 지휘·감독 권한은 외교부에 있지만 예산 집행은 문체부 소관이다. 국정감사 때마다 재외문화원 구조와 운영 시스템이 관리의 사각지대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회 외통위 위원인 이재정 의원은 “재외공관, 재외문화원 등 해외에서 일하는 것은 외교관 못지않은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 중책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현지 채용 행정직원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외통위 위원으로서,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면밀히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