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청정지역 영암 곳곳에 불법 ‘쓰레기산’…2년 새 ‘12개’
  • 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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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폐기물 3만여 톤 품고 사는 전남 영암 ①]
경북 영천시에 이어 전국 ‘2위’…올해 9180톤 추가
겨우 9%만 치워, 소각용 2만6000여톤 “처치 곤란”

지난 10월 6일 오후 찾아간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산 159번지. 취재진이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주소를 갖고 불법폐기물 투기 현장을 찾아갔으나 뜻밖에도 목적지인 석산 채석장 대신 흑염소농장이 나타났다. 길을 가로막은 높이 3m, 폭 8m 가량의 철제 농원 출입문은 출입금지 푯말과 함께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출입구 맞은편에 대각선으로 설치된 두 대의 CCTV가 접근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투기업자가 염소농장 매입해 정상적 사업장 위장”

인근 마을 주민 A씨(45)는 “지난해 폐기물 투기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업장으로 위장하기 위해 염소농장을 매입한 뒤 야밤에 트럭을 동원해 뒷산에 투기를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곳에서부터 산 정상 부근 산림청 소유 석산 채석장까지 폭 6m 가량의 도로가 나 있어 자유롭게 드나들었는데 최근 무슨 영문인지, 어느 날 갑자기 철제문이 설치되면서 길이 막혔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이 잠시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사이에 산림청 소속 사복경찰과 감시원들이 나타났다. 이어 염소농장 새 인수자의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50대 초반의 중년 남자가 등장해 출입문을 열어줬다. 1km 남짓 떨어진 석산을 순찰하겠다는 산림청 직원들 요구에 길을 터주기 위해서다. 그는 “목포 인근에도 여러 채의 축사를 갖고 있다”며 “최근 아들이 이 염소농장에 대한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가 생겨 시끄러워진다면 매수를 포기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매도인이 누구냐’ 등을 묻자 “아들이 계약을 해서 잘 모르겠다”며 말을 극히 아꼈다.     

산림청 직원들의 차량을 타고 지난 여름장마로 곳곳이 패인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1km 정도 떨어진 매립 장소로 향했다. 언덕을 오르는 길 양쪽에는 마치 예고편을 보여주듯 한 트럭 분량씩 폐기물이 군데군데 부어져 있었다. 5분쯤 올라가자 갑자기 앞이 훤하게 터지며 휑한 평지에 ‘폐기물산’이 솟아 있었다. 바닥은 매립장을 오간 대형트럭 바퀴자국이 선명했다. 폐기물 투기업자들이 토지 주인 산림청 몰래 불법 투기한 현장이다.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소재 산림청 소유 석산 불법폐기물 투기 현장.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소재 산림청 소유 석산 불법폐기물 투기 현장. ⓒ시사저널 조현중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석산 입구 흑염소농장 출입문. 이곳으로부터 1km 가량 올라가면 불법폐기물 투기 현장인 산림청 소유 석산이 나온다.ⓒ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석산 입구 흑염소농장 출입문. 이곳으로부터 1km 가량 올라가면 불법폐기물 투기 현장인 산림청 소유 석산이 나온다.ⓒ시사저널 정성환

쓰레기 수천톤…채석 끝난 석산에 몰래 버렸다

석산 부지 전체에 작심하고 쓰레기를 투기할 의도였는지 왼쪽 귀퉁이부터 구역으로 나눠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쓰레기산’이 그 면모를 드러냈다. 채석이 끝난 석산 마당에는 폐어구·그물·밧줄·플라스틱·스티로폼·비닐·고철 등 온갖 쓰레기가 한 데 뭉쳐져 있었다. 쓰레기 중 일부는 선별을 거쳐 압축돼 고박상태였으나 대부분은 난삽하게 뒤엉켜져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악취도 심했다. 침출수 유출로 인한 하천이나 농경지 오염이 우려됐다. 

투기꾼들은 채석이 끝난 산을 노렸다. 이곳은 십여년 전 한 석산개발 업체가 솟아 있는 산자락을 60~70m 깎아내면서 생겨난 8만3372㎡(5만5000여평)의 넓은 공간이 생겼다. 석산개발 업체가 채석을 끝내고 나가면 석산복구 업체가 들어와 산림 복구에 나서야 하는데 그대로 방치하자 투기꾼들이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한 것이다. 

산림청이 지난 2016년 매입한 이 땅에 투기업자가 쌓아둔 폐기물의 양은 영암군 추정 1980톤이다. 영암군은 지난 8월 3일 낮, 이곳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린 트럭 운전기사를 현장에서 붙잡아 검찰에 송치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영암군은 앞서 지난 7월 말, 이곳으로부터 강진방향으로 직선거리 500m 떨어진 학산면 묵동리 한국골재협회 소유 폐석산(19만평)에 5000여톤의 폐기물을 버리고 도망간 투기 행위자를 적발해 목포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산림청·한국골재협회도 폐기물 투기꾼에 당했다”

​산림청 직원들이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불법폐기물 투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산림청 직원들이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불법폐기물 투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시사저널 조현중

영암군에 따르면 2018년 9월부터 2020년 8월까지 2년 동안 관내에서 발생한 불법 투기는 모두 12곳, 2만8620톤에 달한다. 전국 시군 중 경북 영천시(4만1000톤)에 이어 2위다. 올 들어서도 9월 현재 5건에 9180톤이 새로 쌓였다. 영암군은 이 쓰레기를 치우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전체의 9%인 2500여 톤만 치웠다. 여기에 들어간 혈세만 11억 5000만원(군비 10억원, 국비 1억5000만원)에 달한다. 영암군의 재정자립도는 15%대다. 

소각처리 낙찰 금액이 톤당 29만원에 달해 군 재정 형편상 수년 안에 나머지 2만6000톤의 불법폐기물에 대한 처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암군이 행정대집행으로 먼저 치우고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하지만 “배째라”는 식의 투기꾼과 농민 토지주를 대상으로 집행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영암군이 그나마 이번에 적발된 투기현장의 토지주가 산림청과 한국골재협회인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민 A씨는 “월출산이 왜 월출산이냐, 그 산 위로 밝고 큰 달이 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척 아름다운 산이다”며 “그러나 자고나면 새로 산이 생기고 있다. 쓰레기 없는 영암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류기봉 영암군 환경보전과장은 “군의 특성상 폐기물 투기 우려 장소가 널려 있는데 5~7명의 직원이 감당하고 있어 감시와 적발이 벅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영암군은 각종 유해물질이 뒤엉킨 쓰레기 2만6000여톤을 품고 또 하루를 보낸다. 국립공원 월출산으로 유명한 영암에서 ‘쓰레기산’ 오명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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