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55보급창’이 부산항과 도심 연결 가로막는다
  • 권대오 영남본부 기자 (sisa521@sisajournal.com)
  • 승인 2020.10.19 13:00
  • 호수 16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2004년부터 55보급창에 공원 조성 추진…예산과 미군 협의 문제로 이전 논의 지지부진

10월13일 부산 범일동에 위치한 주한미군 55보급창 인근 경리2 철도건널목을 찾았다. 이곳은 우암선에서 분기돼 55보급창으로 들어가는 진입철도 구간이다. 철길은 차량 통행을 위해 포장되면서 침목과 레일이 아스팔트로 덮혀 있었다. 철길 주변에는 수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철길 위에 화물차와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다. 55보급창 바로 앞 신천지 안드레 연수원 내부를 지나는 철길도 철제 울타리로 막혀 있었다. 일부 구간은 궤도를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훼손된 채 방치돼 있었다. 이렇듯 55보급창은 더 이상 군수품 수송 열차가 진입할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이 철길을 관리하는 기관에 물어보니 “이미 수년 전부터 열차가 다니지 않았으며, 선로 수리 등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55보급창 진입철도와 연결된 우암선 또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간 우암선을 통한 컨테이너 운송 실적은 전무하고, 일반화물 운송도 중단된 상태다. 컨테이너 화물을 더 이상 취급하지 않아 우암선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미군 8부두에서 나오는 미군 화물 등을 수송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장애물로 끊어진 55보급창 진입철도  ⓒ시사저널 권대오
각종 장애물로 끊어진 채 방치돼 있는 55보급창 진입철도 ⓒ시사저널 권대오

부산시, 정부와 이전 논의조차 못 한 실정

55보급창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군 군수물자 보급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주변 환경 변화로 군사 전술적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55보급창 진입철도가 끊어지고 수년간 철도수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전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문제는 55보급창이 부산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핵심 요지를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1994년 동구청은 부산시와 주한미군에 55보급창 이전을 요구했고, 이듬해에는 우리땅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가 하야리아 부대와 55보급창에 대한 반환운동을 시작했다. 결국 2002년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으로 하야리아 부대는 ‘부산시민공원’으로 바뀌었지만, 55보급창은 그대로 남아 있다. 

부산시도 55보급창 반환에 나섰다. 부산시는 2004년 55보급창을 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기본 방침을 확정했고, 2011년 ‘2030년 부산광역시공원녹지기본계획’에 동천하구숲공원을 반영하면서 55보급창 환수·공원화를 공식화했다. 2018년 ‘시민공원~북항 연계 도심재생마스터플랜’에 2021년까지 55보급창 이전 협상을 마무리하고, 2030년까지 55보급창을 공원과 복합개발용지로 개발하는 안을 담았다. 2019년 10월 발표한 ‘부산시원도심대개조비전’에도 55보급창을 2030엑스포기념공원으로 조성하는 안을 계획했다. 

지난 5월19일 박성훈 부산시 경제부시장 주재로 진행한 ‘북항 관련 추진용역 교통계획 분야 합동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은 55보급창과 8부두 이전을 전제로 동서고가도로와 우암선을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도 9월24일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과 하태경 국민의힘 부산시당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가덕신공항’과 함께 ‘2030부산월드엑스포 성공 유치를 위한 미 55보급창 등 군 시설 이전’을 당면 현안 사업 중 하나로 건의했다. 

오성근 2030부산월드엑스포범시민유치위원장도 9월22일 북항 2단계 온라인공청회 자리에서 “2단계 개발에 포함되지 않은 안드레 연수원을 부산시가 꼭 포함시키면 좋겠다. 55보급창도 엑스포 유치를 위해 꼭 필요한 지역이다. 2023년 초까지는 사업권자가 대상 사업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법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엑스포 실사에 대처하기 어렵다”며 55보급창 부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55보급창 이전을 위한 부산 시민과 부산시의 줄기찬 활동이 계속됐다. 하지만 현재 이전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부산시 재정 규모로 이전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미군과 협의가 우선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 사업으로 추진해야 이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2030월드엑스포는 국가사업으로 확정돼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55보급창 부지를 엑스포 부지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55보급창을 2030엑스포기념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부산시 역시 전담부서나 직원을 배치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부산시는 국가 사업이니만큼 전면에 나서지 않고 내부적으로 정부를 설득 중이라 해명한다. 이처럼 2023년 상반기로 예정된 엑스포 실사 전에 55보급창 이전 결정이 나야 하지만, 여태까지 정부와 부산시는 별다른 공식 논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컨테이너 화물이 사라진 우암선 철도 ⓒ시사저널 권대오
컨테이너 화물이 사라진 우암선 철도 ⓒ시사저널 권대오

화물 수송 사라진 우암선, 무가선 트램 추진

우암선도 사정은 비슷하다. 우암선은 2008년 컨테이너 화물 수송량 100만 톤을 달성했던 주요 선로다. 하지만 지금은 컨테이너 화물을 일절 수송하지 않고 있다. 철도산업정보센터(KRIC) 2018년 철도통계에 따르면, 미군 화물 수송에서 우암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17.39%에 달하는 반면 전체 화물 수송에서 우암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0.023%에 불과하다. 2011년 우암선 화물 수송 실적은 50만3896톤으로 노선별 화물 수송 16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9년 실적은 7042톤을 기록하며 34위로 추락했다. 2011년 대비 98.6% 감소한 수치다. 이는 부산항으로 들어오던 컨테이너 수송이 끊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다행스럽게 컨테이너 화물 감소로 활용도가 떨어진 우암선은 무가선 트램을 도입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다. 화물열차 대신 도시철도 일종인 트램을 도입해 대중교통 인프라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부산시는 2019년 1월7일 시장 지시로 ‘우암선 화물철도 활용방안’을 검토했다. 검토안에 따르면, 우암선 일반화물 운송은 중단됐다. 다만 주 1회 2보급단 군수물자 운송만 유지하는 실정이다. 

우암선은 비상시 8부두와 신선대부두 전시물자 수송로 역할을 담당한다. 이 때문에 폐선은 불가능하다.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부산시는 ‘부산광역시 도시철도망 구축계획 재정비 용역’에 우암선을 활용한 트램 건설 방안을 담았다. 우암선 노선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남구는 역시 부산시가 용역 중인 ‘우암선을 활용한 무가선 트램 - 유엔평화선’을 올해 후반기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유엔평화선은 범일역-동천삼거리-감만삼거리-동명오거리-평화공원을 지나 TBN교차로에서 오륙도선과 연결되는 노선이다. 남구는 2021년 부산광역시 도시철도망구축계획에 유엔평화선을 반영하고, 2022년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