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배우 탄생의  새로운 기회 열리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7 14:00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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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발견한 신인 연기자들…미디어 환경 변화 업고 발돋움 

지금 배우라는 영역만큼 다양한 분야 종사자들이 도전하는 곳도 없다. 모델, 아이돌, 뮤지컬 배우 등이 몰려드는 이 경쟁적인 분야에서 최근 신예 스타의 산실로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다. 천계영 작가의 원작 웹툰을 리메이크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은 독특한 세계관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청춘 로맨스를 그리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들어오면 알람이 울린다는 이른바 ‘좋알람’이라는 가상의 애플리케이션을 장치로 설정함으로써 독특하고 색다른 이야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웹툰 원작, 그것도 천계영 작가 특유의 순정만화가 갖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인물들을 끄집어냈다. 어린 시절 동반자살을 기도했던 부모 사이에서 간신히 생존해 이모 집에 얹혀사는 김조조(김소현), 잘생긴 데다 부잣집 아들이긴 하지만 부모님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황선오(송강),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지만 선오네 가사도우미의 아들로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이혜영(정가람)이 그들이다. 이 드라마의 성공에 작품 속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만큼 이 인물들을 연기해 낸 배우들에 대한 관심 또한 폭발했다. 특히 이 작품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는 바로 송강이다. 김조조와 달달하면서도 아픈 사랑을 하는 남자 주인공 황선오 역할이 배우가 가진 풋풋하면서도 맑은 이미지와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인간수업》의 주연으로 주목받은 김동희와 박주현 ⓒ넷플릭스 제공
신인 배우 송강은 《좋아하면 울리는》의 주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제공

《좋아하면 울리는》으로 스타덤 오른 송강 

이른바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 말하지만 웹툰 리메이크작에서 기성 배우들이 이런 호칭을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외모가 출중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웹툰 원작이 유명하면 할수록 그 작품 속 인물과 리메이크작에서 이를 맡은 연기자의 이미지는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현실적인 외모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게 더 중요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이처럼 유명한 웹툰 원작에 여주인공 김조조 역할을 연기하는 김소현을 빼놓고는 대부분 신인 배우들이 캐스팅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다른 작품의 연기 이미지가 없는 신인 배우여야 이 인물의 판타지가 빈 도화지 위에 더 잘 그려지기 때문이다. 신인 배우 송강은 그렇게 신인 배우로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고, 드라마가 성공하면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2를 촬영 중이고, 또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에서도 주인공을 맡았다. 

그런데 과연 지상파였다면 이처럼 신인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간의 지상파 드라마의 제작 관행을 보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주인공이 누구냐는 것은 실시간 경쟁을 벌이는 지상파 채널에서는 가장 중요한 선택의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톱스타를 주인공으로 세우려는 노력은 심지어 드라마 제작이나 편성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OTT는 사정이 다르다. 실시간 타 방송사와 경쟁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재미를 통해 구독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작품의 스토리와 연출이 중요하고, 배우는 상황에 따라 톱 배우를 쓰기도 하지만 신인 배우라고 해서 아예 주연에서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넷플릭스가 결국 글로벌 대중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국내 기준으로 톱배우와 신인 배우로 나뉘는 것이지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모두 동일선상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이병헌이나 주지훈, 배두나처럼 해외에 이미 팬덤이 있는 몇몇 배우는 예외지만. 게다가 이들은 톱배우들보다 출연료가 적다. 지상파 드라마들의 캐스팅 비용이 과도해 이 불균형이 제작에도 악영향을 미치곤 한다는 기사가 적지 않게 나오는 사정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이런 OTT가 가진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 또 다른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방영되어 글로벌한 인기를 끈 《인간수업》이다. 청소년 성매매를 하는 십대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어 애초에 지상파 같은 방송사 편성은 어려웠던 이 작품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성격과 맞아떨어지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김동희, 정다빈, 박주현, 남윤수 등 모두 신인 배우들이다. 물론 정다빈은 오랜 아역배우 활동으로 익숙한 얼굴이지만 김동희나 박주현은 사실상 첫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작품의 큰 성공은 이들 신인을 단박에 주연급으로 끌어올렸다. 김동희는 JTBC 《이태원 클라쓰》에서 장근수 역할로 비중 있는 연기를 했고, 박주현은 KBS 《좀비탐정》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인간수업》의 주연으로 주목받은 김동희와 박주현 ⓒ넷플릭스 제공
《인간수업》의 주연으로 주목받은 김동희와 박주현 ⓒ넷플릭스 제공

신인 발굴은 물론 글로벌 인지도 상승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로 현재 기대를 모으고 있는 《지금 우리 학교는》이나 《스위트홈》을 보면 이러한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란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걸 예감하게 한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지금 우리 학교는》은 SBS 《아무도 모른다》 등에서 존재감을 키워오고 있는 윤찬영을 제외하고는 박지후, 조이현, 로몬, 유인수 같은 신인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또한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의 이응복 PD가 연출을 맡아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의 하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위트홈》 역시 이진욱과 이시영이 함께하지만 송강과 이도현처럼 참신한 얼굴들이 캐스팅되어 있다.  

넷플릭스 같은 OTT는 신인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 얼굴을 알릴 수 있는 등용문이 되기도 한다. 물론 OTT가 오리지널로 제작하는 드라마는 아직까지 많지 않다. 하지만 지상파, 케이블, 종편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이 OTT의 투자를 받거나 아예 OTT를 겨냥하는 사례는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신인 배우들의 기회 역시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대비 효과가 좋고, 무엇보다 최근 들어 넷플릭스 같은 OTT는 물론이고 지상파, 케이블 등에서도 웹툰 리메이크작이 많아진다는 점도 신인 배우들에게 유리한 징후들이다. 

과거 신인 배우들의 데뷔는 주로 소규모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단막극이 그렇고 최근 들어서는 웹드라마 같은 장르가 신인 배우들의 산실로 떠오르게 됐다. 하지만 동시에 OTT 같은 글로벌 지향 플랫폼에 의해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는 신인배우들도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낸 달라진 국내 대중문화계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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