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경문협의 ‘北 저작권료’…모아둔 돈, 어디로?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0.11.09 14:00
  • 호수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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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저작권료로 국군포로 배상 가능” 법원 판단에 경문협 항고…항고 기각 땐 경문협 사업에 위기 뒤따를 듯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의 북한 저작권 대리 및 중개 사업에 대한 논란이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경문협이 북한에 전달할 목적으로 남한에 쌓아두고 있는 저작권료 명목의 현금을 둘러싼 논란이다. ‘우리가 북한에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하는가’란 원론적인 문제 자체에 대해서도 여러 논란이 계속돼 왔지만, 지난 7월 법원이 그 돈으로 북한을 대신해 국내 국군포로 피해자에게 배상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하면서 다시금 도마에 오른 것이다.

경문협은 문재인 정부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15년 전 출범 당시부터 주도했던 단체다. 2005년부터 맡아왔던 경문협 이사장직을 2017년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내려놨던 임 특보는 지난 6월 다시 이사장에 취임했다. 임 특보의 정치적 위상 탓에 올해 국정감사장에서도 경문협 문제는 여야의 정치적 쟁점 사항으로 대두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군포로 노사홍씨(91)와 한재복씨(86)가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7월7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북한 상대 손해배상 소송의 국내 첫 승소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북한이 두 사람에게 각각 2100만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문제는 북한으로부터 이 돈을 어떻게 받아내느냐였다. 북한이 국내 판결을 인정하고 직접 배상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이에 원고 측 변호인단은 국내에 있는 북한 소유로 추정할 수 있는 재산에 대해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했고, 이를 법원이 승인했다. 법원도 해당 재산을 북한 재산으로 판단한 셈인데, 이 재산이 바로 경문협이 현재 법원에 공탁해 놓은 북한 저작권료다.

2018년 4월27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며 웃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법원, 경문협 북한 저작권료 압류 등 ‘승인’

경문협은 2005년 12월31일 금강산에서 북한 내각 산하 저작권사무국과 협약을 맺고 북한 내 출판·방송물의 국내 저작권을 위임받았다. 북한 창작자의 도서를 국내에서 출간하거나 북한 방송사의 영상을 국내 방송사가 사용할 경우 사용자 측은 경문협에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고, 경문협은 그 저작권료를 원저작자가 있는 북한에 송금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경문협에 따르면 국내 계약 업체가 지불하는 저작권료를 경문협이 북한 저작권사무국에 전달한다. 이후 북한 저작권사무국이 저작권자 개인에게 전달하게 되는 구조다.

경문협이 지금까지 북한에 송금한 저작권료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총 7억9000여만원으로 확인된다. 2008년 금강산에서 한국인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살된 이후 대북 송금은 중단됐다. 이후로도 경문협은 지금까지 중개 사업을 이어가며 국내 방송사 등으로부터 저작권료를 받아왔지만, 돈을 북한에 보낼 수 없는 탓에 법원에 공탁해 왔다. 그렇게 공탁된 금액은 올해까지 총 20억9200만원이다.

취지와 목적이 남북의 경제·문화 교류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계속돼 왔다. 우선은 상호주의 위반 문제다. 경문협을 통해 국내에선 북한에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북측에선 우리 측 출판·방송물을 사용해도 따로 저작권료를 주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에선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제기하기도 한다. 저작권은 창작자가 갖는 당연한 권리지만, 특수성이 있는 북한에 저작권료를 보내면 그 저작권료가 저작자 개인에게 가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야당 등 보수진영은 저작권료 명목의 돈이 북한 정권에 들어가 군비 등 다른 용도로 쓰일 가능성을 우려한다.

물론 북한에도 저작권은 존재한다. 북한은 2001년 저작권법을 제정했다. 북한 저작권법 제2조는 ‘국가는 창작자의 저작 활동을 보장하고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한다’고 규정한다. 아울러 제31조는 ‘저작물을 이용하는 기관·기업소·단체와 공민은 저작권자에게 해당한 요금을 지불하여야 한다’고도 적고 있다. 사유재산이 없는 북한이지만 북한 저작권법에 따르면 북한의 저작권자는 저작권에 대한 사용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저작권은 국제법적으로도 보호된다. 북한이 2003년 국제저작권협약인 베른협약(Berne Convention)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국내 법원의 판례도 일관되게 북한 창작자의 저작권을 인정해 왔다. 다만 이는 북한 저작권법이나 국제법과는 상관없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들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3조를 근거로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경문협도 이러한 내용들에 근거해 국군포로 노씨와 한씨 측의 신청을 승인한 법원의 판단에 즉각 항고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국군포로 배상 소송 관련 문건에 따르면, 경문협은 “‘저작물의 제작자’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동일시할 수 없다”며 “채권자(노씨·한씨)가 압류한 채권의 권리자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를 비롯해 10여 명의 소설 작가 등 저작물의 제작자”라며 “우리의 경우로 치환해 생각하면, 채권자는 공영 방송사인 KBS를 대한민국 정부와 동일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또 경문협은 “우리 헌법의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가치는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며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의 국민임은 이론이 없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의 재산권도 보장돼야 하는 것이 우리 헌법의 가치”라고 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 노역을 했던 한재복씨와 사단법인 물망초 등 소송대리인 관계자가 7월7일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문협 “북한 저작권 관련해 대응 않고 있어”

법원 판단에 대한 법조인들의 견해는 갈렸다. 먼저 경문협의 주장처럼 저작권자가 개인일 경우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엔케이 법률사무소의 고영상 변호사는 “저작권자가 북한의 개인이고 경문협의 돈을 받는 사람이 개인이라면 경문협의 법원 공탁금을 모두 김정은 위원장의 채무라고 보기 어렵지 않나”라며 “(저작권료에 대한) 성격을 규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다툼의 여지는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북한에선 개인의 재산도 북한 재산으로 봐야 하며 남북한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법무법인 율촌 북한팀 한수연 변호사는 “공산주의는 체계가 다르다. 개인 소유가 원래 잘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북한 주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라고 해도 북한이 가지고 있는 자산 내지 재산으로 취급할 법리적 근거가 있다”며 “우리 법상으로는 북한은 일종의 범죄단체인데 그 단체에 우리가 손해배상을 청구해 돈을 받을 때 그 단체가 갖고 있거나 그 단체의 구성원이 갖고 있는 돈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만일 경문협의 항고가 기각된다면 경문협 입장에선 상당히 난처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후 또 다른 북한 상대 배상 판결이 나올 경우 역시 경문협의 북한 저작권료로 배상하게 되는 선례가 생길 수 있고, 북측으로부터 경문협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올 수 있는 탓이다. 경문협의 가장 주된 협력 사업인 저작권 중개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압류 및 추심) 판결이 확정되면, 경문협의 북한 저작권 사업이 당초 좋은 취지로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 맺은 것이긴 하지만, 완전히 확실한상황은 아니었기에 다소 섣불렀다고 볼 수 있다”며 “북한이 경문협에 불만을 제기할 경우엔 우리가 상당히 곤란해지는 상황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경문협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북한 저작권과 관련해선 언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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