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은 어쩌다 ‘제2의 윤석열’이 되었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6 14:00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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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원장·검찰총장, 여권 편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질게 당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 결과가 10월20일 발표되었다. 감사원은 핵심 쟁점인 경제성 평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을 냈다. 정부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의 주요 사유로 낮은 경제성을 들었는데, 정작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경제성 평가에 들어가기도 전에 조기폐쇄를 지시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한 것이다.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조기폐쇄가 이루어진 과정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다만 감사원은 감사의 핵심인 조기폐쇄 타당성 여부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고,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 요구도 최소화했다. 감사원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이나 그 일환으로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추진하기로 한 정책 결정의 당부(當否)는 이번 감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감사의 한계를 스스로 못 박았다. 감사원이 정부 주요 정책의 내용적 타당성까지 판단하는 것이 무리라는 한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여권의 반발을 의식한 절충적인 결과라는 측면이 강해 보인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10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최재형 감사원장이 10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여당, 인사청문회 땐 최 감사원장에 “미담 제조기” 칭송

감사원으로서는 이 정도 결과를 내는 것만도 힘겨워 보였다. 국회 국정감사 답변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은 “조사자와 피조사자 사이에 높은 긴장관계가 형성됐다”면서 “감사원장이 되고서 이렇게 저항이 심한 감사는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최 원장은 “자료 삭제는 물론이고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산업부 공무원들이 관계 자료를 모두 삭제해 복구에 시간이 걸렸다”고도 했다.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에 대해 법적 처벌의 두려움도 없이 그런 식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이번 감사에 대한 정부 부처의 반감을 읽게 해 주는 대목이다.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해 감사원이 깊숙이 따지고 드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공무원들의 저항과 비협조보다도 심각했던 것은 정치권으로부터의 외압과 간섭이었다. 감사원의 감사가 여야 정치권의 간섭을 받고 그들을 의식한 타협을 한다면 제 소임을 다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감사 과정은 정치적 외압과 시비로 얼룩지고 말았다.

특히 여권의 외압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감사 자체를 흔들어놓곤 했다. 월성1호기 감사가 문재인 정부의 상징적인 정책과 관련된 감사라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갖는 민감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재형 감사원’을 공격하는 모습은 감사원조차도 편가르기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이었다. 대통령 소속이니 우리 편이어야 할 감사원이 어째서 우리 편을 어렵게 만들려 하고 있느냐는 여권의 시선이 감사원을 향했다.

이번 감사로 최재형 감사원장은 ‘제2의 윤석열’이 되다시피 했다. 최 원장의 인사청문회 때 민주당 의원들은 ‘미담 제조기’라는 말까지 하며 흠잡을 데 없다고 그를 칭송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임명장을 주면서 “스스로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 오셨기 때문에 감사원장으로 아주 적격인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최재형 감사원’이 “월성1호기 폐쇄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여권의 태도는 돌변했다.

국회 법사위가 열렸을 때 여당 의원들은 책상을 내리치고 호통을 치며 사퇴하라고 최 원장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어떤 의원들은 최 원장 친인척의 정치적 성향까지 문제 삼으며 탄핵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엄호하다가, 이제 와서는 의혹투성이 집안으로 몰아가고 있는 여권의 모습과 닮은꼴이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10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10월15일 감사원에 대한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마피아에 빗댄 청와대가 원전 감사에 압박을 가하는 그림’을 최 감사원장이 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검찰과 감사원 독립성 강화 오히려 퇴행적

이번 월성1호기 감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감사원의 독립성을 흔드는 움직임에 부딪혔다.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한 의결이 늦어져 당초 일정보다 8개월 늦게 발표된 것도 감사가 정치적 시빗거리가 된 탓이 컸다. 특히 여권의 외압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광경을 낳았고, 그 결과 가장 중요한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에 관한 판단이 빠지면서 ‘반쪽 감사’에 그치고 말았다. 어느 여당 의원은 국회에서 “대통령 국정운영 철학과 맞지 않으면 감사원장을 사퇴하라”고 최 원장을 압박했지만, 감사원은 대통령 국정운영 철학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와 공무원의 직무에 대한 감찰을 역할로 하는 기관이다. 

헌법 규정에 따라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이기는 하지만, 업무에서의 독립적인 지위를 법률로 보장받고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놓고 여야는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은 “통상적인 감사에 불과한 이번 감사를 마치 에너지 전환정책의 심판대인 양 논란을 키운 국민의힘과 감사원에 유감을 표한다”며 야당과 감사원을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결국 탈원전은 허황된 꿈이었음이 증명됐다”며 “감사원의 정당한 감사를 방해한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한다”고 청와대와 여당을 겨냥했다.

감사원의 감사가 정쟁거리가 되고 정치권의 간섭과 외압을 받는다면 감사원은 독립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여야는 정쟁을 넘어 감사원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을 보여야 마땅하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감사는 끝났지만, 최 원장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공석 중인 감사원 감사위원 인선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청와대는 진작부터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추천했지만, 최 원장은 감사위원 중립성 등을 이유로 임명 제청을 하지 않아 갈등이 계속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최 원장에 대한 여권의 반감이 더욱 강해지기도 했다. 이 또한 감사원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일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감사원과 검찰의 독립성 강화를 국정 개혁의 주요 과제로 인식하는 합의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어느 순간부터 그 합의가 무효화되고 있다. 어디까지나 청와대나 정부에 소속된 기관인데, ‘우리 편’을 들지 않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대응이 공공연하게 생겨났다. 그래서 검찰 개혁이 검찰 장악이 돼버렸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고, 최 감사원장이 ‘제2의 윤석열’이 되었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우리가 검찰이나 감사원의 독립성 강화를 사회적 과제로 인식했던 것은 특정 정권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그런 기관들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부패와 비리를 막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촛불 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기관들의 독립성을 공공연히 훼손하려 들고, 그에 거역하면 내치려는 퇴행적 광경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검찰총장이, 다른 쪽에서는 감사원장이, 우리 편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질게 당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었던 ‘촛불 이후’의 광경들은 아니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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