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게이트’는 이미 3월말부터 불거졌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0.30 11:00
  • 호수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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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라임 사태 7개월’ 추적기... 3월말 김봉현 측 통해 유명 인사들 이름 전해 들어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 사태가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 법·검(法·檢) 대결, 여야 대결이라는 정치적 쟁점으로 치닫고 있다. 그 기폭제는 10월8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이강세 전 광주MBC 사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폭로하면서부터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말 수원여객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도피 행각을 벌이다 지난 4월24일 붙잡혔다. 이후 이 사태는 김 전 회장이 내부 직원과 짜고 회사 자금을 빼냈으며 이와 동시에 재향군인회 산하 상조회사를 불법적으로 인수하는 등 전형적인 금융사기 사건으로 결론이 나는 듯했다.

그러나 10월8일 김 전 회장이 작심한 듯 강 전 수석의 금품 수뢰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게이트(권력형 비리 사건)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더니 10월16일과 21일 두 차례 “야당 정치인 로비와 검사 접대 진술도 했는데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옥중 편지가 공개되면서 여야 정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이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시키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새롭게 수사팀을 구성하며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사실 이번 사태의 게이트화 가능성을 전망한 것은 지난 3월23일 시사저널 보도([단독] ‘라임 사태’ 주범 지목된 김 회장 “진짜 몸통은 따로 있다”)가 처음이었다. 이후 시사저널은 1594호(5월1일 발매) 커버스토리로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치닫는 ‘라임 게이트’’를 다뤘다. 시사저널은 최근 김 전 회장이 옥중 편지 등을 통해 정치권과 검찰을 향한 추가 폭로를 연이어 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지난 3월부터 라임 사태와 김 전 회장 측을 계속 취재해 왔던 그간의 내용들을 가감없이 공개키로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추미애 법무부 장관(사진은 왼쪽부터)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김봉현-이강세 갈등이 이전투구로 이어져”

3월까지만 해도 대다수 언론이 라임 사태를 이종필 라임 부사장(구속) 등 금융 인사들이 김 전 회장과 공모한 금융사기극으로 봤다. 김 전 회장을 지칭하는 ‘라임의 숨은 전주’라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보도된 것은 SBS가 한 투자자와 장아무개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의 대화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다. 이후 김 전 회장은 라임을 뒤에서 움직인 거대한 손으로 묘사됐다.

시사저널이 김 전 회장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3월20일 박아무개 전 재향군인회 상조회 부사장을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도피 중인 김 전 회장의 대리인 격이었던 박 전 부사장은 시사저널에 “김 전 회장은 자신이 ‘라임 전주’라고 보도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억울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부사장의 메시지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김 전 회장과의 직접 연락을 요구했다. 이에 박 전 부사장은 “나도 김 전 회장과 지금 직접 연결되는 게 아니다. 인수 작업에 참여한 ‘팀’이 함께 쓰는 이메일이 있는데 그곳을 통해 자료를 전달받는다”고 말했다. 당시 도피 행각을 벌이며 숨어 있던 김 전 회장이 자신의 모습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짐작됐다.

당시 정황은 10월2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이상호 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 재판에서도 일부 드러났다.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전 수원여객 재무이사 김아무개씨는 “올해 3월말 김봉현씨가 언론 보도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과정에서 이상호 위원장 자료를 제보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언론인 출신인 박 전 부사장은 재향군인회 상조회 자금 횡령에 가담한 혐의로 현재 구속된 상태다. 김 전 회장도 2차 옥중 편지를 통해 “박○○ 부사장은 근무경력이 한 달 정도이고, 회사 자금이 움직이는 이유와 자금 사용에 관여된 사실이 없었음에도 구속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전 회장은 왜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 흘린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처음 취재 때부터 계속됐다. 이에 대해 박 전 부사장은 “이강세(전 광주MBC 사장·구속)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김 전 회장은 같은 고향(광주) 출신인 이 전 사장을 10년 넘게 극진히 모셨다. 이 전 사장이 서울에 올라오면 어김없이 특급호텔을 숙소로 잡아줬으며, 이 전 사장이 광주MBC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서울 잠실의 전셋집과 자가용을 제공했다. 또 지난해에는 스타모빌리티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김 전 회장이 수원여객 공금을 횡령하고 도주한 뒤부터다. 제보자 박 전 부사장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SBS에 장아무개 전 대신증권 센터장 육성이나, 이상호 위원장에게 20억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 또 김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각종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내용 등을 언론에 흘린 당사자로 이 전 사장을 의심했다. 그러면서 “실제 모든 유명 인사 로비는 이강세를 통해 이뤄졌다”고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0월19일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봉현 “모든 로비는 이강세 작품” 주장

당시 박 전 부사장이 밝힌 유명 인사의 면면은 충격적이었다. 두 차례 만남에서 그는 “지난해 8월경 이강세·김봉현·이종필 이렇게 3명이 정무위 소속 여당 모 국회의원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찾아갔으며, 강기정 전 수석을 만나 금품을 전달한 것은 모두 이강세 전 사장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당시 공개된 또 하나의 사실은 이 전 사장이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한국경제신문 부국장급 데스크와 취재기자에게 접근, 돈을 줘 보도를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10월8일 열린 이 전 사장 재판에 참석해서도 이 같은 주장을 폈다.

이상호 위원장에게 향응을 제공한 사실도 밝혔다. 그러면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준 인물로 김갑수 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을 지목했다. 아울러 제보 당시 그가 SK텔레콤 소속 대관(對官) 담당 고문이라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SK텔레콤은 관련 취재에 들어가자 곧장 김 전 부대변인을 고문직에서 해촉했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을 소개받는 과정에도 이 전 사장이 개입돼 있다고 박 전 부사장은 말했다. 당시 시사저널은 3월23일 보도에서 이런 주장들을 소개하면서 해당 인물들의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의 일방적 주장만을 근거로 보도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이 밝힌 인물들은 이후 언론 보도들을 통해 속속 공개되고 있다. 단, 이상호 위원장은 본인을 통해 직접 해당 사실을 확인했고, 그 또한 일부 내용을 인정했기에 그와의 대화 내용은 인터뷰 기사로 보도했다. 현재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된 이 위원장은 재판에서 당시 시사저널 보도와 비슷한 내용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다. 당시 김 전 회장 측이 공개한 자료에는 이 밖에도 수원여객 대주주였던 스트라이커캐피탈과 관련된 의혹도 담겨 있었다.

수원지검 두 차례 영장 반려, 왜?

최근 옥중 편지를 통해 김 전 회장은 여전히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라임 펀드 관련 그 어떤 운영 주체로 관여한 사실이 없고 (내가) 라임 전주라는 것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당시 박 전 부사장 역시 “김 전 회장은 처분 과정에서 라임이 내놓은 회사를 싸게 살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김 전 회장은 옥중 편지를 통해 자신이 검찰을 상대로 각종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7월경 자신의 변호사인 A씨와 검사 3명에게 술접대를 했다는 것이다. 이후 김 전 회장을 놓고 법무부와 검찰, 여당과 야당이 서로 자기 쪽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모습이다. 김 전 회장의 행각을 추적하던 시사저널은 그가 측근의 제보로 지난해 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역수사대에 검거됐는데, 경찰이 재대로 수사하지 않고 풀어줬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옥중 편지에서 A변호사로 지칭된 이주형 변호사다. 그는 시사저널에 “검거된 사실이 없다. 당시만 해도 경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었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횡령한 공금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수사팀에 최대한 선처를 요청할 생각이었는데, 이에 응하지 않고 도주해 사임계를 냈다”고 밝혔다. 경찰 역시 “지난해 8월 첫 영장이 청구되기 전까지 총 3회 조사했다. 긴급체포할 대상은 아니었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이번 옥중 편지에서 공개된 사실은 김 전 회장이 영장 발부 기각을 목적으로 윤대진 당시 수원지검장(현 사법연수원 부원장)에게 청탁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에 대해 윤 부원장은 “김봉현이라는 이름도 못 들어봤다”고 강력 부인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김 전 회장을 총 세 차례 조사한 경찰은 지난해 8월27일 수원지검을 통해 첫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강수사를 이유로 영장을 두 차례 돌려보냈다. 그 결과 지난해 말에야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며, 김 전 회장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도주했다.

김 전 회장이 검찰 수사의 불공정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은 자신을 옭아맨 라임 사태 주범이라는 프레임을 깨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주범(主犯)이 아닌 종범(從犯)으로 가야 형량을 최대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라임 피해액이 수조원에 달하는 만큼 지금 분위기라면 최소 15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여전히 “나는 주범이 아니다. 나는 설거지만 했다. 진짜 전주는 따로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 자신이 생각하는 라임 사태 주범을 살짝 흘린 것도 이러한 포석의 일환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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