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건희] ‘재계 구심점’ 최태원·리더십 탄력 받은 구광모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11.02 10:00
  • 호수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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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타계로 재계가 본격적인 3·4세 총수 시대에 진입했다. 이재용 부회장 등 새로운 리더들은 선대의 공과(功過)를 딛고 어떻게 경영을 해나갈 지, 재벌 체제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 경제는 어디로 향할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대 그룹 총수 중 명실상부한 ‘맏형’이 됐다. 총수로서의 경력도 압도적으로 길다. 아버지 고(故) 최종현 회장에 이어 1998년 회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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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로 최 회장을 중심으로 한 국내 주요 기업 3·4세대 총수들의 연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당시 총괄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은 지난 9월초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이들은 식사를 겸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재계 여러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까지 포함해 5대 그룹 총수들은 사석에서 종종 만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의 재계 구심점 역할은 그룹 경영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최 회장은 2012년 당시 모두가 반대했던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그리고 신약 사업에도 계속 힘을 기울였다. 이 결정들이 지금의 SK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3년 선경직물이라는 작은 섬유업체였던 SK는 이제 에너지화학, 바이오, 정보통신, 물류, 금융, 반도체 등을 망라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됐다. 업종 하나하나의 경쟁력도 뛰어나다. 

7월2일 SK바이오팜 상장 기념식에는 미국 유학 중인 최태원 회장의 장녀 윤정씨(31)가 참석했다. 윤정씨는 SK바이오팜 책임매니저로 일하다 지난해 휴직한 후 미 스탠퍼드대에서 바이오인포매틱스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차녀 민정씨(29)는 지난해 SK하이닉스에 대리급으로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최근엔 장남인 인근씨(25)도 SK E&S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최 회장이 향후 누구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줄지에 벌써부터 눈과 귀가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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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LG그룹 회장 ⓒ연합뉴스

2018년 6월 취임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경영 성적은 지난해까지 신통치 못했다. LG의 매출액은 2018년 126조4750억원에서 2019년 122조2380억원으로 떨어졌다. 당기순이익도 2018년 3조4100억원이었다가 2019년엔 87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주력인 전자산업의 역성장 국면도 LG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정부의 ICT 주요 품목 동향 조사를 바탕으로 8월13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생산·내수·수출이 모두 전년보다 감소하고 수입만 증가했다. 미·중 분쟁, 한·일 갈등, 글로벌 수요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다행히 LG 계열사들이 최근 호실적을 내며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LG전자와 LG화학은 올해 3분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분기 최대를 기록했다.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보조금 지급 등에 힘입은 ‘펜트업(pent up·억눌린)’ 수요와 ‘집콕’ 증가에 따라 생활가전, TV 판매가 늘어나며 LG전자 실적을 견인했다. 올해 말 전지(배터리) 부문 분사를 앞둔 LG화학에도 코로나19 위기가 기회로 작용했다. 가전·자동차 내장재로 쓰이는 고부가합성수지(ABS)와 폴리염화비닐(PVC), NB라텍스 등의 수요가 증가한 반면 원료 가격은 하락해 수익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 

이런 가운데 구 회장이 제시한 실용주의·고객가치·미래준비 등 3대 경영 비전은 힘을 얻고 있다. 주력·성장 사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LG는 10월19일부터 약 한 달간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사업보고회를 진행한다. LG는 지난해까지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사업보고회를 했다. 올해 이후 사업보고회는 하반기에 한 차례만 하기로 했다. 실용을 중시하는 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반영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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