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시그니엘 부산호텔 추락사고 가족 “대응 메뉴얼 없는 人災”
  • 박비주안 영남본부 기자 (sisa517@sisajournal.com)
  • 승인 2020.11.0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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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가족 “무리한 작업 지시, 사과와 반성없다”
롯데 시그니엘 부산호텔 측 “사실과 다른 부분 많다”
10월 30일 추락사고가 발생했던 시그니엘 부산호텔 당시 상황 ⓒ 부산경찰청
10월 30일 추락사고가 발생했던 시그니엘 부산호텔 당시 현장 모습. ⓒ 부산경찰청

지난 10월 30일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롯데 시그니엘 부산호텔 연회장에서 현수막을 설치하던 작업자가 사다리차에서 추락했다. 사고 이후 피해자의 친형이 직접 국민청원 게시판에 '호텔 측의 처벌을 위해 조사가 필요하니 국민들에게 도와달라'는 청원글을 올리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본인을 하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라고 소개한 피해자의 친형 A씨는 “내 동생은 직원 6명의 작은 현수막 디자인 제작 업체에서 광고 현수막이나 판촉물을 설치하는 일을 한다”면서 “최근 오픈한 해운대 엘시티 내 롯데 시그니엘 부산호텔은 거래처 중 하나였다”고 했다.

A씨에 주장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지난 10월 30일 오후 3시쯤부터 롯데 시그니엘 부산호텔 4층 그랜드볼룸 연회장에 가로 7m, 세로 5m의 대형 현수막 설치작업이 시작됐다. 3시 10분쯤 호텔에서 제공한 리프트로 대형 현수막을 벽에 부착하는 고공 작업 중 리프트가 통째로 옆으로 넘어졌다. 당시 작업자가 있던 곳의 높이는 6m. 추락 직후 뇌손상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119 구급대가 도착했고, 추락한 작업자는 해운대 백병원으로 이송됐다가 다음날 부산대학교병원 외상센터로 전원됐다.  

A씨는 “사고 직후 119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호텔에 안전을 책임지는 관계자나 직원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면서 “겨우 지나가던 보안요원을 붙잡아 같이 처치를 했다고 들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호텔 측의 즉각적인 안전사고 구호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뇌출혈 및 뇌손상은 처치 시간이 늦어질수록 사망률이 급격히 상승한다. 롯데 측의 사고 대응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인재였다는 주장이다. 병원 입원 이후에도 롯데 측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을 향한 사과와 반성의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사고 원인을 ‘리프트’라고 지목했다. 현수막 고공 설치를 위해 호텔에서 일인용 Ganie 리프트를 이용했는데, 피해자가 리프트 위에서 작업을 하고 그의 동료가 아래에서 리프트를 받치는 형태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대형 현수막 설치 작업은 양측에서 현수막을 잡고 동시에 부착해야 안전한 설치가 가능하다”면서 “이런 용도에 맞지 않는 리프트로 2명이 작업을 하라고 하는 것은 이미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작업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롯데 시그니엘 부산호텔 관계자는 A씨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면서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호텔은 직접적인 계약자가 아닌 대관을 해 준 장소에 불과해 작업의 오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현수막 규격에 맞지 않는 ‘대형 통천’이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연회장의 정면에는 규격에 맞는 현수막 전동바텐(전동 현수막 걸이) 이 설치돼 있어 굳이 작업자가 고공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당일 대형 통천으로 현수막을 변경해 와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설치작업을 하다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사(롯데 시그니엘 부산호텔)가 제공한 리프트는 현재 다른 호텔들이 모두 사용하는 리프트”라면서 “자체 CCTV 확인을 했을 때 리프트를 옮길 때마다 안전지지대(아웃트리거)를 재설치 해야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됐던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사건 직후 병원 이송과 관련해서도 “호텔 직원이 자차로 환자 이송차량을 따라 갔고 부산대병원으로 전원 이후에도 병원에 직원이 상주하며 환자의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면서 “다만 피해자의 가족이 연락을 거부하고 있어 사과의 말은 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롯데 시그니엘 부산호텔 관계자의 주장에 A씨는 즉각 반발했다. A씨는 “롯데 측은 저희한테 한번도 연락 온 적이 없다”면서 “11월 5일 하청업체를 통해 만날 날짜를 잡아달라고 전달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해운대 백병원까지 동행을 했고 부산대병원까지 찾아왔다면 상식적으로 피해자 가족에게 직접 연락을 해야 맞는 것이지 피해자 가족이 롯데 직원을 찾아야 하나”면서 “피해자 가족과 접촉없이 피해자의 상태를 알아보고 있다는 것은 하청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받고 있다는 뜻이지 않느냐”고 성토했다. 

A씨는 “현수막의 크기 문제를 논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면서 “주최측과 호텔측은 상호 협의 하에 연회를 진행했을텐데 규격 현수막이 아니라 대형 통천 현수막으로 변경했다는 이유로 안전장치가 없는 측면작업을 하게 두었다는 것 또한 변명이다”고 지적했다. 

A씨는 이어 “우리는 어려운 형편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형제”라면서 “내가 조금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동생은 아낌없는 희생을 했고, 내가 결혼 후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 일에 소홀했을 때도 동생은 은퇴한 부모님을 모시면서 발달장애가 있는 내 아들에게 아빠 노릇을 대신하던 착한 청년”고 했다. 

한편 롯데 시그니엘 부산호텔 작업자 추락사고에 국민의힘 부산시당은 11월 5일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제 2의 김용균 사건’으로 규정했다. 국민의힘은 “부실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불러낸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며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이 사건을 엄정히 조사해 진상을 명확히 밝혀주고,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위험작업에 대한 현장 관리감독과 매뉴얼 준수 여부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해자는 현재 다발성 두개골 골절, 뇌출혈, 뇌손상, 뇌부종 등으로 인공호흡기 치료 중이다. 게다가 폐렴에 산소 농도 감소 등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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