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파기환송심’서 자리 박차고 나간 특검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0.11.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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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준법감시 평가’ 전문위원에 강일원·홍순탁·김경수 확정
법정서 신경전 벌이며 언성 높아져…이 부회장은 묵묵부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개월 만에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특검과 재판부가 또 다시 충돌했다. 갈등을 빚어 온 전문심리위원 선정은 양측이 추천한 인사가 모두 포함돼 변동없이 확정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9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의 첫 정식 공판을 열었다. 특검의 재판부 기피신청으로 중단됐던 이번 재판은 지난 1월17일 이후 처음 열리는 것으로, 이 부회장은 10개월 만에 법정에 출석했다. 

재판부는 이날 특검이 추천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인 홍순탁 회계사와 이 부회장 측이 추천한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모두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했다. 전문심리위원제도는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을 심리할 때 당사자 신청이나 재판부 직권으로 전문가를 소송절차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다. 

재판부가 지정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과 더불어 홍 회계사와 김 변호사 등 3명은 앞으로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성 있게 운영되는지를 평가하게 된다.  

이날 재판은 특검이 전문심리위원 지정을 둘러싼 법원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잠시 휴정됐다 재개되는 등 양측의 팽팽한 기싸움 속에 전개됐다. 앞서 이 부회장 측은 홍 회계사가 참여연대 소속으로 삼성 합병 등에 이미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객관적인 판단을 받기 어렵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특검 측도 김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이 삼성 관련 여러 사건을 맡고 있다며 전문심리위원으로는 부적절하다고 반발했다. 

재판부가 이날 전문심리위원 지정을 확정하며 구두진술을 허용하지 않자 특검은 "재판부는 당사자의 의견 진술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며 "취소신청까지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취소신청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언성을 높였다. 이에 재판부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반대의견을 서면으로 상세히 검토해봤고, 지난주 금요일 후보들과 면담도 했다"며 "전문심리위원은 재판부의 보조기관으로 법원의 직권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특검은 "김 변호사가 팀장으로 있는 기업 형사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사건에 연루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변호인으로 참여해왔다"며 "피고인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피의사실을 공표한다"며 반발했다. 

재판부는 "다른 사건의 수사내용, 공소사실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전문심리위원 지정에 특검이나 변호인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이후에도 이복현 부장검사는 재판부를 향해 "왜 말을 끊냐"고 따지는 등 언성을 높였고, 급기야 이 부장검사가 재판 도중 자리를 떠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법정 분위기가 과열되자 재판부는 잠시 휴정을 가진 후 다시 재판을 이어갔다. 특검은 구두변론 기회를 얻어 "본의 아니게 언성이 높아진 것에 대해 재판장께 유감을 표명한다"면서도 거듭 전문심리위원 지정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이날 오후 이건희 회장 사망 후 첫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부회장은 '재판을 앞둔 심경이 어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채 법정으로 향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삼성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고 청탁하며, 그 대가로 총 298억여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 혐의 일부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유죄 인정 액수를 대폭 줄여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말 구입액 등 34억원 등 일부를 뇌물로 봐야한다며 지난해 8월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파기환송심을 맡은 정준영 부장판사는 미국의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하며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면 이를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특검팀은 지난 2월 재판부의 '재벌 봐주기' 시도를 꼬집으며 정 부장판사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되면서 재판 절차가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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