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반기 든 ‘IT 거물’에 채찍 휘두른 시진핑
  • 모종혁 중국 통신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6 11:00
  • 호수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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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핀테크 금융사 앤트그룹 상장 과정에서 금융 당국 비판
중국 당국, 앤트그룹 IPO 전격 중단

2013년 11월11일 중국에서 지상 최대의 쇼핑 축제가 열렸다. 해마다 이날 온라인쇼핑몰을 중심으로 거행되는 ‘쌍11(雙十一)’이 그것이다. 정각 0시가 되자 타오바오(淘寶), 톈마오(天猫·Tmall), 징둥(京東) 등 모든 오픈마켓은 먹거리와 의류부터 각종 여행상품까지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내놓았다. 특히 올해는 80만 채에 달하는 주택도 상품으로 쏟아졌다.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한 채당 최대 100만 위안(약 1억6900만원)까지 할인해 줬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시장이 크게 위축된 해외 명품 브랜드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중국 고객을 겨냥해 이벤트 상품을 내놓았다.

행사가 시작되자 초당 58만 건이 넘는 상품이 팔려 나갔다.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11월1일부터 3일까지 예비 판매 기간이었다. 쇼핑 축제가 하루에서 나흘로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나흘 동안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이 타오바오, 톈마오, 페이주(肥猪)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올린 거래액은 4982억 위안(약 84조313억원)이었다. 다만 자동차, 주택 등 액수가 큰 상품의 판매액은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징둥의 거래액은 2715억 위안(약 45조7884억원)이었다.

2018년 9월1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마윈 알리바바그룹 창업자 겸 집행위원장 ⓒEPA 연합

공룡 IT기업에 칼 빼든 시진핑

이튿날인 11월12일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 알리바바 본사의 프레스센터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는 쌍11에 거둔 각종 기록이 표시됐다. 류보(劉博) 알리바바 부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는 코로나19로 많은 중국인이 해외에 나가지 못했다”면서 “그로 인해 온라인 소비가 촉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예년보다 훨씬 풍성한 거래 기록을 세웠지만 기자회견에 임하는 알리바바 임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쌍11에 홍콩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의 주가가 9.8%나 폭락했기 때문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알리바바 주가도 8.1% 급락했다.

이처럼 거래 실적과 다르게 주가가 폭락한 이유는 11월10일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온라인 플랫폼경제 반독점지침’ 초안을 내놓은 데서 비롯됐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우리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한다. ‘반독점지침’은 중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알리바바, 텐센트(騰訊) 등 대형 IT기업에 대한 규제를 담고 있다. 이들이 고객 및 협력업체와의 거래 정보를 바탕으로 소비자와 협력사의 약점을 찾아 거래 및 계약 조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은 자체 개발한 빅테이터와 알고리즘을 적극 이용해 왔다.

이에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정부가 대형 IT기업을 상대로 고삐를 죄겠다는 신호를 발신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보는 우려는 더 심각했다. 중국 정부가 거대한 자국 시장을 발판으로 몸집을 키워온 공룡 IT기업에 대해 본격적인 규제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 시작은 10월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馬雲)이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外灘) 금융 서밋 기조연설에서 중국 금융 당국을 정면 비판했다. 마윈은 “좋은 혁신가들은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뒤떨어진 감독은 두려워한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미래의 시합은 혁신의 시합이어야지 감독 당국의 규제 경연 시합이 돼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날 와이탄 금융 서밋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오른팔인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 이강(易綱) 인민은행장 등 최고위급 지도자가 대거 참석했다.

왕 부주석은 앞선 기조연설에서 “안전성·유동성·효율성이라는 3대 금융업의 원칙 중 안전은 영원히 앞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시 주석이 금융정책의 기조로 내세우는 위험 방지를 최우선에 두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마윈은 지도자들 면전에서 정부의 보수적인 금융 감독 정책을 성토했다.

이런 마윈의 발언은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10월말 포브스 차이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마윈은 656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중국 최고 부호다. 알리바바 창립 20주년이었던 지난해 회장 자리에서 내려와 활발한 공익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로 인해 중국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게다가 마윈이 창업한 알리바바 산하의 핀테크 금융회사 앤트(Ant·蟻)그룹이 홍콩과 상하이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마윈이 앤트 상장 과정에서 겪은 금융 감독 당국의 각종 규제에 대한 불만을 작심하고 표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앤트는 중국 최대의 제3자 지불 서비스 알리페이(支付寶), 인터넷은행 왕상(網商)은행, 온라인 펀드 위어바오(餘額寶) 등을 거느리고 있다. 중국은 신용카드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제3자 결제 시스템으로 직행한 나라다. 이런 지불 서비스를 뿌리내린 선구자가 알리페이였다. 왕상은행은 중국에서 인터넷은행 중 예금 수신액이 가장 많고 소액대출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위어바오는 자투리 돈까지 취급해 6억여 명의 가입자와 2000억 달러가 넘는 운용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앤트의 기업공개(IPO) 소식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몰려들었다.

홍콩에서 공모주 청약을 신청한 개인투자자는 155만 명이었다. 이들이 납입한 청약증거금은 무려 1조3100억 홍콩달러(약 186조원)에 달했다. 홍콩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중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개인투자자 515만여 명이 2769억 주를 사겠다고 신청했다. 당초 인터넷 배정 물량은 상하이 증시에 발행될 전체 지분의 18.2%인 3억5100만 주였다. 따라서 청약 경쟁률이 무려 870대 1에 달했다. 이 같은 공모주 청약 열기 덕분에 앤트그룹은 홍콩과 상하이에 동시 상장해 세계 최대 규모인 34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지급결제 플랫폼인 알리페이의 모회사 앤트그룹 ⓒEPA 연합

혁신가의 쓴소리에 몽둥이로 화답

그러나 11월2일 중국 금융 당국은 마윈, 앤트그룹 회장과 CEO(최고경영자)를 불러 예약 면담(約談)을 진행했다. 예약 면담은 정부기관이 특정 사안의 관계자를 호출해 지적하고 정부 방침을 학습시키는 제도다. 따라서 대상자를 거세게 비판해 군기를 확실히 잡는다. 중국 정부의 보복은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3일에는 5일로 예정됐던 앤트그룹의 IPO를 전격 중단시켰다. 성공한 혁신가의 쓴소리에 중국 정부가 규제의 몽둥이로 화답한 것이다. 더욱이 17일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앤트그룹의 상장과 관련한 시간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 향후 증시 상장 여부마저 불투명해졌다.

앤트그룹의 IPO가 무산된 이후 며칠 동안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그런데 11월12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앤트의 증시 상장 중단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내린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시 주석이 마윈의 연설 내용을 보고받은 후 금융 당국 책임자들에게 조사를 지시하고 IPO까지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11월10일 내놓은 ‘반독점지침’은 그 후속 조치로, 마윈을 겨냥한 중국 정부의 뒤끝은 계속 이어졌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민간업체의 증시 상장조차 법과 제도가 아닌 인치(人治)에 좌우되는 중국의 민낯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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