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연아’ 유영, 김연아와의 차이는 ‘심장 크기’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8 11: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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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은 김연아 못지않다고 평가받지만 결정적 장면에서 넘어지는 실수 자주 범해

유영은 ‘피겨 여왕’ 김연아의 뒤를 이어 세계 무대를 제패할 수 있을까. 그는 불과 11세 때 국내 정상에 오르는 등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제2의 김연아’로 인정받았다. 유영은 김연아 이후 한국 여자피겨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거나 심지어 김연아의 기록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연기 도중 넘어지는 실수가 잦아지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의 김연아’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습

유영의 거의 모든 기록에는 항상 ‘김연아 이후’라는 단서가 붙는다. 유영은 김연아 이후 ‘2019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은메달을 땄고, 그 대회에서 223.23점을 얻어 김연아 이후 총점 220점을 넘긴 최초의 한국 선수가 되었다. 2018 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국내 대회에서 200점을 돌파(204.68)하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유영은 2019 챌린저 시리즈 US인터내셔널 클래식 프리스케이팅에서 141.25점을 받아 김연아 이후 프리스케이팅에서 140점을 넘긴 최초의 국내 선수가 되었다. 이렇듯 유영은 김연아 이후 최초의 기록을 세워나가면서 ‘제2의 김연아’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김연아가 하지 못했던 것을 해내기도 했다. 2016년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만 11세7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해 종전 김연아(2003년, 12세6개월)의 기록을 깨트렸고, 2019 스케이트 캐나다에서는 만 15세5개월 만에 시니어 무대에 데뷔해 역시 김연아(16세3개월)의 기록을 경신했다. 유영은 김연아의 라이벌이었던 일본 아사다 마오의 주무기인 트리플 악셀을 한국 선수로선  최초(세계에서 11번째)로 ISU 공식 경기에서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유영의 치명적인 단점은 결정적인 순간에 넘어지는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여자피겨 싱글은 한 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약 3분)과 프리스케이팅(약 4분) 등을 합쳐 약 7분 동안 연기를 펼치는데, 연기 도중 한 번이라도 넘어지면 좋은 성적을 올리기 어렵다. 두 번 이상 넘어지면 사실상 메달권에서 멀어진다. 대표적인 대회가 여자피겨에 관한 한 ‘이변의 올림픽’으로 불리고 있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이었다.

당시 쇼트프로그램은 사샤 코헨(미국)과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가 1·2위를 기록했고, 25세 ‘노장’ 아라카와 시즈카(일본)는 3위에 그쳤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서 샤샤 코헨은 첫 번째 트리플 루프 시도에서 엉덩방아를 찧었고, 트리플 플립에서도 빙판에 손을 짚는 등 실수를 연발하며 116.63점에 그쳐, 총점 183.36점밖에 받지 못했다. 슬루츠카야도 트리플 루프를 시도하다 엉덩방아를 찧었고 1점 감점을 받으면서 총점 181.44점으로 샤샤 코헨에게도 밀렸다. 그러나 아라카와는 ‘트리플-트리플’ 대신 ‘트리플-더블’ 콤비네이션으로 낮춰 안전한 연기를 펼쳤다. 실수가 없었던 아라카와는 프리스케이팅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여자피겨 사상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유영은 11월27~28일 일본에서 벌어진 2020~21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6차 대회 ‘NHK 트로피’에서 종합 7위의 성적을 올렸다. 언뜻 보면 국제대회 성적으로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개최국 일본 선수 11명과 한국의 유영 등 12명만 출전한 대회였다. 거기서 유영은 첫날 쇼트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다가 넘어지는 등 두 번이나 빙판을 구르면서 최하위인 12위(55.56점)에 머물렀다. 이튿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는 등 126.17점으로 5위를 기록하며 전날의 실수를 만회해, 총점 181.73점으로 7위까지 끌어올렸다.

ⓒ연합뉴스

유영의 과제는 심리적인 안정…스포츠 심리학자와 훈련해야

유영은 2016 종합선수권대회 때 11세의 나이로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2017년 종합선수권대회(5위)에서만 실패했을 뿐, 2018~20년 대회까지 3연패를 하는 등 국내에선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2017년 대회에서 5위(58.71)에 그친 것은 쇼트프로그램에서 두 번이나 넘어져 6명 가운데 최하위인 6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프리스케이팅에서 클린(122.17점)에 성공, 2위를 차지하면서 종합 5위에 오른 것이다.

유영은 2018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2번이나 넘어져 9위에 그쳤고, 2019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도 넘어져 11위로 처진 끝에 종합 6위로 대회를 마감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9일 중국에서 벌어진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도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다가 잇따라 넘어지는 바람에 4위(191.81점)에 그쳐 최종적으로 세계 6강이 겨루는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피겨선수가 연기 도중 넘어지는 것은 기술이 완성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연아에게서 그런 실수가 거의 없었던 것은 그가 바로 강심장의 대표적인 선수였기 때문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피겨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먼저 연기한 아사다 마오가 무려 73.78점의 엄청난 점수를 올렸지만, 김연아는 “겨우 그 정도야”라는 듯이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모든 연기를 완벽하게 해내며 당시 세계신기록 78.50점을 기록했다. 김연아의 기세에 눌린 아사다 마오는 이튿날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131.72점에 머물렀고, 김연아는 무려 150.06점을 기록하며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총점에서 무려 23.06점이나 차이가 날 정도로 완벽한 우승이었다. 

  유영은 김연아의 장점으로 꼽히는 탄탄한 기본기와 뛰어난 표현력 그리고 높은 점프력을 고루 갖춘 데다 파워까지 장착해 이미 김연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와 함께 한때 ‘제2의 김연아’로 기대를 모았던 임은수·김예림·최다빈·박소연보다 현재 한발 앞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우승 경쟁을 펼칠 러시아의 안나 쉬체르코바, 알렉산드루 투루세바, 엘리자베타 툭타미세바와 미국의 머라이어 벨, 벨기에의 로에나 핸드릭스 그리고 일본의 사카모도 가오리, 마이 미하라 등에 견주어도 넘어지는 실수만 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모두 발휘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사다 마오처럼 심장이 작은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다. 아시아 여자선수로 최초로 4회전 점프(쿼드러플 더블)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어찌 보면 매 대회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자신의 기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위축되어 있던 국가대표 펜싱선수들이 스포츠 심리학자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스포츠 심리학자와 자주 만나 면담하는 것도 효과적인 훈련법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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