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카메라, 어디까지 들이댈 것인가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5 12: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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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과 부부의 性까지 담아내면서 논란도 커져

바야흐로 관찰카메라 전성시대다. 본래 해외의 리얼리티쇼가 우리 식의 ‘관찰카메라’로 불리게 된 것이지만, 최근의 관찰카메라들은 해외의 리얼리티쇼를 방불케 한다. 이혼은 물론이고 부부의 성까지 담아내기 시작한 관찰카메라.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진행 제의를 받고 MC인 김원희는 “와, 이거 너무 센 거 아냐?” 하고 놀랐다고 한다. 이런 건 할리우드에서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는 것. 김원희와 함께 MC를 맡은 신동엽 역시 이혼한 부부가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낸다는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들었을 때 “참 대단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드디어 선진국 반열에 올랐구나”라고 농담처럼 이 프로그램의 파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이혼했어요》는 과거 가상결혼을 소재로 했던 MBC 《우리 결혼했어요》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지만, 그 내용은 가상이 아닌 진짜 이혼 커플(?)이 등장하고 그들이 다시 만나 며칠간 함께 지내는 시간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해외에서 리얼리티쇼가 하나의 트렌드일 때도 그 콘셉트가 우리 정서에 맞지 않아 한참 우회하는 방식으로 ‘가상’과 ‘연예인’을 부여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면, 2020년의 《우리 이혼했어요》는 어느덧 진짜 이혼 커플의 실제 상황을 들여다보는, 할리우드에서나 할 수 있을 법하던 그 리얼리티쇼를 보여주고 있다. 

TV조선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TV조선

본래의 기획 의도 지워버려 

이렇듯 최근 관찰카메라들이 선을 넘고 있다. 그 진원지는 종편 채널이다. TV조선 《아내의 맛》이 부부 사이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아슬아슬한 수위로 보여주면서 시청률을 끌어올리자, 다른 종편 채널들도 이 대열에 뛰어들었다. 채널A의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는 아예 ‘19금’을 내걸고 내밀한 부부의 성담론을 노골적으로 꺼내놓았다. 부부가 함께 출연해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19금을 걸었으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제 부부의 침실까지 들여다보는 관찰카메라에 어떤 제동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JTBC 《1호가 될 순 없어》는 개그맨 부부들을 들여다보는 관찰카메라지만, 대놓고 과거 김학래의 외도와 도박 사실까지 끄집어내는 과감함(?)을 보이기도 했다. 

종편이 앞서서 어떤 선을 넘는 관찰카메라를 꺼내놓을 수 있었던 건, 이들 종편 채널이 지상파와는 다른 위치에 서 있다는 막연한 인식 때문이다. 보편적 시청층을 대하는 지상파에는 관찰카메라를 해도 어느 선을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인 틀이 존재했지만, 종편들은 그렇지 않다는 인식. 하지만 이런 선을 넘는 관찰카메라들이 종편에 점점 많이 등장하면 조만간 지상파도 그 대열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실제로 지상파에서도 최근 관찰카메라의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지상파는 해외의 리얼리티쇼를 도입하면서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는 그 불편한 지점을 상쇄하기 위해 몇 가지 장치들을 달았다. 관찰카메라라는 새로운 지칭을 달았고, 그 대상을 연예인 가족이나 아이들로 함으로써 가족이라는 코드를 활용했다. 또한 MBC 《나 혼자 산다》가 ‘1인 라이프’를 들여다보고 SBS 《미운 우리 새끼》가 어머니의 시점으로 나이 든 아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는 식의 취지를 내세워 연예인의 사생활을 관찰하는 이유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져 tvN 《온 앤 오프》의 경우 여러 가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이른바 ‘부캐의 시대’에 유명인들의 일과 일 바깥의 모습을 들여다본다는 취지로 관찰카메라가 세워지기도 했다. 

MBC 예능 《나혼자산다》의 한 장면 ⓒMBC

그러나 지상파들은 점점 관찰카메라가 대중에게 익숙해지자 이런 기획 의도들을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나 혼자 산다》는 1인 라이프를 들여다보기보다는 본격적인 연예인 관찰카메라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들끼리 커뮤니티의 일상 공개를 담아내기도 했다. 《미운 우리 새끼》 역시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아들을 바라보던 시점은 다양한 인물군이 그 사생활을 공개함으로써 이제는 그리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기능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나 혼자 산다》나 《미운 우리 새끼》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변질되었고, 심지어 기안84나 홍진영 같은 고정 출연자들과 관련한 논란이 생겨났을 때도 남다른 끈끈함을 보여주었다. 

이제 지상파든 비지상파든 관찰카메라는 훨씬 과감해졌다. 그래서 과거처럼 누군가의 사생활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에 머뭇거리지 않는다. 특정한 기획 의도를 내세워 에둘러 보여주는 일도 없다. 또한 그 대상도 아이부터 연인, 부부, 이혼 부부 심지어는 스님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최근 《온 앤 오프》에 출연해 논란이 벌어지고 결국 모든 활동에서 하차한 혜민 스님의 경우를 보면 이제 관찰카메라가 들이대지 못할 대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tvN 예능 《온앤오프》의한 장면 ⓒtvN

솔솔 피어오르는 설정 의혹들 

관찰카메라는 처음에는 낯설지만 대하다 보면 차츰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이 관찰카메라에 어떻게 편집되어 보이는가를 확인한 연예인들은 처음 그 관찰카메라 앞에 섰을 때와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임미숙이 남편 김학래의 과거 외도와 도박 사실을 털어놓을 때 그들은 이미 그것이 만들어낼 파장을 충분히 인지했을 게다. 그런 노이즈가 일단 《1호가 될 순 없어》에 대한 화제성을 만들어내고 나면 이들은 부부간에 벌어지는 일상의 갈등과 화해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논란을 풀어낸다. 

물론 아예 대본이 주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베테랑 방송인들이라면 특정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그걸 어떻게 받아치느냐가 어떤 웃음과 재미를 줄 것인지를 모를 리 없다. 팽락부부(팽현숙과 최양락)와 숙래부부(임미숙과 김학래)가 함께 모여 김장을 할 때, 농땡이를 치는 최양락과 김학래의 모습이 포착되고, 결국 팽현숙이 김치 양념을 최양락의 얼굴에 묻히는 장면이 연출된 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여지없이 이 장면은 ‘김치 싸대기’ 같은 자극적인 카피의 보도자료로 기사화된다. 즉 대본이 존재하지 않아도 관찰카메라에 익숙해지면 어떤 모습들이 어떻게 비칠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나오는 리얼 설정 상황극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관찰카메라는 이처럼 최근 방송의 일상적인 트렌드로 자리하면서 자극성도 강해지고 본래 기획 의도가 사라지기도 하며, 나아가 설정 의혹까지 생겨나는 상황을 맞이했다. 물론 관찰카메라의 일상화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한번 열리면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일이 된다. 그만큼 리얼리티가 주는 자극성은 ‘대본’과 ‘설정’의 인위성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찰카메라가 어떤 제동장치를 떼어버린 채 마구 선을 넘는 걸 좌시해도 될까. 일상이 되어 가는 관찰카메라를 이제는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이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해 주는 일은 우리네 방송이 맞이하게 된 새로운 숙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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