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가 세계를 홀렸다” 이날치 신드롬 폭발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8 14: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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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재해석한 ‘B 프리미엄 콘텐츠’에 해외에서 먼저 열광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홍보 광고인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에서 촉발된 이날치 밴드 신드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SBS스페셜》이 ‘조선 아이돌 이날치 범 내려온다 흥 올라온다’는 제목으로 이날치 밴드 현상을 조명하기도 했다. 

영화 《전우치》 《타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의 음악을 담당했던 장영규가 이 밴드의 프로듀서이자 베이시스트다. 그는 ‘클럽에서 판소리로 떼창을 한번 해 보자’며 판소리 밴드를 구상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스 주자인 정중엽과 김광석의 드러머였던 이철희가 연주팀을 이루고, 소리꾼 이나래·권송희·신유진·안이호 등이 의기투합했다. 이 소리꾼들의 경력을 합치면 95년에 달한다. 판소리 완창을 할 정도로 정통 국악을 깊이 수련한 사람들이 밴드에 가세했다. 

장영규는 경기민요를 재해석한 씽씽 밴드 멤버로 활동했었다. 드러머 이철희도 씽씽의 멤버였다. 씽씽의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공연은 아직까지 전설로 회자된다. 하지만 2018년 해체하고 말았다. 씽씽에 쏟아진 국제적 반향은 장영규에게 국악 현대화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고 이것이 이날치 밴드로 이어졌다. 

ⓒ노블레스닷컴

한국 홍보 광고에 찬사 쏟아져 

2018년 11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수궁가》를 재해석한 ‘드라곤 킹’ 공연을 하며 만난 팀원들이 이날치 밴드를 결성했다. 2019년 5월 첫 단독공연으로 얼굴을 알렸고 2020년에 접어들면서 《범 내려온다》 공연 영상이 일각에서 화제가 됐다. 2020년 5월에 첫 앨범 ‘수궁가’를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범 내려온다》를 비롯해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좌우나졸》 등이 관심을 받았다. 

한국관광공사가 여기에 주목했다. 이전까지 관광공사의 한국 홍보 영상에서는 주로 한류스타가 주인공이었다. 국제적 스타에 큰 제작비를 들여 고급스러운 광고를 선보였다. 이런 방식은 한류 팬덤을 넘어선 외국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관광공사는 외국의 일반적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젊은 세대를 통칭)를 타깃으로 B급 취향을 목표로 하면서도 만듦새는 허술하지 않은 ‘B+(B 프리미엄)’급 영상을 기획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이날치 밴드의 곡인데 누리꾼들로부터 ‘모처럼 세금을 잘 쓴 사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 홍보 영상은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라는 시리즈로 제작돼 7월30일 서울편, 부산편, 전주편이 공개됐다. 이것이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불과 3개월 만에 조회 수 3억 회를 돌파했다. 광고 영상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기록이다. ‘광고에 빠진 건 처음’이라는 외국인부터, ‘이 영상에 광고가 없는 것이 좋았다. 알고 보니 이 영상이 광고였다’는 외국인도 있었다. 광고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콘텐츠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다. 한국 홍보 영상 중에선 역대급 성공작이다. 해외에서 폭발적 관심을 받자 국내에서도 터졌다. 《강남스타일》과 방탄소년단 신드롬이 해외에서 먼저 터지고 국내로 들어온 것과 같은 흐름이다. 

이날치는 명창 이경숙의 별명이다. 사당패에서 줄을 탈 정도로 몸이 날래다고 해서 날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조선 후기 판소리 8대 명창 중 한 명이다. 흥선대원군의 부름을 받아 어전 공연도 했다고 한다. 1995년 세상을 떠난 김소희 명창이 이날치 명창 소리의 맥을 이었다고 전해진다.
밴드를 처음 만들었을 때 별도의 이름 없이 ‘수궁가 프로젝트’라는 팀명으로 클럽 무대에 올랐다. 그 공연을 본 공연계 관계자들에게 섭외가 들어와서 급하게 이름을 지으면서 멤버들 투표로 이날치가 선택됐다. 권송희 소리꾼은 “날치라고 하면 굉장히 팔딱팔딱 뛰고 저희 팀하고 굉장히 이름이 잘 맞아서 이날치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전통 국악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리듬감을 강화한 형태로 재해석하는 밴드의 성향이 이날치라는 단어의 어감과 맞아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이날치 명창은 원래 줄광대였다가 나중에 소리꾼으로 전향한 인물로 경계를 넘어 활동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날치 밴드도 전통과 현대, 국악과 서구 음악의 경계를 넘나든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연주팀이 베이시스트 두 명에 드러머 한 명인 구성이다. 밴드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리드기타가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베이스와 드럼만으로 펑키하고 그루브한 리듬감을 극대화해 국악을 그 위에 얹었다. 이렇게 상식을 깨는 발상이 ‘팔딱팔딱’ 뛰는 날치를 연상하게 한다. 

노래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닌 고전 판소리의 한 대목을 그대로 썼다. 그렇지만 100% 복사한 것이 아니라 재구성했다. 마치 후렴구 ‘후크’가 있는 현대 유행가처럼 만들었는데, 판소리 사설이어서 랩음악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서 누리꾼들이 ‘조선의 힙합’이라며 열광한다.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댄스 퍼포먼스가 흥겨움 증폭시켜 

기본적으로 ‘클럽에서 판소리로 떼창을 한번 해 보자’는 취지로 만든 팀이기 때문에 흥겨운 노래를 지향한다. 그래서 토끼와 별주부가 나오는 《수궁가》를 먼저 재해석 콘텐츠로 선택했다. 인물이 나오는 판소리보다 동물이 나오는 판소리가 더 재미있게 각색할 여지가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각은 적중했다. ‘1일1범’이라는 신조어까지 나타났을 정도로 중독성을 자랑하며 히트한 《범 내려온다》는, 별주부 자라가 토끼를 ‘토선생!’이라고 부르려다 힘이 빠져 ‘호선생!’이라고 부르자 호랑이가 자기를 부르는 것으로 착각해 산에서 내려온다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이다. 이런 설정이 ‘흥겹고 재밌다. 그래서 힙하다’는 느낌을 강화했다. 

이날치 밴드의 흥겨움을 증폭시킨 것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퍼포먼스다. 이날치 밴드의 음악에 이들의 안무가 결합하면서 이 콘텐츠는 진정한 ‘코스모폴리탄 조선 힙스터’로 승화됐다. 의상부터 우스꽝스럽다. 조선시대의 각종 모자, 양복, 트레이닝복, 한복 등을 두서없이 ‘주워 입고’ 선글라스 낀 무표정한 얼굴로 부산하게 춤을 춘다. 이 ‘병맛’스러움이 이들의 콘텐츠를 B급의 대표주자로 만들었다. 

방송댄스도 아닌 것이 현대무용도 아닌, 경계를 넘나드는 안무라는 점에서 이날치 밴드의 퓨전 정신과 상통한다. 막춤 같아서 B급이지만 아무나 따라 출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그래서 ‘B+’다. 여기에 누리꾼들이 꽂혔다. 이날치 밴드가 지상파에 나왔을 때 방송사에 비난이 쏟아졌다. 일반적인 공연처럼 보컬 위주로 편집했기 때문이다. 이 종합예술의 매력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며 지상파의 둔감함에 질타가 쏟아졌다. 이날치 밴드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성공은 전통문화의 현대적·창의적 재해석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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