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거둔 개발이익 강북 발전에 쓰인다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0.12.10 14: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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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여금 광역화’ 법안 통과 눈앞…GBC 1.7조원은 활용 어려울 듯

공공기여금 광역화 내용을 담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공공기여금의 사용 범위를 기존 기초지방자치단체(시·군·구)에서 도시계획 수립 단위(특별시·광역시 등)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강남권에서 대규모 개발로 발생한 개발이익을 해당 자치구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에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개정안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오랜 기간 추진한 정책이기도 하다. 박 전 시장은 2015년부터 서울 시민 모두의 발전을 위해 강남 개발사업에서 발생한 공공기여금을 강북의 낙후된 지역에도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제시했다. 현재 공공기여금이 강남에 집중돼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올해와 내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공공기여금은 2조4000억원으로 서울 전체 공공기여금 2조9558억원의 81%를 차지한다. 반면 나머지 22개 구는 19%인 5599억원에 불과하다.

공공기여금 광역화를 담은 국토계획법이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를 통과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GBC 개발 부지 ⓒ시사저널 포토

강남·북 불균형에 강남 주민들도 ‘끄덕끄덕’

강남 3구의 공공기여금을 ‘1인당 공공기여금’ 혜택으로 환산하면 강남 3구는 145만원씩 수혜를 받고, 강남 외 22개 자치구는 6만8000원씩 받아 약 21.3배 차이가 난다. 박 전 시장은 지난 7월 자신의 SNS에 “현행대로 개발이익이 강남에 집중된다면 강남과 강북 간 불균형이 더 심화될 수 있다. 강남 3구의 개발이익을 서울시 전체가 공유하는 ‘개발이익금의 광역화’가 필요하다”면서 법 개정을 촉구했다.

공공기여금 광역화에 서울 시민들도 찬성하는 분위기다. 서울시가 지난 7월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서울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공공기여금 활용 및 개발이익 광역화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서울 시민 64.3%가 ‘개발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공공기여금이 균형발전을 고려해 서울시 전체에서 사용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해당 자치구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31%에 그쳤다. 강남 3구에서도 서울시 전체 사용 의견(47.4%)과 해당 자치구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47.4%)는 의견이 동일한 비율로 팽팽하게 조사됐다.

이번 조사 결과는 서울 시민들이 강남·북 간 불균형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부분이 교통 인프라다. 서울시 도시교통실 자료에 따르면 전체 행정동 424개 중 170곳(40%)에서는 도보로 10분 내 지하철역 접근이 어렵다. 대부분 서북권 지역이다. 지하철역이 하나도 없는 동은 113곳(27%)이나 됐다. 반면 지하철역이 3개 이상 있는 동은 103곳(24%)이다. 이 중 35곳(34%)이 강남 3구에 속했다. 서초구는 18개 동 중 12개 동(67%), 강남구는 22개 동 중 14개 동(64%)이 속했다.

박 전 시장이 사망한 이후 서울시는 개발이익금 광역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마련했고, 박 전 시장의 비서실장(2014~15년)을 지낸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북갑)이 대표발의한 이번 법안에 해당 내용이 담겼다. 법안은 여야 의원 간 견해차가 크지 않아 국토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를 무난히 통과할 전망이다. 서울시는 법안이 이르면 연말에 최종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글로벌비즈니스센터(현대자동차그룹 새 통합사옥·GBC)에서 발생한 공공기여금 1조7941억원은 활용이 어려울 전망이다. 공공기여금의 분배가 법 개정 이후 이뤄질 개발사업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강남구 올해 예산(1조163억원)을 뛰어넘는 역대급 규모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GBC의 공공기여금은 고스란히 강남구와 그 주변 개발에만 쓰이게 됐다.

아울러 서울시는 이미 지난해 말 현대차와의 협약을 통해 공공기여금 사용처를 확정했기 때문에 소급 적용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GBC의 공공기여금은 대상지 인근인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4000억원), 올림픽대로 지하화(3270억원), 잠실 주경기장 리모델링(2800억원) 등에 쓰일 예정이다. GBC를 제외하면 서울 전역에 활용할 수 있는 강남 3구의 공공기여금은 6509억원으로 예상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GBC 등 강남권 개발이익이 강남에만 독점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제도 개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GBC의 경우 꽤 오래전부터 공공기여금 사용처를 정했기 때문에 새로운 개정안을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면서 “이번 법안은 앞으로 이 같은 대규모 사업을 진행할 때 공공기여금 광역화를 현실화하자는 의미다”고 덧붙였다.

신연희 당시 강남구청장(오른쪽 두 번째)이 2015년 한전부지 개발과 관련해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기여금 사용 비율 두고는 이견 ‘팽팽’

법 개정 이후 공공기여금 광역화가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여전히 문제다. 국토부·서울시와 해당 지자체가 공공기여금 사용 비율을 정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에는 시행령에서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간 공공기여금 사용 비율을 규정하라고 명시했다. 현재 국토부와 서울시는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간 사용 비율을 7대 3으로 검토하고 있는 반면, 강남 3구는 5대 5를 희망하고 있다. 이견차가 있는 만큼 조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서울시 25개 자치구 모두 이해당사자가 된다”며 “강남 3구가 공공기여금의 절반을 사용하고 싶다고 하지만, 강북이나 상대적으로 기반시설이 열악한 다른 자치구들의 입장은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발된 도심지는 혼자만의 힘이 아닌 지자체의 지원에 따른 것으로 개발이익을 함께 나눠 고른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개정안 확정 이후 세부 시행령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자치구들과 균형 있게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이번 개정안에선 기부채납 받은 현금은 10년 이상 된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이나 공공임대주택 등을 짓도록 규정했다. 광역지자체는 기부채납 받은 현금의 10%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설치에 우선 사용하고, 기초지자체는 전액을 쓰도록 했다. 강남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형 개발사업의 이익을 강북으로 돌려 도시계획시설 일몰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도시공원을 조성하거나 서민 주거난을 해결하는 데 쓰이는 공공임대주택 건축에 사용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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