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불사’ 프랑스는 전직 대통령을 감옥 보낼까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8 14: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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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사르코지 전 대통령 재판
거물급 비리에 관대한 프랑스 재판부와 여론 추이 주목

지난 11월23일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현 체제인 제5공화국 사상 초유의 일이다. 법정 공방이 최종 ‘유죄’로 확정될 경우, 과연 프랑스 법원은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가 재판까지 이어진 것은 사르코지가 처음은 아니다. 같은 우파 소속으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집권한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역시 파리시장 재직 시절 위장취업을 통한 ‘공금횡령’ 혐의로 기소되었고, 2011년 유죄가 인정돼 집행유예가 내려진 바 있다. 당시 시라크는 고령인 데다 와병 중이어서 공판에 실제 출석하지는 않았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법정에 선 사르코지는 11월30일 세 번째 공판에 직접 출석해 강하게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공판은 11월23일 시작됐으나, 함께 기소된 질베르 아지베르 전 판사가 지병과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공판에 불출석하며 연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두 번째 공판에서 이 요청이 기각되면서 30일에야 본격적인 공판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11월30일(현지시간) 파리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 정보를 캐내려고 현직 판사를 매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EPA 연합 

이번 재판에서 사르코지가 받는 혐의는 전 고위직 판사인 아지베르에게 자신이 관련된 사건인 ‘릴리안 베탕쿠르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을 청탁하고 그 대가로 모나코의 고위 법관직을 제안했다는 이른바 ‘판사 매수’ 혐의다. 두 사람을 연결해 준 것은 아지베르 전 판사의 오랜 친구이자 사르코지의 전 변호인이었던 티에리 헤르조그 변호사였다. 헤이조그와 아지베르도 이번 재판에 함께 기소되었다.

이 사건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매수 시도’에 관한 물적 증거가, 2차 물증이나 주변의 증언이 아닌 당사자들의 전화통화로 확인된 1차 직접증거라는 점이다. 사정 당국에 포착된 이들의 통화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사르코지는 ‘폴 비스무스’라는 가명의 대포폰을 사용해 통화를 이어갔다. 폴 비스무스는 티에리 헤이조그 변호사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현재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다.

직접증거까지 있는 마당에 사르코지의 실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과연 유죄가 입증되었을 때 그가 감옥에 가게 될까란 의문이다. 그간 프랑스 법원은 유독 거물급 정치인들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탈세 혐의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프랑스 우파 정치인 파트릭 발카니(전 르발루아페레 시장)의 경우 전격적으로 법정 구속되며 엄중한 처벌을 받는 듯 보였지만, 5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석방 사유가 병보석임에도 그는 지난 6월 코로나 사태 속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치러진 한 음악축제에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포착되어 비난을 샀다.

그러나 발카니 전 시장은 이러한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리는 등 자신의 유죄 판결을 비웃듯 당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거물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또 한번 증명된 셈이다.

거물급 정치인의 비리 혐의에 관대한 건 프랑스 국민 또한 마찬가지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하나씩 굵직한 스캔들에 연루되어 왔다. 그것이 퇴임 후까지 계속 이들의 발목을 잡았지만 최종적으로 철창 신세를 진 전직 대통령은 없었다. 고위 공직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 초기 스위스 은닉 계좌를 통한 ‘탈세 혐의’로 기소되었던 제롬 카위작 전 예산부 장관은 실형이 선고되었으나 재판부에 눈물로 선처를 호소해 가까스로 감방행을 면했다.

2010년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사르코지에 대한 음해비방 및 문서조작 등 혐의로 기소된 도미니크 드 빌팡 전 총리 역시, 재판 과정에서 아내와 자녀들을 대동해 법원에서 공개 성명을 낭독하는 등 안간힘을 쓴 끝에 실형을 면했다. 그러나 프랑스 여론은 이에 크게 반발하거나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재판 시작과 동시에 강하게 반발하는 사르코지 역시 재판부에 어떻게 감정으로 호소해 위기를 모면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번 사르코지 재판에서 또 하나 시선을 끄는 것은 그가 대동한 변호인단이다. 면면도 화려하지만 무엇보다 재판 전면에 나선 변호사가 바로 자클린 르퐁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르퐁 변호사는 다름 아닌 알렉상드르 베날라의 변호인이기도 하다. 베날라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최측근 경호원으로 시위 도중 시민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현재 재판 중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관련된 사건의 변호인이 사르코지의 변호인이라는 점에서 현직 대통령과의 모종의 연결점을 상상하는 이도 적지 않다. 실제로 사르코지와 마크롱의 관계는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할 정도로 친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 코로나 정국에서 단행된 개각에 깊숙이 조언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사르코지였다. 현 총리인 장 카스텍스 역시 총리로 지명된 후 가장 먼저 통화한 사람이 사르코지였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현재 경찰권 남용으로 이슈의 한복판에 있는 공권력의 수장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 역시 사르코지의 최측근 인사다.

 

판결 차일피일 미뤄질 가능성도

그러나 무엇보다 사르코지의 재판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선을 2년 앞둔 시점에서 우파진영에 유력한 차기 주자가 없다는 점이다. 사르코지 스스로는 향후 정치 복귀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올해 발간한 회고록이 25만 부 정도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명성이 여전하다. 게다가 여전히 우파 지지층 내부에 그의 확고부동한 골수 지지층이 존재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우파 지지층의 80%가 사르코지의 복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잠재적 대선후보인 전직 대통령을 두고 프랑스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까. 사르코지는 이번 사건 이외에도 ‘리비아 카다피 정치자금 불법 수수’ ‘20012년 대선 정치자금법 위반’ 등 아직 재판이 시작조차 되지 않은 사건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 역시 변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거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2011년 초유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시라크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도 그의 퇴임 후 2년이 지나서야 기소됐으며, 기소 후 4년 만에 판결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법치적 결정’과 ‘정치적 파급력’ 사이에서 다시 고민에 빠진 프랑스 재판부가 이번엔 어떤 결정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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