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민과 고민 공유할 책임 있어 [쓴소리 곧은 소리]
  •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7 16:00
  • 호수 16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무리 총리나 장관이 역할을 해도 대통령이 나서야 할 현안과 타이밍이 있어

벽난로 옆에서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열고 살갑게 대화를 나눈다. 이 따뜻한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일자리를 잃은 국민에게 살아나갈 희망을 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번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경제대공황을 극복할 뉴딜정책을 이끌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 업적을 남겼다. 노변정담은 당시 보편화된 라디오를 통해 마치 대통령과 옆에서 직접 대화하는 느낌을 자아냈고,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에 집중했으며, 점차 언론과 의회도 대통령의 편에 서도록 만들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 45명 가운데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노예 해방의 아버지 에이브러햄 링컨과 같은 반열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서로 한 번씩 역대 대통령 평가 1위를 기록한다.

라디오 시대를 지나 인터넷 시대에 문재인 대통령의 출발은 매우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다. 2017년 5월10일 대통령선거가 끝난 다음 날 국회에 취임식을 하러 가던 길. 대통령이 몸을 맡긴 차량은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가기 전 야당 당사부터 들렀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을 찾아 당 대표들과 만나 앞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며 타협하겠다고 다짐하던 그 모습이 기억에 또렷하다. 앞으로 많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에 울컥했던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식 행사 직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예방해 당시 정우택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식 행사 직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예방해 당시 정우택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때론 야당에 져줘야 국민 마음 얻을 수도

과거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100일째부터 열린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및 제안 사이트. 옛날 신문고와 같이 간절한 백성이 물으면 정부가 답하는 청와대의 직접 소통 방식의 시작이다. 지난 3년 동안 30일 안에 20만 명 이상의 추천이라는 요건을 갖춘 청원이 205건으로 그 가운데 203건은 청와대의 답을 받았다. 지난 3년 동안 거의 모든 국민의 삶의 영역에서 청원이 쏟아졌고 연인원 1억7000만 명 이상이 동의를 눌렀다.

2019년 11월19일에는 국민과의 대화도 있었다. 프라임타임인 저녁 8시부터 100분 넘게 생방송으로 참석자가 즉석에서 다양한 현안에 대해 묻고 대통령이 직접 답했다. 형식이 파괴적이어서 가수 출신 방송인 배철수씨가 사회를 보고 300명의 국민 패널은 추첨으로 뽑혔다. 내용도 첫 질문자부터 민식이 부모가 뽑혀 어린이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눈물의 호소 등이 전파를 탔다. 대통령도 국민과의 공감 능력과 소통 의지를 보여주었다. 방송 시간이 부족해 못다 한 답변은 나중에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대통령이 야당이나 국회와 소통하는 데는 과거와 달라진 것이 많지 않다. 대통령은 제1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딱 한 번 가졌다. 2018년 4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의 회동이다. 올해 8월에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의 만남이 성사되는 듯하다가 말았다. 이 외에 대통령은 올해 2월까지 원내 정당 대표와 모임을 몇 차례 했고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정식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제1야당이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요구하거나 현안에 대해 어깃장을 놓으면서 만남 자체가 쉽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그마저 줄어들었다. 4월 총선 이후 대통령이 5월에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원내대표와 오찬회동을 한 것이 전부다.

손바닥을 마주쳐야 박수가 되듯이 상대가 호응해 주어야 대통령이 희망하는 정당 대표 회동이 자주 열리거나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제1야당이 다른 정당의 대표 없이 혼자 대통령과 독대하고 싶은 욕구를 없애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버려야 여야 정당 대표 회담이 수시로 성사되고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대통령이다. 야당에 조금 져주는 게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얻는 길이다. 

야당은 차치하고라도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하고도 청와대에서 밥 먹고 얘기를 나눴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신 대통령이 ‘혼밥’하는 것 아니냐는 기사가 있다. 과거에는 한 번씩 들었건만 요즘에는 청와대에서 밥 먹으면서 대통령과 함께 현안과 시국을 논했다는 교수의 무용담마저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대통령이 총리와 장관들하고 식사도 하고 소통을 한다지만 그 폭이 훨씬 더 넓고 그 빈도가 훨씬 더 자주이기 바라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의 비교, 가슴 아프게 받아들여야

더 심각한 것은 최근 한 신문의 칼럼이다. 기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접 브리핑이나 기자간담회를 150회가량 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회, 박근혜 전 대통령이 5회에 그쳤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약 4년 동안 브리핑이나 기자간담회를 6회밖에 안 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퍼지고 말았다.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은 국민의 절규를 듣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을 외면할 수는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국민의힘 의원들의 릴레이 1인 시위 현장을 방문해 ‘이 정부가 불통의 상징’이라고 말해도 못 들은 척할 수는 있다. 어차피 그들도 국민과 소통이나 공감 능력이 적고 다른 세상의 언어를 쓴다고 위안을 삼아도 된다. 그래도 서울대 온라인 게시판에 두 정부의 실정과 추문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박 전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글이 올라오는 지경에 이른 것은 가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촛불의 희망을 받아 탄생했으므로 국민과 호흡하고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국민에게 희망을 선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부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나 G20 등 정상 외교 등에 집중하는 동시에 뉴노멀 시대의 총체적 위기에 대응할 국가 미래전략의 수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신 코로나19나 다양한 현안 등 내치는 총리나 장관이 도맡아온 것이다. 대선 공약대로 책임 총리, 장관제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특히 법무부에 소송을 불사하는 검찰총장의 성정에 맞서 같은 법률가로서 대통령이 법절차를 뛰어넘지 않으려는 고민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총리나 장관이 역할을 해도 대통령이 나서야 할 현안과 타이밍이 있다. 대통령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국민과 공유해야 할 필요도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식 노변정담이 아니라면 더 좋은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게 나라다”라며 자랑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날 시간이 가까워진다. 그 전까지 기자회견도 MB(이 전 대통령)보다는 더해야 하지 않겠나. 여야를 가리지 말고 당 대표, 의원들, 전문가들도 만나서 다양한 생각을 교환하고 소통해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은 취임식을 하러 가던 길의 문재인 대통령을 다시 기다리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