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서 “좋은 의미로 ‘미친 영화’에 도전하고 싶어”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2 15: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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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에서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연기한 배우 전종서

거장 이창동 감독은 신예 전종서를 자신의 신작 《버닝》(2018)의 여주인공으로 발탁해 칸영화제에 동행했다. 영화 개봉 전 진행된 행사에선 전종서를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 전종서를 보는 순간,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하면 10대부터 화보 촬영, 광고로 나오는데, 도대체 이 친구는 뭘 하고 지금까지 원석 그 자체로 있다가 내 앞에 나타났을까. 굉장히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배우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넷플릭스 영화 《콜》로 돌아온 그는 이창동 감독의 심미안을 증명이라도 하듯 ‘역대급 여성 빌런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얻고 있다. 영화 《콜》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면서 시작되는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전종서는 1999년을 살아가다 2019년의 서연(박신혜 분)과 전화로 연결된 후, 연쇄살인마로 변해 가는 영숙을 연기했다. 개봉 전 화상인터뷰를 통해 만난 전종서는 인터뷰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담백하게 자신의 세계관을 조근조근 설명했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콜》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뭔가.

“책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책이 가지고 있는 색이 명확히 빨간색이었고요.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이 그려지면서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덧붙이자면 서연(박신혜 분)이와 영숙이의 평행이론적인 관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가져가는 장면이 대다수여서 그런 부분이 화끈하다고 생각됐고요. 무엇보다도 이충현 감독의 단편 《몸값》(2015)을 보고 (작품성에) 깜짝 놀랐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어요.”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데 촬영할 때는 어땠나.

“긴장하거나 떨리지는 않았어요. 단지 영숙이라는 캐릭터가 전형적이지 않아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컸죠. 관객분들에게 영숙이라는 캐릭터를 설득시켜야 하니까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영숙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타당성을 찾아가려고 노력했어요.”

 

연기에 대한 극찬이 많다.

“영숙이라는 캐릭터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녀스러움, 강함, 약함, 순수함, 잔인함. 그러면서도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걸요. 그렇듯 감정이 세세하게 잘라져 있는 만큼 관객들의 반응 역시 다양했던 것 같아요.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라는 걸 느껴주셔서 특히 좋았어요.”

 

극 중 캐릭터의 웃음소리가 독특하다. 기괴하다고나 할까.

“사실 웃음소리는 시나리오에 적혀 있진 않았어요. 한데 촬영을 하면 할수록 영숙이라는 캐릭터가 제 안에서 더 선명해졌어요. 천진난만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라 악동 같은 웃음소리가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었나 봐요. 저도 모르게 그 웃음소리가 나왔어요.”

 

서연과 영숙이 전화로 싸우는 장면을 보면 실제로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 배역 없이 전화상으로 싸우는 연기에는 어떻게 몰입했나.

“전화로 싸우는 장면을 찍는 날에는 서로 촬영 현장에 나와서 대사를 쳐줬어요.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스태프 뒤에서 몸을 가리고 실제 통화하는 것처럼 연출했어요. 그러다 보니 감정이 고조되고 실제 통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촬영하면서 감정적·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나.

“영숙이의 감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주전자가 끓듯이 온도가 계속 올라가요. 과격하거나 과열되는 장면을 연기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실제로 온몸에서 열이 나기도 했어요. 펄펄 끓는 느낌이랄까요. 촬영을 시작하고 2주 정도는 몸에 이상 증세가 있었고, 이후에 점점 적응해 나갔어요.”

 

참고한 캐릭터가 있나.

“다른 영화나 캐릭터는 참고하지 않았어요. 참고하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영숙이가 독보적이길 원했기 때문이에요. 내 머릿속에서 나오거나 혹은 내 본능에 기대고 싶었거든요. 그런 나의 것들이 감독님의 아이디어와 결합했을 때 나오는 ‘창의성’이 좋았어요. 아,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사진도 많이 봤고요. 특히 팝가수 빌리 아일리시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많이 봤어요. 노래를 할 때 풍기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약간은 기괴하지만 장난꾸러기 악동 같은, 그러면서도 순수한 면요. 제가 빌리 아일리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솔직하게 자기표현을 하지만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요. 예상과는 빗나가는 방식이랄까요. 그 부분이 영숙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국내에서는 재키와이라는 여자 래퍼의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영숙이스럽다고 느껴졌거든요. 이번 작품은 음악에 많이 기댔던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 영숙은 서태지를 좋아하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사실 서태지는 제 세대에 있던 가수가 아니라 생소했어요. 너무 전설 같은 이름이라 알고는 있었는데 좀 더 가까이 접해야 했기에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찾아봤어요. 잔잔하고 서정적인 노래보다 역동적이고 비트가 강한 노래를 줄곧 들었어요. 사실 실제로는 G.O.D를 좋아해요(웃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작품 선택의 권한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배역에도 운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작품을 최대한 ‘전종서’스럽게 만들고, 그 캐릭터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게 배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창의력이 필요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전작인 영화 《버닝》 《모나리자》에 이어 《콜》까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창조할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떤지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기에, 나 자신이 투영된 어떤 캐릭터가, 언제든 돌려볼 수 있는 필름으로 담기는 거잖아요. 사진이나 동영상이 아닌 영화, 즉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로 담긴다는 게 제가 연기를 하는 많은 이유 중 한 가지이기도 해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세계적으로 한국영화나 문화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시점이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나라 배우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정서를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외국에 소개하고 싶어요. 뭐랄까, ‘총을 든 소녀’ 같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 그러니까 킬러 역할도 해 보고 싶고, 부성애에 관한 영화도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일상적인 캐릭터도 해 보고 싶어요. 평범한 20대 여자를 그리는 작품도 궁금하고요. 어떤 이유 때문에 선택을 꺼리고 조바심을 냈던 작품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거침없이 도전하고 싶어요. 좋은 의미로 ‘미친 영화’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든, 연기를 하는 배우든 눈치 보지 않고, 조심하거나 두려워서 건드리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깨뜨리는 영화요.”

 

연기자 전종서와 일상의 전종서는 많이 다른가.

“배우가 됐다고 해서 생활이나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니에요. 예전에 자주 가던 장소에 여전히 자주 가고 그때 하던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자주 입었던 옷도 지금까지 입어요.”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나.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꾸고 싶어요.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미래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관심사는 뭔가.

“언제까지 축구를 즐겨 볼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해외 축구를 보기 시작했어요(웃음).”

한편 전종서는 독립영화계의 기대주 정가영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우리, 자영》으로 곧 다시 관객을 찾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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