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경제] 동학개미, 국내 증시 반전의 마중물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8 16: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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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파죽지세 이어갈지 주목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화하자 경제계는 충격에 빠졌다. 관련 기관에서 세웠던 ‘비관 시나리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방역’과 ‘경제’의 균형점을 찾으려 애써온 우리 정부도 부쩍 줄어든 선택지에 당황한 모습이다. 

이렇게 침체되고 암울한 상황에서 나 홀로 활황인 분야가 있다. 바로 증시다. 올해 코스피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에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왔다. 2600과 2700을 차례로 돌파했고, 여세를 몰아 꿈의 3000도 넘보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10개 중 대다수 종목이 2020년 새로운 고점을 달성했다. 아울러 코스닥도 꾸준히 올라 1000선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투자자들은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우려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당시 코스피는 2009년 7월23일(1496.49) 이후 약 10년8개월 만에 처음 1500선 아래로 떨어졌다. 투매가 극에 달했던 3월19일 기록한 연중 저점은 1457.64였다. ‘얼마나 더 하락할까’ 우려를 자아내던 코스피는 9개월여가 지난 현재 1320포인트가량 올라 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코스피지수가 2700선까지 상승한 후 현재는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은 12월22일 하나은행 딜링룸 ⓒ시사저널 이종현
동학개미운동으로 코스피지수가 2700선까지 상승한 후 현재는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은 12월22일 하나은행 딜링룸 ⓒ시사저널 이종현

개미가 살린 증시, 최고가 행진 

‘넘쳐나는 유동성’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에 따른 세계경제 회복 기대감’ ‘K방역 성과와 기업들의 위기 극복 능력’ 등도 배경으로 작용했지만, 핵심 요인은 따로 있었다. 드라마틱한 반전의 마중물은 바로 개인투자자, 일명 ‘개미’들이었다. 코스피에서 개인투자자는 3월 한 달간 주식 11조1869억원어치를 매수했다. 월간 기준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이에 ‘동학개미운동’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주식 12조5550억원어치를 내다 판 데 맞서 용감히 ‘사자’ 행진을 이어가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이 동학개미는 이후 10월말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26조560억원어치의 주식을 더 매집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외국인(12조2418억원 순매도)과 기관(14조3764억원 순매도)이 국내 증시를 외면할 때 홀로 지수를 떠받쳤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주식 12조4612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개인투자자가 3월 이후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순매수한 상위 6개 종목(삼성전자, 삼성전자 우선주, 현대차,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헬스케어)은 모두 고수익률을 달성했다. 

11월에 들어서는 외국인이 폭발적인 매수세로 돌아서며 지수를 박스권 밖으로 밀어올렸다. 외국인을 뒤늦게 따라가다가 고점에 물리는, 즉 패배에 익숙했던 개미들은 첫 승리를 자축했다. 외국인과 기관 의존도가 높았던 국내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는 어느덧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공매도 금지 기간 6개월 추가 연장, 대주주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하향(10억→3억원) 철회,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 상향(2000만→5000만원) 및 징수 주기 연장(매달→반기), 주식형 공모펀드 5000만원 기본공제 적용, 주식 장기 보유 세제 혜택 검토 등 정책적 요구 사항도 관철했다. 

이런 가운데 동학개미운동은 더욱 힘을 얻었다. 올해 초 30조원 규모였던 예탁금(투자 대기 자금)은 두 배가량 폭증했다. 주식거래활동계좌 수는 3500만여 개로 지난해 말에 비해 20% 정도 늘어났다. 2019년 한 해 증가량이 234만 개(8.7%)였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새해에도 유동성 장세 이어질 듯” 

동학개미 현상은 가정이나 직장가 풍경도 바꿔놨다. 둘 이상 모이면 주식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자본이 일하게 하라”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말은 격언처럼 떠받들어졌다. 각종 경제 유튜브 채널도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주식 투자를 안 하는 사람은 트렌드에 뒤처지거나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특히 2030세대가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며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 수시로 접속했다. 지난해 신규 개설 계좌 중 2030세대 비중이 절반 이상이다.  

많은 전문가는 동학개미운동이 새해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정환 GB투자자문 대표는 “지난해까지는 젊은 층이 전세금 증가세 속에서 (재테크 여력이 없어) 주식시장에 투자하지 않다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가 급락한 뒤 바뀌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폭락기를 지나고 증시가 회복된 데 대한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본다”며 “젊은 층의 유입에 더해 부동산 규제로 인한 자금 이동,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투자 등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며 장을 받쳐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인 자금이 많이 유입되면서 유동성이 높은 장세가 당분간 계속될 여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다만 승리에 도취해 ‘돌격 앞으로’만 외치는 개인투자자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이종우 이코노미스트(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조언했다. 그는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은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는 등 주식시장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지만,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면서 “그만큼 개인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기 힘들다는 의미다. 당연히 위험 관리와 적절한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투자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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