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국가보안법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바이러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30 07: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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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中’ 투쟁 동력 상실한 홍콩인들…코로나19 사태로 최악의 경제위기 내몰려

2019년 11월24일, 홍콩 전역에서 18개 구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가 실시됐다. 투표는 밤 10시 반까지 진행됐는데, 무려 71.2%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지금까지 홍콩에서 실시됐던 모든 선거의 투표율 중 최고 기록이었다. 다음 날 오전까지 진행됐던 개표 결과 범민주파 후보가 388석을 얻어 전체 의석 479석 중 무려 81%를 차지했다. 그에 반해 친중(親中)파 후보는 58명만 당선됐다. 외신은 일제히 “반년 동안 지속됐던 민주화운동을 홍콩인들이 적극 지지하고 있음을 투표로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일부 매체는 “홍콩의 독립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0년 12월2일, 2014년 우산혁명의 주역이자 청년 민주화 운동가인 조슈아 웡(黃之鋒)이 홍콩 치안법원에서 불법집회를 주동한 혐의로 징역 13.5개월을 선고받았다. ‘학민여신(學民女神)’으로 추앙받았던 아그네스 차우(周庭)에게도 10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두 사람은 우산혁명 이후 홍콩 학생운동 주류와 함께 2016년에 데모시스토(香港衆志)를 창당했다. 데모시스토는 같은 해 입법회(우리의 국회) 선거에서 네이선 로(羅冠聰)가 당선되는 등 약진했다. 하지만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차우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이에 반발하는 집단시위는 홍콩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2019년 6월부터 홍콩에서는 홍콩인 범죄자를 중국에 인도하는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11월까지 홍콩인들은 민주화 투쟁을 끈질기게 벌였다. 그 결과 구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범민주파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홍콩의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11월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홍콩 민주파 의원 4명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4명이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고 외국 세력과 결탁해 홍콩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같은 날 다른 범민주파 의원 15명은 전인대의 조치를 비난하며 항의의 뜻으로 동반 사퇴했다.

홍콩 시민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테스트센터에 들어가기 전에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AP연합

1년 사이 완전히 바뀐 홍콩의 정치 상황

홍콩 입법회의 총 의석수는 70석이다. 이 중 친중파가 41석을 차지하고 있다. 범민주파 의원에 대한 잇단 박해와 이에 반발한 의원직 사퇴로 현재 입법회는 27석이 비어 있다. 불과 64%의 의석 재적률을 보이는 것이다. 이렇듯 입법회에는 ‘친중 거수기’ 의원들만 남은 상태이기에, 민의의 전당이라는 본래의 역할은 무너졌다. 하지만 중국은 홍콩 정부를 앞세워 민주화 세력에 대한 공세를 지속했다. 12월3일에는 홍콩 치안법원이 사기 혐의로 기소됐던 지미 라이(黎智英)의 보석을 불허했다. 따라서 지미 라이는 즉각 수감되어 내년 4월16일까지 감옥에서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지미 라이는 홍콩의 대표적 반중 신문인 ‘빈과(果)일보’의 사주다.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지원해 왔고, 직접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사기 혐의만 적용됐지만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컸다. 결국 12월11일 홍콩경찰은 지미 라이를 외부 세력과 결탁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트린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이보다 앞선 8일에는 범민주파 정치인 8명이 불법집회를 조직하고 선동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들 중 우치와이(胡志偉)는 홍콩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전 주석이었고, 다른 2명도 전직 입법회 의원이었다. 다른 한 명은 홍콩 최대 시민단체인 민간인권전선의 피고 찬 대표였다.

그들이 체포된 원인은 7월1일 벌어졌던 톈안먼(天安門)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 때문이었다. 당시 홍콩경찰은 집회 개최를 불허했다. 이는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천 명의 홍콩인은 빅토리아공원에 모여들었고, 야간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이렇듯 순수한 추모 집회마저 당국은 홍콩보안법을 앞세워 금지했고, 오히려 민주화 세력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그로 인해 아예 홍콩을 등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홍콩보안법의 칼끝이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는 우산혁명의 주역 중 하나이자 입법회 의원을 지낸 네이선 로가 영국으로 망명했다.

12월1일에는 우산혁명에 참여했던 바지오 렁(梁頌恒) 전 의원이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틀 뒤에는 민주당 내에서 강경파로 명성이 높았던 테드 후이(許智峯) 전 의원이 영국으로 망명했다. 조슈아 웡과 함께 고등학생 운동단체를 이끌었던 프랜시스 후이도 12월17일 SNS를 통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밝혔다. 투쟁력이 강했던 범민주파 정치인과 활동가의 망명 도미노는 암울한 홍콩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홍콩보안법의 칼날은 일반시민들에게도 떨어진다. 실제로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후 단순 시위 참가자들도 엄벌에 처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홍콩인들의 투쟁 동력 상실 원인을온전히 홍콩보안법으로만 돌릴 순 없다. 주목할 점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최악으로 내몰린 홍콩의 경제 상황이다. 최근 홍콩의 위기는 각종 수치로 드러난다. 지난해 3분기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선 GDP 성장률은 올해 1분기 –9.1%, 2분기 -9%, 3분기 –3.5%로 악화됐다. 이는 아시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중계무역과 관광, 쇼핑 등 홍콩의 주요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금융허브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12월21일 홍콩 주식시장의 항셍(恒生)지수는 2만6306을 기록했다.

비록 지난 3월 2만1000대까지 내려갔던 때와 비교해서는 다소 호전됐지만, 2019년 12월 2만8000대를 유지했던 지수에는 여전히 못 미치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주요국의 증시가 지난 수십 년래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는 상황과도 대비된다. 극심한 경기 침체로 인해 지난 3분기 실업률은 6.4%를 기록했다. 이는 금세기 들어 최악의 수치다. 그나마 홍콩 정부가 지난 6월부터 고용 유지 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 절망적인 실업대란은 막았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기업들은 6개월 동안 1인당 최대 9000홍콩달러(약 128만6000원)의 급여를 보조받아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해 왔다.

홍콩의 반중(反中) 신문인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가 12월12일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AP연합

코로나19 사태로 정부 눈치 보게 된 현실

고용 유지 프로그램은 아이러니하게 홍콩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월급의 일부나 대부분이 보조금으로 충당돼, 직장인들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조금은 업종·직위·개인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지급된다. 따라서 정부의 의도에 따라 차별을 둘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11월19일부터 홍콩에서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하루 신규 환자가 수십 명에서 100명을 넘나들고 있다. 그로 인해 12월21일 현재까지 누적 환자는 8154명, 사망자는 130명에 달했다. 이에 따라 홍콩 정부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고 있다.

변호사인 마이클 차우는 필자에게 “최근 홍콩 상황은 2014년 우산혁명 때와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차우는 “우산혁명 때도 일시적인 침체를 겪었지만 곧 경기가 되살아났다”면서 “지금은 언제라도 실직당할 수 있고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홍콩인들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산혁명이 일어났던 2014년 홍콩의 GDP 성장률은 2.8%, 2015년에는 2.4%였다. 민주화 시위 이후 경제는 다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생존의 문제가 더욱 절박하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기 전까지 홍콩인들의 민주화 요구는 수면 아래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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