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나무를 베어내는 ‘역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3 13: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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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친환경 동시 실현 가능성 한계로 딜레마
“탈원전 도그마에 빠진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재고해야” 목소리도

지난 12월23일 부산시 기장군은 기장 앞바다 500MW급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 반대를 선언했다. 오규석 군수는 “내가 군수로 있는 한 해상풍력의 ‘풍’자도 어림없다. 온몸을 던져 군민들의 생계 터전인 기장 앞바다를 지키겠다”며 결사항전 결의를 밝혔다.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은 1차 사업지인 해운대구 청사포를 시작으로 3차 사업지인 기장 앞바다까지 포함한다. 부산 시민단체들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안일규 부산경남미래정책 사무처장은 “이곳에 들어서는 풍력단지는 국내 최대 규모인 108기(540MW)에 달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 덕적도와 굴업도 앞바다에도 ‘돈벌이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세계 최대 해상풍력발전 기업인 덴마크 오스테드가 이곳에 대단위 풍력발전단지를 짓겠다며 풍황계측기 4기를 설치했다. 인천시와 남동발전도 굴업도 해상에 600MW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시민대책위는 “어장 황폐화로 생존권이 무너진다”며 반대에 나섰다. 울산과 여수에서도 해상풍력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은 시대적 소명이지만,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탈원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지난 12월24일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공개했다. 석탄·원전을 줄이고 재생 에너지를 확대한 게 핵심이다. 원전은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준공에 따라 2022년 정점을 찍은 뒤 이후 수명이 다하는 11기를 폐쇄해 2034년 17기로 낮춘다. 석탄발전기는 현재 60기에서 5년 후 30기로 줄인다.

대신 재생 에너지를 2034년까지 4배 정도 늘린다. 그 사이의 공백을 메울 ‘중간 계투’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41.3GW에서 58.1GW로 늘려나갈 방침이다. 문제는 온실가스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LNG발전의 이산화탄소 배출계수(g/kWh)는 549다. 석탄(991)의 절반 수준이지만, 원전의 55배다. LNG는 1GW당 254만 톤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원전과 석탄발전의 빈자리 대부분을 가스발전으로 채우게 되는데 이게 무슨 이산화탄소 저감이 되고 탄소 중립(Net Zero)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양성봉 울산대 교수도 “전력수급과 탄소 중립 정책 모두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탄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사용후 핵연료 처리방안 마련 우선돼야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의지는 확고하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 따르면 경주 월성 2~4호기, 신월성 1·2호기, 울진 한울 1~6호기 등 원전 11기가 2034년까지 순차적으로 가동이 중단된다. 1년에 원전 1기씩 가동을 멈추게 되는데, 문제는 폐쇄 이후다. 현행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한수원은 원전이 영구 정지된 날부터 5년 안에 해체계획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하고 해체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원자로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빼내고 방사능 제염작업, 원전부지 복원까지 15년이 걸린다. 

문제는 탈원전 정책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다. 우리나라에는 고준위 방폐물 저장시설이 없다. 해체로 발생하는 고준위 방폐물은 원전부지 내 임시보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10월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사용후 핵연료 관리방안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영구처분(63.6%)'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사용후 핵연료를 임시로 여기저기 보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중간저장시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번번이 불발로 끝났다.

1차적으로 고리1호기는 2032년 해체작업이 종료된다. 그리고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나머지 원전들도 가동 중단과 함께 해체 수순을 밟는다. 하지만 방폐물은 갈 곳이 없다. 탈핵부산시민연대는 지난 11월30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리 1호기 해체 계획을 재검토하라”며 “어디에 핵폐기물을 쌓아둘 것인지도 없는 허술한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방안이 없으면 해체를 반대한다는 분명한 의사다. 가동을 멈춘 원전들이 해체도 하지 못한 채 흉물로 방치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탈원전에 앞서 탈원전 이후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방안부터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재생 에너지’ 중심은 태양광과 풍력이다. 그런데 원전 축소의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 허가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의 국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20년 현재) 3MW 초과 신재생 에너지 발전사업자 사업허가 건수는 2016년 87건, 2017년 67건, 2018년 75건, 2019년 135건, 2020년 46건 등 총 410건이다. 하지만 사업 개시는 24건으로 5.8%에 그쳤다. 발전량 기준으로는 2.1% 수준이다. 특히 해상풍력은 5년간 23건의 허가를 받았지만, 단 1건도 사업을 개시하지 못했다. 김 의원은 “신재생 에너지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별개로 방치된 환경 훼손 현장도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2020년 8월8일 충북 제천에서 일어난 산사태로 태양광 설비가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태양광 난개발로 산림 훼손 가속화

지난 2019년 정부는 국유림 내 인공조림지와 숲길에도 풍력발전을 허용했다. 심지어 백두대간 보호지역과 생태·자연도 1등급 권역도 사전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치면 풍력발전소가 들어설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 탈원전에 따른 신재생 에너지 보급 계획이 지지부진한 데 따른 고육책으로 내놓은 방안이다. 당연히 난개발 우려가 제기됐다. 현 정부에 우호적인 환경단체들마저 심각한 환경 훼손이 불가피하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끝내 관철되지 않았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 5월말까지 태양광발전으로 훼손된 산림 면적은 5014ha(50㎢), 서울 여의도 면적의 17배다. 또 전국 1만2527개 산지 태양광발전 설비 중 7.4%에 해당하는 922개가 산사태 위험 1·2등급에 설치됐다. 환경부가 2018년 산사태 위험 1·2등급지를 ‘태양광시설 입지회피 지역’으로 정했지만, 지자체 등 인허가 기관이 이를 무시한 결과다. 이 때문에 올여름 장마 때 산지 태양광 27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영재 경북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면 안전성을 검토하지 않고 태양광을 설치해 산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설치된 패널 면적은 61.24㎢다. 여기에 송배전 설비와 패널 간 거리 등을 고려하면 발전소 총 면적은 157.5㎢에 이른다. 신고리 4호기(0.45㎢)의 350배다. 현재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를 포기하고 태양광으로 대체하려면 41.7㎢ 넓이에 패널을 깔아야 한다. 분당신도시(19.6㎢)의 2배, 판교신도시(8.92㎢)의 4배의 땅이 필요하다. 실제 전력 생산량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전국에 깔린 태양광 이상의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 신한울 3·4호기를 대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무리한 태양광 확대와 탈원전 정책을 전면 수정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일조량과 풍량(風量) 변동이 큰 것도 약점이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계절별 태양광 발전량은 봄, 가을, 여름, 겨울 순으로 많다. 난방전력 소비량이 많은 겨울에는 적은 일사량과 눈 때문에,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에는 고온과 장마·태풍으로 발전량이 크게 떨어진다. 실제로 지난여름  피크 시간대에 태양광·풍력의 발전 비중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발전 비중에서 LNG 40%. 석탄 32%, 원자력 19%인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재생 에너지 발전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역설이 벌어진 셈이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3년간 풍력발전으로 인한 벌목량은 1만5081그루, 강원도와 경상북도가 전체 벌목량의 92%를 차지했다. 태양광 발전 벌목까지 합하면 251만8367그루(태양광 250만3286그루)가 잘려 나갔다. 

한국남동발전이 제주도에서 30MW 규모로 운영 중인 탐라해상풍력 전경 ⓒ한국남동발전제공

경제성 검증되지 않은 풍력발전

정부의 재생 에너지 계획에 따르면 2017년 전체 재생 에너지의 46%에 불과했던 태양광·풍력발전은 2030년 85%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엄청난 추가 벌목이 불가피하다. 최근 5년간 태양광·풍력발전으로 인한 벌목 면적은 6006ha로 우리나라 1년 조림 면적(2만1766ha)의 4분의 1 수준에 달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숲이 재생 에너지 개발로 인해 훼손돼선 안 된다"면서 "서해안의 폐염전이나 새만금 등 간척지에 대규모 재생 에너지 단지를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용판 의원은 "묻지마 신재생 에너지 추진에 대한 정부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풍력사업 추진의 근거가 되는 '경제성' 자체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정부정책감시특위 이주환 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산자부 산하 에너지 공기업이 추진 중인 해상풍력사업 34건 중 경제성조사 대상은 7개에 그쳤다. 이 중 2개 사업은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이 1을 밑돌아 수익보다 비용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가가 운영하는 서남해풍력단지를 비롯해 울산·부산 등 지자체들도 해상풍력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자연환경이 풍력발전에 적합한 조건을 갖췄는지 여부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외국과 달리 풍속이 느리고 계절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해 풍력 이용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회 예산처도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목표 달성이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해상풍력대책위원회와 수협중앙회는 해상풍력이 문제가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들은 지난 8월27일부터 10월8일까지 43일간 어업 피해를 무시하는 ‘일방적 해상풍력 추진 반대 서명운동’을 펼쳤다. 이에 정부는 수산업과의 상생을 선언하고 해양생태계 보호 계획 수립 등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10월 국감에 참석한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주민 수용성과 환경성을 고려해 어업 피해 최소화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도 전남 장흥에서는 풍력단지 중단을, 경북 상주와 경남 거창에서는 태양광 발전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신재생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는 탈원전을 보완하는 대체 에너지로 태양광·풍력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태양광·풍력은 완성되지 않은 미래 에너지다. 정용훈 KAIST 교수는 “9차 전력계획안은 정부 스스로 세운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려운 수준으로, 탈원전이 시작된 8차 전력계획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한 ‘8.5차’ 계획에 그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 Peace) 국제본부 이사를 지낸 패트릭 무어는 “온실가스를 줄일 유일한 방법은 원자력과 재생 에너지를 잘 조합해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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