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턱 밑으로 파고든 중국…중남미 공략 성공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2 11:00
  • 호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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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뒷마당’ 중남미에서 최대 투자ㆍ무역 파트너 돼
시진핑 시대 들어 더 공세적

지난해 12월28일 블룸버그통신은 “2020년 중국이 중남미에서 펼친 인수·합병(M&A) 규모가 77억 달러로 가장 컸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한 M&A 를 합친 것보다 많다. 미국과 유럽이 자국의 전략산업을 중국이 인수하는 걸 견제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중국이 지구 반대편인 중남미에서 벌인 기업 사냥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진행됐다. 중남미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원 보고이기 때문이다. 2019년 중남미의 석유 매장량은 3251억 배럴로, 중동에 이어 세계 2위(18.8%)다. 뜻밖에도 석유의 세계 매장량 1위 국가는 베네수엘라다.

중남미에는 산업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광물자원도 몰려 있다. 초전도체 원료인 니오븀은 95%, 2차 전지 원료인 리튬은 68%, 전선 원료인 구리는 47% 등이 중남미에 매장되어 있다. 지난해 중남미에서 체결된 최대 M&A는 중국의 국가전망유한공사가 따냈다. 11월에 칠레의 최대 전력회사인 CGE를 52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투자뿐만 아니라 중국은 2018년부터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전 지역에서 미국을 제치고 최대 무역 파트너로 부상했다. 특히 남미의 경제 대국인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 등의 중국 편중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일러스트 RePlayH

중남미 5번 찾은 시진핑, 단 1번 찾은 트럼프

과거 중국의 중남미 진출에는 정치적 목적이 앞섰다. 대만을 고립시켜 ‘하나의 중국’을 실현하고, 미국의 패권을 반대하는 세력과 연대하기 위해서였다. 과거 중남미는 대만의 수교국이 모든 대륙에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중남미 33개국 중 24개국과 국교를 맺은 상태다.

미국의 패권을 흔들려는 노력은 금세기 들어 중남미에 불어닥친 좌파 집권 도미노와 관련이 깊다. 1999년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 당선을 시작으로 2002년 브라질, 2003년 아르헨티나, 2004년 우루과이, 2006년 칠레와 볼리비아 등에서 좌파가 줄줄이 정권을 잡았다. 중남미 좌파 국가들은 세계 질서에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반대했고, 소외계층을 위한 재분배 정책을 밀어붙였다. 10여 년 동안 좌파 물결은 대세를 이루었다. 

중국은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타고 중남미에 공을 들였다. 처음 고삐를 당긴 이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었다. 장 전 주석은 공산당 총서기로는 처음으로 1993년 중남미를 방문했다. 그 뒤 집권기간에 3차례 더 찾았는데, 2001년에는 6개국이나 순방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도 중남미 중시 기조를 이어갔다. 집권기간에 4차례 방문했고, 2008년 중남미에서는 처음으로 페루와 FTA를 체결해 물꼬를 텄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더욱 공세적이었다. 국가 시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중남미를 포함시키면서 경제적으로 목적을 확대한 것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집권기간에 5차례나 중남미를 순방했다. 2013년 첫 방문지를 트리니다드토바고로 정해 카리브해 소국들과의 관계도 확장했다. 이런 중국의 노력은 2014년 ‘중국-중남미협력포럼(CELAC)’을 통해 공고해졌다. 201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1차 중국-CELAC 장관회의에서 시 주석은 ‘5위1체’ 실행방안을 제안했다. 에너지, 천연자원, 인프라, 농업, 제조업, 정보기술 6개 분야에서 협력해 향후 10년간 5000억 달러의 무역과 2500억 달러의 투자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중국은 200억 달러의 대출, 50억 달러의 협력기금 등의 지원을 약속했다.

2018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된 제2차 중국-CELAC 장관회의에서는 ‘일대일로에 관한 특별성명’이 발표됐다. 중남미 20개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비록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콜롬비아는 공식적인 참여를 밝히지 않았으나 일대일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이는 중남미 외교무대에서 중국의 중대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중남미의 많은 나라가 미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일대일로에 참여했다. 일대일로를 무역 다변화, 투자유치 확대, 낙후된 인프라 개선 등 경제 성장의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남미 국가들의 변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헛발질이 더해져 굳어졌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자국 이익만 앞세운 일방주의 외교로 회귀했다. 따라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중남미에서 공들여 쌓은 외교 성과를 모두 수포로 만들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이 중남미 침투를 강화하자, 미국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중국을 견제하려고 노력했었다.

이를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멕시코·칠레·페루 등 중남미 국가들을 포함시켰다. 콜롬비아·멕시코 등에서 벌어지는 마약 밀매, 인신매매, 갱단에 대한 소탕작전을 지원했다. 2014년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고, 2016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방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해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국경 장벽 설치, 반이민법 제정 등을 강행했다. 평소 중남미인과 미국 내 중남미 출신 이민자에 대한 경멸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2016년 11월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페루 리마에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과 정삼회담을 가졌다. ⓒ연합뉴스

중국, 코로나19 백신 앞세워 영향력 더 확대

이런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은 중남미의 우파 정권들조차 돌아서게 만들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 정상들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집권기간에 2018년 G20회의 참석을 위해 아르헨티나를 찾은 것 외에 중남미 방문이 전무하다. 이는 우파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중남미를 열심히 찾은 시진핑 주석의 정상외교와 대조된다. 지난해 12월14일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간에 중국이 중남미 대부분 지역에서 권력과 영향력 면에서 미국을 앞서게 됐다”면서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이 취임을 앞둔 조 바이든 당선인에게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이 중남미에서 권토중래하는 일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당장 의료보건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코로나19 백신을 앞세워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지난해 7월 멕시코를 방문한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멕시코·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쿠바 등의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백신 구매를 위한 10억 달러 규모의 차관 제공을 약속했다. 그 전에도 중국은 마스크·보호복·호흡기 등 방역물자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현재 중국이 개발한 백신은 세계 100여 국가로부터 주문받았는데, 대부분이 아프리카와 중남미에 몰려 있다.

무엇보다 중국에 중남미는 놓칠 수 없는 동반자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에너지와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요하다. 중남미는 에너지 자원뿐만 아니라 곡물·육류·대두 등 풍부한 농축산물을 생산한다. 이미 세계 2위의 에너지 소비국이자 세계 최대 농산물 수입국인 중국에 매력적인 협력 파트너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 국가들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걸 경고하면서도 말로만 그쳤다. 그에 반해 바이든 당선인은 “중남미에서의 미국 영향력 약화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말해 왔다. 미국이 ‘뒷마당’ 중남미를 지켜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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