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적대 정치 극복 위해 전직 대통령 사면해야”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1 10:00
  • 호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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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해석한 데서부터 문제 시작”

신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1월11일 기준 484일이 남았다.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는 오히려 분열상을 더 키우고 있다.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은 새해에도 정치권을 보며 한숨짓고 있다. 시사저널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를 초대해 난국에 빠진 우리 사회의 해답을 구했다. 집권 5년 차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세 원인과 다가오는 4월 보궐선거의 의미도 들어봤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최근 쓴소리를 이어오고 있는 진보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신년 벽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애드벌룬을 띄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대표의 온전한 독자적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얘길 꺼냈고 이 대표가 자기 의견으로 얘기해 여론의 반응을 살펴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1월5일 최 교수는 1시간30분에 걸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사면 논란에 대한 소신을 비롯해, 최근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세 원인과 4월 보궐선거 및 차기 대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최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촛불시위의 연장선상으로 (박 전 대통령을) 탄핵까지 시킬 순 있었어도 사법처리까지 한 건 곤란하다. 현직에 있을 때의 통치행위에 대해선 정치적인 고려도 중요하다. 순수하게 법적 기준만으로 판결해 대통령을 가둬놓는 건 한국 정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다.” 최 교수는 촛불 이후 보수·진보 간 극심한 적대 정치를 해소하기 위해선 문 대통령의 사면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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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된 다수가 시민사회 공론장 황폐화시켜”

최장집 교수는 현 정부 들어 적대 정치가 더욱 심해진 주원인으로 “정부가 ‘여론’에 의한 정치만 하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최 교수는 자신이 자주 쓰는 ‘다수의 전제정’ 표현을 빌렸다. 그는 “모든 문제를 여론이라는 이름의 의견집단에 기대어 결정한다. 법의 지배가 가능치 않은 전제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정당 간 협의도 없고 반대를 적대시하며 국정을 운영했다. 이것이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한국정치연구》에 기고한 ‘다시 한국민주주의를 생각한다’ 논문에서도 그는 “특정 정치인을 열정적으로 따르는 ‘빠’ 현상은 강고한 결속력과 공격성을 핵심으로 한 정치운동”이라며 “조직된 다수가 공론장을 지배하면서 여론을 주도하며 시민사회 공론장을 황폐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조국 사태, 권력형 비리,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던 진보 학자들이 현 정부에 실망한 계기는 다양하다. 최 교수는 정권 초, 촛불시위를 해석하는 그들의 관점에서부터 실망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해석한 데서부터 문제를 느꼈다. 촛불을 자신들 뜻대로 해석하고 전유하며 ‘적폐청산’이라는 기조로 국가주의적 운영을 해 나갔다.” 그는 “촛불로 세워진 정부가 촛불을 배신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이는 모순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이러한 모습들이 쌓여 현재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지금의 하락세가 임기 끝까지 지속될 거라고 내다봤다. 그는 “모든 정부가 임기 후반 레임덕을 겪는 건 불가피한 일”이라면서도 “그동안 대통령이 확장적 권력을 행사하며 전방위적으로 개혁을 진행해 왔지만, 남은 임기 동안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관료들 통제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임덕은 완화될 수 있을까. 최 교수는 이 역시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정적 민심을 달래기 위해 눈에 보이는 레토릭(수사)이나 슬로건에 대한 방향은 바꿀 수 있겠지만, 내용의 본질까지 바꾸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는 게 이유다.

 

“사실상 지금의 정당 체제는 여당 하나라고 봐도 무방”

최장집 교수는 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3월 대선에서 정부·여당이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궐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에서, 대선은 윤석열이라는 경험하지 못한 인물이 꾸준히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최 교수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갖는 의미는 여느 때의 지방선거나 재보선과 상당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원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생각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적 의미와 영향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누가 봐도 대통령선거 전초전이다. 야당이 얼마나 당과 후보를 정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야당은 촛불시위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정비된 적이 없다”며 “사실상 지금 정당 체제는 여당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후보가 아닌 제3당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야권 후보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정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안철수가 되든 누가 되든 이 부분은 관심 없다”면서 “야권은 여러 정당이 경선을 통해 후보를 단일화해야 하고, 나아가 당 대 당 통합으로 하나의 큰 야당을 만드는 게 궁극적으로 승산을 키우는 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정치는 아직 다당제를 허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당과 정파를 취합해 다원적 의사를 수용할 수 있는 안정적 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내년 대선에선 윤석열 검찰총장을 여전히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최 교수는 윤 총장의 부상을 예상치 못한 ‘기이한 현상’이라고 봤다. “이러한 현상이 왜 생겼나를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국가 운영 방식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개혁 과정에서 보여준 법치 위기,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 국민 다수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위기를 해소해 줄 강력한 인물을 바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독일 희곡 작품 《갈릴레이의 생애》의 한 대화를 인용했다. “영웅을 갖지 못한 사회는 불행해.” “아냐.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불행해.”

“민주주의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언론·집회·결사에 대한 개인의 자유, 그리고 법의 지배. 현 정부 들어 특히 법의 지배에 위기가 생겼다. 강력한 통치하에서 사법체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윤 총장이 일부에게 영웅으로 인식되는 건 그가 이 과정에서 법의 ‘수호자’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이전 정권에서만 강하고 현 정부에서 변했다면 그저 권력의 시녀로 비쳤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현재 권력에서도 검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최 교수는 “한 가지 특정한 사건이 아닌, 그동안 많은 사건에서 역할을 보였기 때문에 일시적 지지로 보이진 않는다”며 윤 총장 지지세는 대선까지 계속될 거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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