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코로나 시대의 불평등: 포용적 사회제도를 향해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8 17:00
  • 호수 16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스트는 저마다의 이기심을 발동시키면서 인간의 마음속에 불공평의 감정만 심화시켰다.” 1947년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빈곤한 가정은 무척 괴로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만, 반면에 부유한 가정들은 부족한 것이라곤 거의 없다”고 적었다. 2020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부자들은 부동산과 주가 상승으로 재산을 늘렸지만, 노동자들의 지갑은 형편없이 얇아졌다. 국제노동기구는 전 세계 노동시간이 10% 이상 급감할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3억50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효과다. 저소득층의 삶은 벼랑 끝에 선 것과 같다. 위기가 장기화할수록 불평등이 커지고 사회의 분열이 심각해질 것이다.

지난해 유럽과 북미의 주요 국가들은 발 빠르게 새로운 정책을 도입했다. 첫째, 각국 정부는 막대한 재정 투입을 통해 기업과 가계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 금리를 인하하고, 기업의 단기 유동성 위기를 지원하며,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도입했다. 둘째, 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사회정책도 실행했다. 복지제도가 튼튼한 유럽에서는 수급 혜택을 한시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상대적으로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미국, 일본, 한국에서는 재난지원금 형태의 현금이 전달되었다. 그러나 장기화하는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긴급 지원을 넘어 경제구조와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는 사회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29일 피해 소상공인과 고용취약계층 긴급 지원을 위한 '코로나 3차 확산에 대응한 맞춤형 피해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따라 영업이 중단·제한되거나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에 최대 300만원의 '소상공인 버팀목자금'을 주기로 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29일 피해 소상공인과 고용취약계층 긴급 지원을 위한 '코로나 3차 확산에 대응한 맞춤형 피해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따라 영업이 중단·제한되거나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에 최대 300만원의 '소상공인 버팀목자금'을 주기로 했다. ⓒ연합뉴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주요 국가들과 비슷하게 재정 확대 정책과 함께 취약계층에 대한 긴급 지원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광범한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국민의 마음을 울린 ‘라면 형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에서 배제된 빈곤층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전염병에 걸리기 전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감에 빠져 있다. 중산층은 자산 조사를 통해 빈곤층만 지원하는 선별적 복지제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산재와 질병, 실업, 은퇴 등 사회적 위험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불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긴급재난지원금은 가뭄에 단비 같은 일시적 현금 지원 정책이었다. 정치권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확산되었지만, 향후 사회정책의 핵심 과제는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복지국가와 보편적 사회보험제도의 공고화가 되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종속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뿐 아니라 청년 실업자, 은퇴 노인, 실업자들이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 실업부조의 혜택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균등한 교육과 훈련 기회를 통해 젊은이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모든 시민에게 일자리와 주거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와도 포용적 사회제도가 없다면 창의적 기업가 정신을 키울 수도, 사회통합을 이룰 수도, 국민의 행복감을 높일 수도 없다.

카뮈의 《페스트》에서 기자 랑베르의 말은 중요한 울림을 준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모든 시민을 위한 보편적 사회보장을 위해서는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제도 개혁과 함께 복지 예산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공적사회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국내총생산 대비 20%에 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재정 전략과 공정한 조세 개혁이 필수적이다. 부유층과 불로소득층에 대한 조세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복지국가를 위한 보편 증세의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서도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와 조세 개혁을 위한 기회를 놓친다면 역사상 최악의 불평등이라는 유산만 남기게 될까 두렵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