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남인순-임순영, 朴과 같은 진영서 얽히고설킨 관계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2 14:00
  • 호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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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성추행 피소’ 유출 관련 세 여성운동가…그들은 여성보다 진영이 먼저였다

검찰이 밝힌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 유출 진상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박 전 시장이 피소된 사실은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의 김영순 상임대표에 의해 최초로 유출되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전해졌고, 이는 다시 임순영 전 서울시 젠더특보를 거쳐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거명된 세 사람은 모두 여성운동에 참여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성추행 피해 여성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가해자 측의 안위부터 염려하며 피소 사실을 유출한 일은, 자신들이 그동안 해 왔던 여성운동의 길과 정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사적인 경로를 통해 피소 사실이 가해자 측에 유출되었을 때 피해 여성이 어떤 불이익이나 위험에 직면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어떻게 이심전심으로 그런 행위를 잇따라 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세 사람이 박 전 시장과 함께 같은 진영에 속해 있다는 동질성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김 대표는 여연의 상임대표로 있으면서 정부와 서울시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던 인물이고, 남 의원은 박 전 시장과 같은 민주당 소속이며, 임 전 특보는 오랫동안 남 의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진영 내의 얽히고설킴은 단지 세 사람의 관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당장 김 대표가 있던 여연의 모습 또한 궁색했다. 여연은 자기 단체의 대표가 유출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도 검찰 수사 결과 발표가 나오고 나서야 뒤늦게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2020년 7월21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가장 먼저 인지한 것으로 알려진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가 조사를 마친 후 서울 성북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 호소인’ 용어도 여성운동가들에게서 나와

여연에서 직무 배제된 김 대표는 정부 주요 위원회와 공공기관 위촉직에서 줄줄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국무총리 소속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비상임 이사, 서울시 성평등위원회 위원, 대법원 양형위원회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단체 대표가 돌발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이 가해자 측에 대한 염려였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그가 참여해 온 각종 위원회의 이름들을 접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피해 여성을 먼저 생각하기에는 여기저기 얽혀 있는 관계가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여성운동가이기 이전에 ‘진영’의 일원이 되었던 셈이다.

여성운동도 그렇고, NGO의 공익적 활동가나 대학교수 같은 전문가들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돈독한 관계가 돼 버려 자신을 권력의 일원 혹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족쇄가 되고 만다. 광역단체장 선거 때면 누가 당선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교수가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꼭 정치적 신념 같은 것 이전에,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각종 위원회며 용역들이 어떻게 될지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고받는 관계들이 구축한 ‘이익의 공동체’는, 차라리 순수할 수도 있는 ‘신념의 공동체’를 능가하는 무서운 결속력을 발휘하게 된다.

박 전 시장과 인연이 있었던 대다수 진보 인사가 피해 여성이 아닌 박 전 시장 편에 섰던 사연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여성운동의 대표가 피해 여성이 아니라 고소당한 시장을 먼저 염려하는 기막힌 광경도 그래서 가능했던 것일 게다. 여성운동을 발판으로 금배지를 달게 되었고 이제는 여당의 다선 중진이 된 국회의원이, 성평등 구현이 소임인 젠더특보가 박 전 시장부터 걱정하는 태도를 취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세 사람이 속해 있는 곳은 각기 서울시, 국회, NGO였다. 세 영역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것이 책무다. 그러나 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성추행 사건 가해자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원팀’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만 문제는 아니었다. 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들은 박 전 시장이 사망하고 서울시특별장(葬)이 끝나고 나서야 여론에 떠밀려 뒤늦게 사과했다. 그것도 정말 내키지 않는 마음이 읽히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당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단톡방 회의 상황이 알려졌다. 여기서도 남 의원을 비롯해 여성운동을 대표했던 의원들이 그런 용어의 사용을 적극 주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적어도 여성운동을 대표했다는 이력을 배경으로 국회의원이 된 정치인들이라면, 그들에게 정치의 시작과 끝은 여성들의 삶의 문제가 되어야 했다. 그들이 여성들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정치를 하기에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덧 정치인이 되고 다선 중진 의원도 되고 장관도 지낸 여성 의원들에게는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보다 진영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 중요했다.

침묵하던 남인순 의원은 ‘불미스러운 무슨 일이 있느냐”만 물었을 뿐, 피소 사실을 유출한 바 없다는 입장을 뒤늦게 밝혔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임 전 특보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과 여연 김영순 대표를 정확히 짚어서 확인 전화를 한 사실은, 남 의원의 전화가 질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설혹 정식 피소 이전의 시점이었다 해도, 임 전 특보에게 ‘불미스러운 무슨 일’에 대해 얘기를 꺼낸 것만으로도 피해 여성은 무마·회유·위협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임 전 특보가 들은 얘기는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되었고 그 뒤 박 전 시장은 실종됐다.

2020년 8월14일 남인순 민주당 최고위원이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도망가기 바쁜 당신들이 놓고 간 건 ‘여성운동’”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는 《도덕적인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에서 “집단 속에서는 자의식이 약화되고 평소의 개인적 신념과 모순되는 행동을 저지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고 말한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를 둘러싸고 여성운동 출신 인사들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도 그들이 속한 ‘진영’이라는 집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들끼리’라는 집단의식은 이들로 하여금 정반대의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남이가’의 21세기 버전이다.

여연의 사과가 나온 뒤, 여성운동단체들이 모여 있는 건물인 여성미래센터에 어느 ‘막내 활동가’가 쓴 대자보가 붙었다. 그는 여성운동의 선배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과거의 죄 앞에서 발 빠르게 도망가기 바쁜 당신들이 놓고 간 것은 여성운동이었다. 당신들이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당신들의 2차 가해로 인한 피해자들의 상처와 죽어버린 여성운동의 시체뿐이다.” 그 ‘여성운동의 시체’가 묻힌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은, 그렇게 피해 여성을 외면해 버린 ‘진영의 카르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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