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소외당한 2030, 결국 한국 경제 뇌관 됐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4 10:00
  • 호수 16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無대책에 코로나19 겹치자 고용·소득·혼인·출산 직격탄

#주성호씨(가명·58)는 요즘 딸만 보면 가슴이 시리다. 올해 26세인 딸이 대학 졸업 후 1년 가까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다. 항상 톡톡 튀고 진취적이었는데, 만성적인 취업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겹친 현 상황에 부딪혀 멈춰버린 것 같아 속상하다. 아버지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그저 모르는 척, 태연한 척밖에 없다. 주씨는 “내가 재직하는 회사도 구인·채용 인원을 줄이거나 경력자 위주로 뽑고 있기에 딸의 실업 상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며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지도 못하는 청년들은 얼마나 더 힘들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결혼을 계획 중인 정혜원씨(가명·34)는 요즘 붕 떠 있다. 청첩장을 건네며 ‘부케를 받아달라’고 부탁하던 친구는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결혼식 날짜를 미뤘다. ‘우리는 결혼식을 올릴 수나 있을까’ 싶다. 먼저 집이라도 구해 보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한숨만 나온다. 매매가며 전세가며 죄다 올라 있다. 뒤늦게라도 ‘영끌’에 더해 양가 부모의 등골까지 빼며 집을 사야 하는지, 주택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말을 믿어봐야 할지 헷갈린다. 일찌감치 결혼한 친구는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단다. 출산·육아는 정씨에게 까마득하고 불확실한 미래다. 

2020년 11월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0 대한민국 일자리 엑스포’를 둘러보는 청년들 ⓒ시사저널 이종현

“청년층, ‘코로나 실업’에 가장 취약” 

20~30대가 심상찮다. 2년여 전까지만 해도 2030세대 문제는 정치·사회적 담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20~30대 지지율이 하락세다’ ‘경제 악화와 진보진영에 대한 실망감이 청년 지지층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다였다. ‘(주요 지지 그룹이었던) 청년층이 실망하고 있다면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정부·여당은 이렇다 할 대책이나 쇄신안을 내놓지 못했다. 방치됐던 2030세대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더더욱 외곽으로 밀려났다. 이렇게 나라의 미래 성장동력을 등한시한 결과는 암울한 경제지표, 여기저기서 울리는 경고음과 함께 급속도로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청년층 취업에 미친 영향에 관한 보고서 두 편을 잇달아 발표했다. 한수연 고용정보원 연구원은 ‘코로나19 전후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상실자 특징’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실업에 가장 취약했던 집단은 청년층”이라고 분석했다. 고용보험은 상시근로자(상용+임시)의 취업 동향을 반영한다. 이 중 경기에 민감한 비자발적 상실자는 통상 불황기에 해고 등 의 이유로 늘어난다. 

고용정보원이 2020년 들어 코로나19 타격을 많이 받은 산업군 내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상실자를 조사해 보니 숙박 및 음식점업,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제조업, 도매 및 소매업에서 전년 대비 비자발적 상실자가 증가했다. 20대 비자발적 상실자 증가율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020년 2월 29.9%, 4월과 5월엔 각각 31.1%로 다른 연령대 평균 증가율인 19.6%를 크게 웃돌았다. 또 숙박 및 음식점은 20대와 50대,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은 20대와 40대, 제조업은 40대, 도매 및 소매업은 20대와 30대가 비자발적 상실을 경험할 가능성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다고 고용정보원은 설명했다. 20대와 여성 비자발적 상실자의 경우 코로나19 전후 피보험자격 재취득 소요 기간도 다른 집단에 비해 긴 것으로 나타났다. 한수연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한 실업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청년층, 여성 등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기관의 남예지 연구원은 ‘대졸자의 첫 일자리 진입 특징’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2020년 5월 기준 취업 유경험 대졸자 규모가 142만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대졸자의 평균 첫 취업 소요 기간은 0.7개월 감소한 7.2개월이었다. 이는 취업이 빨리 돼서가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시장 경직 등으로 취업 유경험 대졸자 규모 자체가 축소된 영향이라고 남예지 연구원은 분석했다. 

대졸자가 처음 잡은 일자리를 종사상 지위별로 세분화하면 상용직은 106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5.9% 감소한 반면 임시 및 일용직은 1.5% 늘어났다. 최근 3년 사이 대졸자가 상용직으로 취업한 규모는 최저 수준, 임시 및 일용직으로 취업한 규모는 최고 수준이었다. 그만큼 코로나19 이후 대졸자가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방증이다. 

경제적 충격이 혼인·출산 유예로 번져 

기업들은 구인·채용 규모를 확 줄이고, 뽑더라도 경력자를 선호하는 추세다. 김민식 한국은행 조사국 차장은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고용 경직성에 따른 리스크를 경험함에 따라 위험 회피적 채용 관행, 자동화 투자 확대 등 기존 노동 수요의 대체 움직임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노동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채 새로 진입하는 청년층일수록 안정된 노동수입원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40대 이상에 비해 직업 전문성·경제력 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30대도 불안하다. 집값과 물가는 연일 치솟고 코로나19 사태로 다니는 회사, 내 자리가 언제 어떻게 흔들릴지 모른다. 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물론 연애도 점점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 가고 있다. 2020년 3~9월 중 혼인 건수는 11만8000건으로 전년 동기 13만4000건보다 1만6000건(12.0%)이나 급감했다. 김민식 차장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주로 예식장 내 감염 공포로 인한 결혼식 취소 내지 연기 사례가 많았으나 점차 고용·소득 여건 불안정이 혼인 감소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고 추정했다. 

마찬가지로 안전 우려에 경제적 위축이 더해지면서 임신은 확 줄어들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임신부가 병원진료비 지원 등을 위해 사용하는 국민행복카드 발급 건수는 2020년 4~8월 13만7000건으로 지난해보다 6.7% 감소했다. 코로나19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은 2021년부터 현실화해 적어도 2년은 이어질 것으로 한국은행은 관측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사회·문화적 환경 변화에 기인한 혼인율 감소가 1년 이상 시차를 두며 지속적으로 출산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성공적인 백신 개발 등으로 코로나19 종식이 가까워지면 혼인·출산 유예가 해소되면서 출산율도 일정 부분 회복될 것’이라고 희망 섞인 예외 사례를 전망했지만, 특별한 대책이 없는 한 거대한 추세와 관성을 뒤집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 시내 한 병원 신생아실 ⓒ연합뉴스

생산가능인구 급감세…나라 미래 ‘흔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가 2030세대의 고용·소득 충격, 혼인·출산 포기에 그치지 않고 나라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2019년 장래인구특별추계상 저위(비관) 추계 시나리오에서 2022년 국내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한은은 이를 더 밑돌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훨씬 가팔라진 저출산·고령화 속도에 향후 성장과 재정 부문의 위험 요인이 가시화했다고 한은은 경고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저출산 심화가 시차를 두고 생산가능인구의 본격적 감소로 이어지고, 초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출산 적령기에 이르는 2045년 이후 2차 저출산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분석에서다. 이한상 고려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 매년 수십조원씩 투입해 왔지만 효과가 없었다. 해당 문제의 핵심인 청년층의 목소리는 사회가 좌우로 갈린 사이 없어지다시피 했다”면서 “정치적이고 교조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변화한 상황에 맞는 신축적이고, 마이크로 한 경제·청년 문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제공

“당장 조그마한 대안 수백 개부터 만들어야”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미니인터뷰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긴급 대응과 별도로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2030세대 정책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지부진한 정부 청년 정책의 대척점에서 가장 신랄하게 비판과 이의를 제기해온 학자가 바로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청년 문제에 정부여당도 손놓고 있는 건 아닐 텐데 악화 일로다. 이유가 뭘까. 

“엉뚱한 곳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어서다. 재벌개혁, 기본소득 등에 에너지를 쓸 때가 아니다. (재벌개혁론자, 기본소득론자 등의 주장처럼) 획기적인 솔루션이 있다면 벌써 실행하고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당장 눈앞에 있는 수십, 수백 개 문제를 찾아내, 그에 맞는 조그마한 대안들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예컨대 코로나19로 인한 청년층 고용·소득 충격을 완화하자고 했을 때 공공부문 일자리 증가 같은 대책만으로는 모든 청년을 만족시킬 수 없다. 정부가 주도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발상은 틀렸다. 우선 청년들이 왜 극소수의 대기업만 선호하는지 세세하게 이해하고, 수많은 중소기업을 다닐 만한 직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들에 보조금 지급과 세금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대기업 연봉이 4500만원인데 중소기업은 2500만~3000만원 수준이라면 정부에서 중소기업에 채용 인원 1명 당 보조금 1000만원씩을 지급하는 게 맞다.” 

2030세대 내 양극화는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정부에서 소득 4~5분위(상위 40%) 정도에 대해서는 알아서 경제 활동을 하도록 자유롭게 풀어주고 하위그룹에 금융·세제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작동시켜 얻은 과실(세금)로 저소득층을 돕는 선순환이다. 그런데 현실은 (부자 증세 기조대로) 초고소득층을 압박하지도, 저소득층에 도움을 주지도 못한 채 평범한 청년들만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